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재미있을까?
올 3월 애플TV+에서 방영한 드라마 <파친코>의 원작소설인 이민진의 『파친코』가 최고의 문제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구상부터 탈고까지 30년이 걸린 그녀의 장편소설은 외신(BBC, 뉴욕타임스)에서 극찬을 받았고 2022년 제26회 만해문예대상에도 선정되었다. 이방인의 삶을 타자적 시선으로 그린 『파친코』의 열풍은 일본 합병과 자이니치에 대한 차별과 혐오 등 일본사회의 문제와 한일관계를 전세계에 전파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작가는 첫 장편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에서 보수적인 이민 1세대 부모와 다르게 미국적 가치관을 지닌 딸 케이시의 자본주의적 욕망에 충실한 삶과 백인 주류사회에 영원히 소속될 수 없는 절망적인 이주생활을 그린 바 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파친코』에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보수적 세계관과 가족주의 등 미국적 가치관이 내재되어 있다. 세계화 시대에 재미작가가 영어로 쓴 재일조선인의 신산한 삶을 그린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다문화 시대의 문학적 특징을 지닌다.
최근 문학적 경향 중 하나가 혼종적 정체성을 지닌 디아스포라의 등장이다. 국적, 국경, 국민의 경계를 넘어 이중 문화와 언어를 지닌 복합적이고 혼종적인 주인공은 갈등과 분열 속에서 삶을 영위한다. 연대기가족사소설이자 디아스포라문학인 『파친코』의 첫 문장은 이렇다.
식민지, 전쟁, 분단, 남북대결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역사가 한 개인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지만 ‘그래도 괜찮아야 하는’ 생존본능으로 삶을 유지한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신산하고 고달픈 여정을 첫 문장은 함축하고 있다. 1세대 훈이와 양진 부부, 2세대 부부인 선자와 이삭, 3세대 노아/모자수, 4세대 솔로몬까지 이민 4대의 신산하고 파란만장한 삶에는 한국, 북한, 일본 등 복잡하고 까다로운 동아시아 정세가 깔려있다.
이주남성의 생존과 여성 수난의 서사
『파친코』는 이삭, 고한수, 노아, 모자수, 솔로몬 등 이주남성의 생존투쟁과 삶의 고투, 양진, 선자, 경희의 여성 수난 서사를 균등하게 배치하면서 거대한 역사에 휘말린 개인의 운명과 극복을 객관적이고 설득력 있게 그린다. 또한 식민지 상황, 비스킷과 쇳가루로 표상되는 군수물자, 복희 자매의 위안부 사연, 원폭피해 등의 역사적 사건이 개인의 삶과 유기적으로 연동되면서 이방인에 대한 박해와 차별이 자행되는 일본사회를 해부한다. 노아와 솔로몬의 삶을 통해 반다문화적 시선, 이방인 차별, 편견과 배제의 원리가 작동되는 일본의 폐쇄성과 자국민중심주의, 환대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태도 등이 역사학을 전공한 이민진의 관점에서 섬세하게 전개된다. 역사가 선량하고 무고한 개인의 운명에 개입되고 깊은 영향을 미쳤지만 고난과 운명을 개척하고 정착하고자 하는 인간의 생존에 대한 아름답고 긍정적인 삶의 모습을 그린 『파친코』는 전세계 독자에게 공감과 감동을 준다.
강릉원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1962년생
저서
『월북작가소설연구』 『내 마음의 산책』 『책 읽어주는 여자』
『내 안의 타자를 찾아서』 『우리 시대의 여행소설』 『한국현대소설의 떠남과 머묾』
『21세기 한국소설의 다문화와 이방인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