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라고스는 마트에서 음악이 나오면 장을 보다 멈춰서 춤을 춰요. 역동적이고 흥이 넘치는 민족이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부딪치며 타인에게 즐거운 자극을 받는 문화가 넘실거려요. 정교하기보다 날 것의 있는 그대로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성격이 강하죠. 아프가니스탄과 정반대로 무한한 개방성과 노골성이 특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의 예술작품을 안 보고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아프리카 미술'하면 과거에는 주술적 의미를 담은 과장된 공예품이나 조각품이 주를 이뤘지만, 현대에 들어 완전히 판도가 바뀌었거든요. 아프리카 사회를 원색적이고 강렬하게 표현하려는 움직임이 늘었죠.
아프리카 문화에서 음악, 문학, 예술 모두 높낮이가 다양하고 기승전결이 뚜렷하게 요동치는 경향을 느낍니다. 단조로움을 아주 싫어해 다채로운 표현과 강한 자극으로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문화라고 볼 수 있겠네요.
‘Afrobeats(아프로비츠)’입니다. 나이지리아 등 서아프리카의 전통 음악에 힙합, 펑크,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믹스해서 만든 아주 리드미컬한 음악이에요. 꼭 빠르고 신나는 음악인 건 아니지만, 아프리카 부족에서 들릴 법한 박자들에 여러 악기를 사용해 듣는 사람이 절로 몸을 흔들게 만들죠. FireboyDML의 ‘Bandana’라는 노래를 들어 보시면, 어떤 느낌인지 바로 알 수 있을 거예요. 나이지리아 곳곳에서 항상 들을 수 있을 만큼, 아프로비츠의 정석과도 같은 노래입니다.
학문은 꼭 성문으로 기록해야 가치가 있다는 경향이 강한 듯해요. 서양미술사가 전세계 보편의 미술사학이라고 일반화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죠. 물론 서양에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 대한 탐구가 빠르게 이루어졌고, 인문학으로 눈을 돌린 시점 역시 상대적으로 빠른 게 사실이지만. 인문학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와 행동을 탐구하여 담아내는 데 의의가 있는 만큼, 문화와 학문을 특정 지역에 국한해 해석하는 방식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Tolu Aliki라는 나이지리아 현대미술 작가입니다. 평소 좋아하는 작가는 단오풍정을 그린 조선시대 풍속화 작가 신윤복 선생님입니다. 단오풍정은 앞서 말씀드렸듯 시대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작품이라 더 매료되었죠.
나이지리아의 피카소라고 불리는 작가입니다. 아프리카 현대 미술에 입체주의가 있을 것이라 상상도 못했는데, 인물을 만화영화의 한 장면처럼 색채가 강하고 과장된 이목구비로 독특하게 그리는 작가입니다. 인물을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지만 나이지리아 사회 양상에 대한 메시지는 강렬하고 신랄하게 전달하는, 나이지리아 MZ세대에게 아주 인기 있는 작가입니다.
아프리카 여성의 육체미를 매우 부각해 그리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여성의 몸매를 과장하여 그리는 화풍이 의도치 않게 성적 불쾌감을 주는 게 아닐까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여성이 얼마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존재인지 육체미를 강조해 표현했다는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었죠. 아프리카 미술에 투영한 편협한 시각을 반성한 계기였습니다.
고전문학입니다. 요새 많은 사람이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라는 말하는데, 고전문학을 읽으며 더 자주 공감합니다. 그 옛날에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 그리워하는 마음, 이별의 상실감 등이 문학의 가장 큰 소재가 됐다는 게 신기하고요. 고전문학을 바탕으로 성행했던 민속극도 자료를 찾아보면 내용과 표현기법이 지금의 연극이나 드라마와 큰 차이가 없다는 점도 인상적이죠.
앞으로 제 인생에 낯선 경험이 얼마나 더 많이 펼쳐질까 기대합니다. 그리고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이 불시착해도 단단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준비된 인생을 꿈꿉니다.
최종 목표는 나라는 인간을 탐구하려는 사람을 만나, 낯선 경험을 함께 해보는 것인데요. 정반대의 성향이라 할지라도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면서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중간지점을 찾고 싶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을 밟은 지 1년이 채 안 됐기 때문에, 여기서 겪을 일이 아직 무궁무진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착'에 대한 갈망이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낯선 땅에서 홀로 설 기회가 다시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예측 가능하고,잔잔한 삶을 살기 위해 새로운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