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이 빚은 안중근은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인물처럼 낯설고 매혹적이다”
“『하얼빈』은 안중근의 일대기가 아니다"
왜 재미있을까?
자서전 『안응칠 역사』를 비롯해 수많은 안중근 전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중근’이 다시 쓰이고, 쓰일 수 있다면 그것은 32살의 안중근이 절명한 자리가 여전히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09년 그 거사로부터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안중근’은 역사책과 민족주의 담론에 박물화되어 버렸고 그 감흥은 빛을 바랜 듯하다. 그런데 작가 김훈이 돌연 그 안중근을 들고 나왔다. 왜인가, 어떻게인가. 김훈은 대학 시절 안중근의 신문조서를 읽고 큰 충격을 받고, ‘혁명에 나서는 자들의 몸가짐은 이렇게 가볍구나’라고 느꼈고, 50년 지난 지금에야 숙제 같은 글을 펴낸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게 탄생한 ‘안중근’은 그의 말대로 “가난과 청춘과 살아있는 몸”을 가진 청년으로 “몸과 총과 입으로” 다시, 새삼 빛을 발하고 있다. 김훈이 빚은 청년 안중근은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인물처럼 낯설고 매혹적이다. 그것은 순전히 대장장이와도 같은 김훈의 매서운 손끝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훈의 문장은 달군 쇠를 두드려 만든 칼과 같다. 군더더기 없고, 단단하고 예리하며 강하다. 그는 여전히 ‘의견이나 이념’이 아니라 사실과 몸을 강조하고 있으나, 사실은 그 자체로 말을 하지 않는다. 사실이 말하게 하는 것 또한 강력한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그 사실들의 빛은 사실 김훈의 생각과 배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얼빈』은 안중근의 일대기가 아니다
서사는 ‘하얼빈 거사’에 집중되어 있고 그 나머지는 모두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승승장구하는 이토 히로부미의 제국주의적 야욕과 기세도, 빌렘 신부와 뮈텔 주교의 세속을 떠난 영성과 신앙도, 안중근의 가족과 조선 민중의 소란도 1909년 10월 26일의 총성을 중심으로 배치되고 그 육중한 실체의 힘과 빛은 마침내 그곳에서 만나 격돌한다. 이 책의 제목이 ‘하얼빈’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얼빈이 그러한 힘들이 교차하는 장소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만주의 중심이었던 하얼빈은 대륙을 가로지르는 철로가 교차하는 지역이기도 하고, 일본, 러시아, 중국, 미국 등의 세계 열강들이 충돌하는 곳이기도 하다.
김훈이 담은 하얼빈의 의미
『하얼빈』의 서사적 폭발력이 이토라는 제국의 힘에 맞서는 안중근의 힘의 격돌에서 나오는 한편, 그 곁에 또 하나의 충돌이 있다. 신앙 편에 선 빌렘 신부와 뮈텔과 ‘살인’의 죄악을 저지른 천주교 신자 안중근의 대결이다. 종교와 세속의 부딪침이다.
빌렘 신부는 뮈텔 주교의 명을 어기고 여순감옥의 안중근을 찾아가지만, 안중근이 죄를 뉘우치고 고해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는다. 청계동 성당 신부인 빌렘 신부는 안중근이 교육사업에 투신하기를 바라지만 안중근은 끝내 상해와 블라디보스토크를 돌며 전투를 감행한다. 이들의 갈등과 엇갈림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과 닮아 있다.
하느님의 나라도, 자기보존이라는 본능도 버린 채 자신을 던진 안중근의 행동은, 작가의 의도대로 바람처럼 가볍고 명쾌하다.
술집에서 만나 테러를 결의하는 우덕순과 안중근의 대화는 대의명분, 이념, 추후 대책, 자금 등에 관한 토론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단순하고 심상하다. 심오한 사상이나 논리 이전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벌레마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는 자의 정당방위일 뿐이다.
“혁명에 나서는 자들의 몸가짐은 이렇게 가벼운 것이구나, 이런 것들이 혁명의 추동력이고 삶의 열정이로구나”
라는 작가의 말처럼 안중근의 거사는 결코 가볍지 않은 살아있는 몸의 폭주처럼 맹렬히 독자들에게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평론가, 1970년생
저서
『디아스포라 문학』 『기도이거나 비명이거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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