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쉬인사이드

미나리의 강인한 생명력을 닮은 영화

디쉬인사이드 : 미나리의 강인한 생명력을 닮은 영화
디쉬인사이드 : 미나리의 강인한 생명력을 닮은 영화
디쉬인사이드 : 미나리의 강인한 생명력을 닮은 영화

작년의 <기생충>에 이어 영화 <미나리>가 각국 영화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세계 영화계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미나리>의 국적은 미국이다.
제작사가 미국이고 감독이 한국계라고는 하지만 미국인이고 촬영지도 미국이다.
하지만 세상사람들은 <미나리>를 두고 ‘한국영화가 약진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극중 언어의 대부분이 한국어라서 골든글로브 작품상의 후보에 오르지 못하고
외국어 영화상에 만족해야하는 ‘역차별’도 받았다.
그만큼 한국색이 농후한 작품이다.

디쉬인사이드 : 미나리의 강인한 생명력을 닮은 영화

영화 <미나리>의 제목이 지혜로운 선택인 이유

원로배우 윤여정 씨는 이 영화에서 맡은 할머니 역할로 영화상을 수십 개나 받는 영예를 누렸다. 극중에서는 영어 한마디 못하는 한국의 전통 할머니 역을 훌륭하게 해냈지만 영화 홍보를 위한 숱한 인터뷰와 행사에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반전’으로 서양 팬들을 놀라게 하고, 한국 팬들에겐 자부심을 가지게 하였다. 영화 속 모습과는 딴 판인 세련된 패션과 여전한 미모까지 덤으로 따라와서 한국 영화인들의 내공을 나라 안팎에 자랑하였다. 주인공 제이콥 이의 역을 맡은 스티븐 연과 그의 부인 모니카 이 역을 맡은 한예리뿐 아니라 아역 데이빗과 앤 역의 알란 킴, 노엘 케이트 조, 모두 훌륭한 연기 앙상블로 영화의 감동을 세계 관객들에게 전해 주었다.

디쉬인사이드 : 미나리의 강인한 생명력을 닮은 영화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성공한 데에는 정이삭 감독의 공이 으뜸이라 할 것이다. 자신의 유년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어메리칸 드림을 향해 달려가는 한국의 이민 가정 이야기를 미국 관객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풀어나간 이 작품 곳곳에서 그의 재능과 열정이 드러난다. 우선 제목부터가 대단히 영리하다. ‘미나리’라는 채소를 설명하기 전에 발음부터 얘기해 보자. ‘MINARI’라는 로마자 표기는 미국사람 누구나가 쉽게 읽을 수 있는 단어다. 영어권 사람들 뿐 아니라 전세계 거의 모든 언어권에서 이 발음을 읽거나 표기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언어를 찾는 것이 오히려 힘들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를 석권했던 필름메이커 ‘코닥(KODAK)’은 세계 모든 사람이 발음할 수 있는 로마자 조합을 찾아 그렇게 상표를 지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이 중요한 것이다. 만약에 영화 속의 할머니가 미나리가 아니라 두릅 혹은 더덕 아니면 달래나 냉이를 가져왔더라면 Doo-reup, Deo-deok, Dallae, Naeng-yi 등 미국 사람들의 눈에도 낯설고 발음하기에도 대단히 힘든 표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식물들에 해당하는 영어를 찾아보면 Aralia, Elata, Codonopsis, lanceolata 등 길고 낯선 라틴어 학명이 나오는 판국이니 이는 더욱 적합하지 못하다.

