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지혜

파리의 공연장, 폴리 베르제르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의 변화를 이끈
프랑스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
바로 <폴리 베르제르 바>입니다.


과연 이 작품 속의 여인은 누구인지,
죽음을 앞둔 마네는 왜 이 작품을 그린 건지
영상으로 함께 알아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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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의 견습 선원

1832년, 프랑스 파리에서 부유한 법조인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에두아르 마네. 화가로의 꿈을 키워가던 마네는 가업을 잇기 바랐던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16살에 견습 선원으로 배를 타고 브라질을 다녀온다. 이후 해양학교에 지원했지만 탈락하고 결국 아버지는 마네가 화가가 되는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낙선의 화가 1859년, 마네는 처음으로 살롱전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지만 심사위원들에게 혹평을 받는다. 하지만 마네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고 1863년, 기존의 회화적 관습을 무시한 <풀밭에서의 점심 식사>를 출품한다. 그 결과 퇴폐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낙선하고 이로 인해 미술계에 큰 화제를 불러 모은다.

변화의 시작 그로부터 2년 후 마네는 <올랭피아>라는 작품으로 한 번 더 화제를 일으킨다. 나체의 여인이 관람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발칙한 작품에 대중들은 크게 분노했다. 하지만 피사로, 모네, 시슬레 등 젊은 화가들은 마네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고, 이러한 움직임은 이후 인상주의 탄생을 이끌어 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지막 작품 1881년, 모네는 파리의 콘서트 카페 ‘폴리 베르제르’를 그리기로 결심하지만 지병인 매독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져 현장 작업이 불가능했다. 이에 마네는 실제 카페 종업원을 섭외한 후, 화실에 세트장을 꾸며 자신의 마지막 작업을 진행한다. 1882년, 마네는 마지막 작품 <폴리 베르제르 바>를 발표하고, 다음 해인 1883년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폴리 베르제르 Folies Bergère

19세기 후반 파리는 도시 계획에 따라 도로가 확장되고 공원과 광장이 생기면서 카페도 자연스럽게 늘어났습니다. 이때 카페는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을 넘어 노래나 연극이 펼쳐지는 공연장으로 발전했고, 이러한 공간들은 파리 시민들에게 '카페 콩세르(cafe-concert)'라고 불리며 큰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요.

1869년에 문을 연 "폴리 베르제르"가 바로 파리의 가장 대표적인 '카페 콩세르’입니다.

‘폴리 베르제르’는 1969년에 오페라 극장으로 시작했지만 흥행성적이 좋지 못했습니다. 이에 따라 1972년에 로비를 넓히고 서빙하는 바를 만드는 등 내부 구조를 대대적으로 개선했고 뮤지컬, 발레, 곡예, 마술 등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죠.

파리 중앙 북쪽에 위치한 폴리 베르제르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데 현재 진행중인 프로그램은 아래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foliesbergere.com/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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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11-24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