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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재미있을까?

당신은 지금 게임 중이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결론은 뻔하다. 패색은 짙고 승복하긴 싫다. 자, 이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패배를 받아들일까? 또는 받아들이지 않을까? 순순히 인정하거나 불복을 선언하거나. 그러나 정말 그뿐일까? 다른 길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룰을 바꾼다. 1등이 될 수 없다면 1등을 부여하는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다. 바뀐 게임에서는 모두 다 이기거나 누구도 이기지 않는다. 이기고 지는 문제는 유희의 일부이거나 일부조차 되지 않는다. 룰이 유희의 대상이 될 때 룰의 권위는 붕괴된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거의 알려진 바 없는 미국의 과학 전문 기자가 쓴 책 한 권이 연일 화제다. 상반기 가장 뜨거운 책은 바로 이 책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규정하기 힘든 책이 그 주인공이다. 이 책은, 거두절미하고 재미있다. 그런데 재미있다는 것이 이 책에 대해 가장 먼저 언급할 만한 내용일 수 있을까? 있다. 재미있을 수 없는 여러 조건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 재미를 이루는 핵심에는 룰을 깨고 기존의 세계관을 전복하는 급진적 주장과 주장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

영웅서사보다 재밌는 몰락한 영웅서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의 일대기를 다루는 책이다. 1900년대를 살았던 저명한 분류학자의 삶을 종합적으로 살핀다는 점에서 일종의 회고록으로 분류해야 할 것만 같은 책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회고록이 대상을 예찬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대상을 떠받드는가 하면 패대기친다. 파헤치다 보면 어둠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드러내기 위해 파헤치는 것 같기도 하다. 여기에 이 책의 첫 번째 재미가 있다. 이 책은 흔한 영웅서사가 아니라 몰락한 영웅서사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어류의 세계에 빠져 분류학의 기초를 만든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지금까지 알려진 어류 중 5분의 1이 그와 그의 동료들이 발견한 것이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분류학계에 미친 영향은 충분히 설명된다. 그러나 파헤쳐진 그의 삶은 그가 혼돈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한 영웅이 아니라 자연을 하나의 계층 구조로 파악하는 차별주의였다고 말한다. 그는 이름 붙이기에 재미를 붙인 다음 생물에 등급을 매겼고 급기야는 인간에게 등급이 있다고 믿는 우생학의 신봉자가 되었다. 영웅이었던 그의 이야기는 빌런이 된 영웅의 이야기로 급회전한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몰락

그러나 이 몰락이 한 개인의 몰락이기만 하다면 우리의 관심은 어느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에 대한 관심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책은 한 사람의 흥망성쇠를 통해 더 큰 차원의 흥망성쇠를 그린다. 더 큰 차원이란 그를 영웅으로 만들어 주었고 지금까지도 우리를 지배하는 세계관, 이른바 구별 짓기와 차별하기의 세계관이다. 그리고 몰락의 방식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다. 여기에 이 책의 두 번째 재미가 있다. 과학적 전복의 매력은 상상 이상의 통쾌감을 준다. 우리는 극단적 다원주의에 지쳤다. 모두가 자기주장을 편애하는 사이 세상은 점점 더 공통분모가 없어지는 고립의 공간이 되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필요하다. 그런 게 있다면 말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1980년대에 분기학자들은 타당한 생물 범주로서 “어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알렸다. 분기학자들의 발표와 함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세운 왕국의 몰락은 분명한 사실이 된다. 그들에게 어류가 의미 있는 범주라는 말은 “빨간 점이 있는 모든 동물”이 한 범주에 속한다는 말이나 “시끄러운 포유동물들을 모두 한 범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범주를 만들 수는 있으나 과학적으로 그것은 무의미하다. 진화적 관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해 주지 못하는 범주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어류’는 많은 미묘한 차이들을 가리는 착각된 범주다. 범주의 몰락은 한 가지 기준으로 생물의 지위를 구분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만든 세계와 그런 세계를 조장한 우리 세계의 몰락을 의미한다.

민들레 법칙이 주는 위로

대안도 있다. 이름도 예쁜 ‘민들레 법칙’을 통해서다. 민들레를 어떻게 범주화할 수 있을까. 범주화할 수 없다는 것이 정답이다. 민들레는 누군가에게 잡초처럼 보이고 다른 누군가에겐 약재로 인식된다. 화가의 눈에는 염료이고 히피에게는 화관이며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고 싶게 하는 대상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관점으로 보지 않는 것이 자연을 바라보는 더 정확한 방식이다. 룰루 밀러는 책의 말미에 ‘성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타인이 나에 대해 하는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 이 말은 타인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다. 이 책의 세 번째 재미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회고록인가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자서전이고 연구서인가 하면 고발서이며 에세이인가 하면 소설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며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않는 이 책은 범주의 무의미를 주장하는 책의 주제를 정확히 구현한다. 이 책의 네 번째 재미이자 내게는 최상의 재미가 여기에 있었다.

박혜진
글 / 박혜진

편집자, 문학평론가, 1986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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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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