그러면서 늪이나 더러운 물에서도 잘 자라며, 심지어 물을 정화시키기까지 하는 강인한 생명력의 미나리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머나먼 이국 땅 미국에 와서 뿌리를 내리려는 한인 가정의 강한 의지와 노력에 중첩시켰으니 ‘미나리’를 고른 것은 대단히 지혜로운 선택이라 하겠다. 그리고 정이삭 감독의 영문 이름은 Lee Isaac Chung이다. 극중 주인공 가족도 이 씨인데 감독은 굳이 ‘Lee’라고 표기하지 않고 ‘Yi’라고 표기하였다. 극중에서 나오는 미국사람들은 모두가 이들을 ‘리’가 아니라 ‘이(Yi)’라고 부른다. 나는 이 대목에서도 감독의 한국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어 기뻤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성인 이(李) 씨는 중국에서도 대단히 흔한 성이다. 그래서 흔하디 흔한 평범한 사람의 무리를 중국 사자성어로 ‘장씨 셋 이씨 넷’이라는 뜻으로 ‘장삼이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보다 훨씬 이민의 역사가 긴 중국이기에 미국에는 Lee(브루스 리; 이소룡)나 Li(제트 리; 이연걸)로 표기하는 중국계가 많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서양인에도 Lee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정이삭 감독이 굳이 주인공의 성을 Yi라고 정하여 ‘이’라고 불리게 한 것은 ‘한국인’임을 강조하여 행여 중국계와 혼동하지 말라는 배려이자 굳은 의지 표명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들어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국어를 그대로 표기하는 케이스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만두를 ‘덤플링(dumpling)’이라고 표기하던 것을 ‘Mandu’라고 표기한 것이 그 예이다. 그래서 비약적인 성장까지 이루었다고 하니 일찍이 미국 시장에 덤플링으로 진출한 중국계나 일본계 기업들이 조금은 분해 할 대목이다. 이렇게 ‘만두’라는 이름으로 독자 노선을 걸은 기업은 CJ인데, 실제로 이들이 해외로 진출하며 만든 브랜드가 ‘비비고(Bibigo)’이다. 비빔밥 체인을 런칭하면서 만든 상호였다. 발음과 표기가 외국ㅍ인들에게도 모두 쉬워서 성공을 한 경우이기도 하다. 최근에 한국산 김도 해외시장에서 인기를 끌며 매출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바다의 잡초’라는 뜻의 ‘sea weed’라는 이름으로 서양사람들은 전혀 입에 대지도 않는 식품이었는데, 요즘은 건강식 스낵으로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것 같다. 일본 스시가 보급되면서 검정 종이 같은 김을 먹기 시작한 서양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는데, 수십 년이 지난 뒤 발음도 쉬운 ‘nori’라는 일본어를 제치고 한국산에 아예 ‘gim’이라는 단어를 써서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하니 문화강국이 되어가는 한국의 모습이 이렇게 조그만 부분에서도 보이는 것 같아 즐겁다.

계절마다 다양한 나물반찬을 즐기는 한국인의 채소 사랑

디쉬인사이드 : 미나리의 강인한 생명력을 닮은 영화 디쉬인사이드 : 미나리의 강인한 생명력을 닮은 영화

제목과 영어 표기는 이 정도로 하고, 영화 속에 나오는 ‘미나리’ 이야기를 해보자. 한국사람은 미나리를 채소의 한 종류로 친다. 한국인이 즐겨먹는 나물의 한 가지로 여기기도 한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 사람이 일인당 채소 소비량에서 세계 1위라고 한다. 우선 김치가 일년 삼백육십오일 식탁에 오르지 않는 날이 없다. 김치도 배추김치에 더해서 철따라 깍두기, 오이소박이, 열무김치, 알타리, 고들빼기, 갓김치, 물김치, 백김치 등이 함께 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배춧국, 뭇국, 콩나물국 등 채소가 듬뿍 들어간 국을 먹고 옛날에도 채소가 귀한 겨울에는 말려놓은 시래기국을 먹었다. 가지, 고추, 애호박, 오이 등 세계에 널리 보급된 채소도 물론 먹지만 여기에 더해서 한국인들은 철마다 나오는 나물을 즐긴다. 달래, 냉이, 씀바귀, 참나물, 돈나물, 고들빼기, 고사리, 고비, 두릅, 더덕, 쑥 등등 수십 가지 나물을 무쳐먹고, 데쳐먹고, 삶아먹는다. 서양에선 그냥 야생하는 꽃으로만 여기는 민들레도 한국사람들에겐 식재료가 된다. 미나리도 물론 여기에 속한다.

