비하인드 클래식

들리는 색, 보이는 소리

안녕하세요. 클래식 읽어주는 지휘자, 여자경입니다.

오늘은 김광균 시인의 ‘외인촌’ 한 구절을 낭송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려 합니다.

“여윈 손길을 저어 열 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같이
언덕 위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의 지붕 위에선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귓가에 울리는 종소리에 푸른색을 입힌, 굉장히 시적인 표현이죠.
그런데 이것이 문학적 상상이 아니라 인간에게 실제로 존재하는
감각이라면, 과연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요?

리의 뇌는 보통 맛은 미각, 소리는 청각과 같이 각각의 자극과 반응이 기능적으로 이뤄집니다. 그런데 ‘푸른 종소리’와 같이 어떤 자극으로 일어나는 한 가지 감각이 다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공감각’이라고 하죠. 이중 어떠한 색을 보았을 때 소리가 들린다거나 어떠한 소리를 들었을 때 특정한 색이 보이는 등 시각과 청각의 관계에 있는 공감각을 ‘색청’이라고 하는데요, 더 쉽게 말해 소리를 색깔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감각을 기반으로 그려진 그림, 함께 감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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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그너 Wagner, ‘로엔그린 Lohengrin ’ 중 서곡 / 즉흥 19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악의 리듬과 박자, 멜로디를 선과 색, 형태로 바꿔 화폭에 옮긴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의 <즉흥 19>라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그가 독일 작곡가인 리하르트 바그너 (Richard Wagner) 의 ‘로엔그린 Lohengrin ’을 들은 후 그 음악을 생각나는 대로 캔버스에 표현한 것인데요.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은 성배를 수호하는 기사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의 이야기입니다. 특히 로엔그린 3막에서 성배를 지키는 기사 로엔그린과 그에게 구원받은 엘자의 결혼 장면에서 나오는 ‘혼례의 합창’은 결혼식 입장 곡으로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곡이죠.

시 로엔그린의 서곡으로 돌아가서,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프레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는 이 곡을 듣고 ‘깊은 푸른색, 우울하고 아편에 취한 듯 몽롱하지만 성스럽고 아름답다’고 평가했는데요. 이 곡에 대해 칸딘스키는 다음과 같이 회고합니다.

“바그너가 나의 시간을 음악으로 스케치하고 있다는 것을
당시에는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내 영혼에서 갖가지 색을 보았다. 내 눈앞에 색이 있었다.
그리고 거친 선들이, 거의 미친 듯한 선들이 내 앞에 펼쳐졌다”

2. 에릭 사티 Erik, Satie ‘난 너를 원해 Je Te Veux’/ 수잔 발라동 Suzanne Valadon, <에릭 사티의 초상화> 술계에선 칸딘스키가 ‘들리는 그림’을 위해 여러 회화적 실험을 감행했다면 음악계에선 클래식 음악의 전통적인 틀을 과감하게 타파해나간 인물이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음악가가 아닌 소리를 섬세하게 측정하는 기술자로 불리기 원했던, 프랑스의 작곡가 ‘에릭 사티 Erik, Satie ’인데요. 두 개의 테마가 소나타 형식을 따르며 길이가 길어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그의 음악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참신함과 간결함을 띄고 있죠. 하지만 당대 사람들에겐 큰 공감을 얻지 못했고 평생 비주류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중의 관심과 사랑을 얻는 데는 실패했던 에릭 사티였지만, 한 여자에게만큼은 온 진심을 다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그 주인공은 바로 르누아르, 드가의 그림 모델이자 프랑스 여류 화가 1호로 유명한 ‘수잔 발라동 Suzanne Valadon ’입니다. 이 그림은 수잔 발라동이 사티에게 선물한 자화상으로 당시 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청혼했지만 수많은 남성 편력과 자유분방한 영혼을 지녔던 수잔은 결혼이 아닌 동거를 선택했다고 하죠. 사티가 그녀에게 얼마나 푹 빠졌었는지는, 그가 작곡한 성악곡 <난 너를 원해 Je te veux >를 들어보면 단번에 느낄 수 있습니다.

여자경
글 / 여자경

대전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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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08-28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