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지혜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르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르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르
빈센트 반 고흐는 파리에 머물던 시기에
한 노인의 초상화를 3점이나 남겼는데요.

그 작품의 제목은 <탕기 영감의 초상>입니다.

초상화의 주인공인 탕기 영감은 과연 누구이고
고흐는 왜 그의 초상화를 3점이나 그렸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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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파리에 도착한 화가 지망생

1886년, 늦은 나이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고흐는 여러 곳을 떠돌다가 동생 테오의 부름을 받아 파리의 몽마르트르에 도착합니다 . 당시 화상으로 일하고 있던 테오가 곧 인상주의의 시대가 올 것을 직감하고 형을 파리로 불렀던 것인데요. 파리에서 인상주의 작품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고흐는 작품을 그린 화가들과 만나고 싶어 했죠.

미술용품 상인 & 후원자

동생 테오는 고흐에게 화가들 대신 ‘줄리앙 탕기’라는 한 노인을 소개해 줍니다. 그는 몽마르트르에서 미술용품을 판매하는 상인이었는데 가난한 화가들에게 화구를 내어주면서 돈 대신작품을 받아 자신의 가게에 전시했죠. 즉, 단순히 미술용품을 파는 상인이 아니라, 화가들의 후원자 역할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고흐와 탕기의 만남

동생 테오는 고흐가 인상주의 화가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도록 탕기를 소개해 주었고, 탕기는 고흐에게 훗날 유명한 화가가 될 것이라고 격려하며 그의 작품을 자신의 가게에 전시했습니다. 고마움을 느낀 고흐는 탕기를 모델로 초상화를 3점이나 그리죠.

고흐의 죽음

화려한 파리 생활에 싫증을 느낀 고흐는 프랑스 남부 아를로 떠나지만, 이후에도 동생에게 부탁해 탕기에게 물감을 구매하는 등 끈끈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1890년, 몸과 마음이 쇠약해진 고흐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탕기는 고흐의 장례식에 직접 참석합니다. 그리고 고흐가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를 죽을 때까지 간직하죠.

사크레쾨르 성당
Basilique du Sacré-Cœur

사크레쾨르 성당은 1870년대 프로이센과의 전쟁과 파리 코뮌으로 혼란을 겪은 파리 시민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지어진 건물입니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 있으며, 성당 꼭대기 돔에 오르면 파리 시내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어요.

몽마르트르 묘지
Cimetière de Montmartre

사크레쾨르 성당 서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파리에서 3번째로 큰 묘지로 1825년에 조성되었습니다.
스탕달, 드가, 졸라 등 유명 작가 및 화가들의 묘지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그들을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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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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