미나리는 향이 강하다. 무릇 향이 강한 채소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데, 과학이 발달하면서 향이 강한 채소들의 약리작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동남아에서 즐겨먹는 고수도 그 가운데 하나다. 얼마전 포르투갈의 연구진이 고수에서 나온 추출물로 항생제가 듣지 않는 수퍼박테리아를 죽이는데 성공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여 관심을 끌었다. 인류에게 대재앙이 될 수도 있는 모든 항생물질에 내성을 지닌 수퍼박테리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단초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미나리는 예로부터 피를 맑게하고 혈압을 낮추는 등의 효능이 알려진 바 있다. 해독작용도 있어서 복어요리를 할 때 미나리를 넣는다는 설명도 있다. 물론 미나리가 워낙 맛이 좋은 채소라서 생선매운탕에 넣어 먹으면 맛이 좋으니 해독작용이 없어도 넣었을 법 하기는 하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미나리를 비롯한 한국 나물의 효능이 과학적으로 하나씩 밝혀지리라 굳게 믿고 있다. 더덕이나 두릅도 마찬가지고 고사리, 고비 역시 그러하다.

강한 향이나 맛을 가지고 있는 식물을 향신채라고 하는데, 서양에서는 이를 허브와 스파이스라고 부른다. 서양의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타임, 딜이나 중근동, 인도의 강황, 펜넬, 정향, 스타아니즈, 육두구, 후추 등이 이에 속한다. 요리를 하는데 조금씩 넣어 맛을 좋게 하거나 저장음식에 넣어 방부살균효과를 증강시키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재밌는 것은 한국사람들은 남들이 조금씩 사용하는 향신채를 보통 채소들처럼 듬뿍듬뿍 먹는다는 사실이다. 고기를 구워 먹을 때 통마늘을 한 종지씩 굽거나 끓여서 함께 먹는다. 풋고추나 경우에 따라선 맵디 매운 청양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몇 개씩 먹는다. 깻잎을 잔뜩 쌓아놓고 고기도 싸서 먹고, 밥도 싸서 먹는다. 미나리도 마찬가지다. 냄비뚜껑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지리나 매운탕 냄비에 넣는다. 끓는 증기로 숨이 죽어 겨우 가라앉을 정도가 되면 각자 젓가락으로 떠다가 ‘시원하다’를 연발하며 푸짐하게 먹는다. 지칠 줄 모르는 한국인의 스태미너가 여기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남들이 조금씩 먹는 향신채를 일반 채소 먹듯이 많이 먹을 뿐 아니라 산에서 자라는 산나물도 실컷 먹으니 건강이 나쁠 리가 없다.

