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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방에 거처하는 세 가지 방법

소통과잉의 시대와 고독사회 2018년 1월 영국이 전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직을 신설한 이래,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급증하자 2021년 2월 일본에서도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임명했다. 보편화된 개인주의 사회에서 현대인들의 외로움이나 고독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로 인식되어 왔던 것이 이제는 사회적인 문제로 수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의 공동체 사회가 붕괴하면서 등장한 개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개인의 고립과 소외라고 알려져 있지만, 현대 사회는 온라인 SNS를 비롯해 다양한 커뮤니티와 동호회 같은 각종 사회적 관계망으로 구성된 오프라인 모임이 넘쳐나 개인의 시간을 갖기 어려울 정도로 소통 과잉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사회의 진짜 문제는 개인의 고립과 소외라기보다는 수많은 관계망 속에서 경험하는 소통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데 있을 것이다.

사진: Unsplash의 Carl Nenzen Loven

호연의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은 사람과 사람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고립된 개인들의 상호 이해와 건강한 연대를 이끌어주는 소통의 풍경을 다루며 독자들에게 힐링을 경험케 해주었다. 2021년 4월에 출간된 1권이 독자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자 2022년 8월 2권을 내놓은 이 소설은 2022년 11월 누적 판매 100만 부(1권 80만 부, 2권 20만 부)를 넘겼는데, 2020년대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한국 소설로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과 『아몬드』에 이은 세 번째 작품에 해당한다. 이미 대만‧중국‧일본 등 8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대만에서는 번역소설 1위를 기록했으며, 연극 무대에도 오른 이 소설은 곧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에 있다.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이 소설은 고독한 현대 사회에서 선한 인간 본성의 영향력이 어떻게 사람들을 연결하면서 건강한 소통으로 이끌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친절과 공감의 미학 1989년 한국에 도입된 편의점은 1990년대의 청년들에게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이나 드라마 〈질투〉에서 볼 수 있듯이 세련된 도시적 라이프 스타일을 표방하는 트렌드로 기능했다. 하지만 동네마다 백 미터 간격으로 놓여 있는 오늘날의 편의점은 최저시급의 ‘알바’ 자리나 황급히 끼니를 챙겨야만 하는 사람들이 잠시 들렀다 가는 등 효용의 극대화를 꾀하는 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소매업으로 우리 일상에 깊이 자리 잡았다. 소설의 배경인 ‘ALWAYS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27세의 취준생 시현과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야간 알바로 일하는 50대의 가장 성필, 게임중독에 빠진 30세 고시생 아들을 두고 편의점 알바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오선숙, 엄마의 편의점을 처분해 자신의 사업 밑천으로 사용할 궁리만 하는 아들을 둔 편의점 사장 염 여사, 그리고 매일 회사에서 당하는 모멸감을 오천 원의 술과 안주로 달래는 44세의 성실한 가장 경만, 연극배우를 은퇴하고 극작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작품마다 거절되면서 낙담해있는 30대의 인경, 자식의 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뇌물을 받았다가 형사직을 잃고 흥신소를 운영하면서 멸시와 천대를 견디고 있는 곽 씨 등은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웃이자 우리 자신이다.

사진: Unsplash의Wylly Suhendra

인물들은 모두 자기의 위치에서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늘 그렇듯이, 어쩌다 꼬여버린 인생을 힘겹게 감내하는 중이다. 한 번 꼬이면 풀기 어려운 것이 인생인 법. 이들이 겪고 있는 곤혹의 공통점은 들끓는 속을 시원하게 풀어버릴 수 없다는 것, 즉 소통의 방법론에 있었다. 염 여사가 잃어버린 파우치를 찾아준 서울역의 노숙자 ‘독고 씨’가 ALWAYS 편의점의 야간 알바로 들어오면서 이들에게 새로운 소통의 풍경이 펼쳐지는데, 기원을 알 수 없는 이들의 꼬인 인생이 하나둘씩 풀어지는 에피소드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몰입의 기쁨을 가져다준다. ALWAYS 편의점의 빌런인 독고 씨가 소외되고 고립된 사람들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상대를 향한 이유 없는 친절과 무한한 공감이 전부였다. 그뿐만 아니라 알코올성 치매에 말을 더듬는 서울역 노숙자 독고 씨에 대한 주변인들의 시선이 묘한 안도감과 깊은 신뢰감으로 바뀐 것도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반복된 친절과 공감이 주된 이유였다.

연결과 소통의 효과

사진: Unsplash의 Etienne Boulanger

고 씨의 친절과 공감이 궁극적으로 사람들과의 깊은 소통을 이끌어냈던 것처럼 진정한 소통의 장점은 바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데 있다. 편의점에서 행패를 부리는 진상 손님을 요령 있게 퇴치한 후부터 시현의 신뢰를 얻게 된 독고 씨는 편의점 운영 매뉴얼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줄 아는 시현의 특별한 능력을 알아보고 유튜버 활동을 권유하는데, 시현의 유튜브 영상은 또 다른 편의점 점장으로 스카우트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또 독고 씨를 대신해 야간 알바를 시작하게 된 흥신소 곽 씨가 편의점 일을 시작하기 위해 시현의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사람 사이의 연결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의 효과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진: Unsplash의 Roman Kraft

각김밥을 훔친 소년에게 자기가 대신 계산해 주면서 소년과 함께 삼각김밥을 먹는 독고 씨의 모습은 독자에게 묘한 위안을 선사한다. 독고 씨가 건넨 옥수수수염차는 게임중독에 빠진 아들과 선숙의 화해를 이끌었고, 또 회복탄력성을 상실한 경만에게 “빈자의 혼술상”인 편의점 탁자 대신 가족과의 소박한 저녁식사 자리로 돌려보냈다. 극작가 인경은 독고 씨와 경만의 수다 장면을 〈고도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대화와 오버랩 시키면서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제목의 희곡을 완성하기 직전 연극 무대에 올리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편의점 접객을 통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은 독고 씨는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고, 흥신소 곽 씨에게 야간 알바 자리를 물려주는 등 독고 씨가 선사한 소통의 효과는 이 다양하게 고립된 개인들을 단단하게 연결시키는 수단이 되어주었다.

대 사회의 많은 개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보통의 삶’을 꿈꾸며 자신의 삶과 세계를 일치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개인의 고립과 소외의 문제에는 내면의 소통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차단시키는 현실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 소설이 말하고 있듯이 결국 삶이란 관계이고 또 관계가 곧 소통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귀빈이건 불청객이건 손님으로 대하는 태도는 서로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유용한 팁일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었던 독고 씨가 편의점 접객을 통해 진정한 소통을 이끌 수 있었듯이, 부끄러울 수도 있겠지만 가족을 포함해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손님으로 대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바라보면 어떨까.

이혜진
글 / 이혜진

세명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1973년생

이력
저서 『제국의 아이돌』 『사상으로서의 조선문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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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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