할머니가 해주던 음식, 그 깊은 추억과 향수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윤여정)는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먼길을 왔지만 누울 생각도 안하고 우선 가져온 짐을 풀어놓는다. 고춧가루 봉지와 멸치 봉지를 내놓자 딸(한예리)은 왈칵 눈물을 흘린다. 할머니는 옆에서 바라보는 어린 데이빗에게 삶은 밤을 주는데 혹시 마르지는 않았나 입으로 깨물어 입에 들어간 부분을 손주에게 건네는 장면은 우스우면서도 리얼한 장면이다. 지금도 많은 한국사람들이 입으로 벤, 입으로 씹은, 입안에 들어갔던 음식을 할머니로부터 건네받은 추억이 있지 않을까? 세대에 따라서 당연하게 받아먹었던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질색을 하였던 사람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디쉬인사이드 : 미나리의 강인한 생명력을 닮은 영화 디쉬인사이드 : 미나리의 강인한 생명력을 닮은 영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미국 역시 ‘할머니가 해주던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있고 누구나 여기에서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영화에서 손자가 할머니는 할머니 같지 않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장면이 있다. 무슨 말이냐고 하자 ‘할머니는 쿠키도 구워주고 그러는 거’라고 대답한다. 할머니는 평소에 쿠키도 구워주고, 파이나 머핀도 만들어주고 그랬었다는 기억이 대부분의 미국사람의 추억 속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쁜 어머니가 못 해주는 특별식이나 간식을 어쩌다 만들어주는 존재, 홈 베이킹에 대한 달콤한 추억이 할머니와 중첩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의 할머니는 엄마가 못하는 정성스러운 음식, 장 담그기, 장아찌 만들기 같은 것과 중첩되어 기억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한국음식의 장점은 밥이 중심이어서 밑반찬이 몇 가지 있으면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식탁에 타파웨어에 담긴 반찬 그릇이 나온다. 오징어채, 콩자반, 마늘종, 감자볶음, 무나물, 도라지무침, 장조림, 어묵조림 등 냉장고에 넣어두면 몇 끼고 먹을 수 있는 밑반찬이 부부가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이민 가정에서는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친정 어머니가 가져온 고춧가루로 김치도 담그고, 각종 무침이나 찌개에 사용할 수도 있으니 좋고, 멸치는 국물을 내는데 조금씩 쓰면 되니 된장만 있으면 물리지 않고 국과 찌개를 해먹을 수가 있어 좋다. <미나리>에서는 이런 디테일이 잘 살아 있어서 한국 관객들에게도 어색하지 않게 다가오는 장면이 많다. 한국 마트도 드문 미국 남부에서는 한국 채소를 구하려면 캘리포니아에서 실어온 채소밖에 없어서 신선도가 떨어지는데, 주인공 제이콥은 여기에 착목하여 한국 채소를 재배하는 것이다. 병아리 감별사로 미국에 와서 비옥하고 넓은 미국 땅에서 농사를 지어 성공하려는 주인공의 분투기는 미국 관객을 충분히 감동시킬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담인데, 아시아는 수천 년 동안 농사를 지어서 지력이 떨어진 곳이 많다고 한다. 반면에 신대륙인 미국은 수백 년밖에 역사가 되지 않아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탑 소일(topsoil), 즉 지표층에 자양분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가지, 고추, 오이 등을 심고는 너무 크게 자라서 놀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디쉬인사이드 : 미나리의 강인한 생명력을 닮은 영화

‘미나리꽝’이라는 말이 있다. 미나리가 퍼져서 군집상태로 자라나는 늪이나 논을 일컫는다. 영화 <미나리>의 마지막, 할머니가 씨를 가져와 뿌린 근처 개울가에 그럴듯한 미나리꽝이 생겨나고 가족들이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장면이다. 재산을 잃어도, 재난이 덮쳐도, 가족이 서로 신뢰하고 의지하면 뭐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미나리꽝에 대입한 감독의 연출은 그 어느 한국감독보다도 한국적이다. 다시 한번 감독의 재능과 출연진의 열연에 그리고 영화의 성공에 갈채를 보낸다.

* 본 콘텐츠에서 내용 설명을 위해 삽입한 이미지는 해당 영화와 드라마 장면을 활용하였음을 밝힙니다.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 이주익

이주익

영화제작자

영화제작자. SCS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영화 <워리어스 웨이>, <만추>, <묵공> 을 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음식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음식에 대한 연구를 했고 음식 전문 서적 수천 권을 보유중이다. 음식 관련 영화와 TV 드라마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 본 콘텐츠는 사전 동의 없이 상업적 무단복제와 수정, 캡처 후 배포 도용을 절대 금합니다.
작성일
2021-04-15

소셜 댓글

SNS 로그인후 댓글을 작성하시면 해당 SNS와 동시에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