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 미술관

꿈을 꾸는 사람에게 늦은 나이란 없다, 앙리 루소

떤 이는 아직 꿈이 없을 수도 있고, 현재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기도 하다. 또 어떤 이는 이루지 못한 꿈에 아쉬워하며 과거를 회상해 보기도 한다. 어린시절부터 화가의 꿈을 꾸었지만 가난한 현실로 인해 잠시 꿈을 접어야 했던, 하지만 결국 40대의 나이에 붓을 들게 된 화가가 있다. 그는 바로 앙리 루소. 생전 그는 본인을 이렇게 표현했다.

‘부모님의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재능을 따르기 보다는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그는 수업이 많은 좌절을 겪은 후인 1885년에 돼 서야 화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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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나이는 꿈을 꾸는 이에게 숫자에 불과하다 리 루소는 1844년 프랑스에서 가난한 배관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 드로잉과 노래에 소질을 보였는데, 여유가 생길 때면 취미 삼아 그림을 그렸고 마음 한구석에 화가라는 꿈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고, 결국 그는 화가의 꿈은 내려놓아야 했다. 그렇게 앙리 루소는 군대를 전역하고 얼마 뒤 사랑하는 여성을 만나 일찍 가정을 꾸렸다.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파리에 들어오는 물건에 세금을 징수하는 일도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이었지만 20년을 넘게 다니며 가정을 위해 성실하게 일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런 루소가 본격적으로 붓을 들게 된 나이는 마흔 살이었다. 19세기인 것을 감안하면 당시에는 더욱 늦은 나이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릴 때면 모든 것을 잊고 빠져들었고, 독학으로 배워야 했기에 틈만 나면 미술관을 다니며 거장들의 작품을 따라 그렸다. 그의 자화상을 살펴보면 화면 중앙에 거인처럼 자신이 서있고, 검은 양복과 베레모를 쓰고 붓과 팔레트를 들고 있다. 배경 왼쪽을 자세히 보면 에펠탑이 보이는데, 예술의 도시 파리의 화가임을 보여주기 위해 그려 넣었다. 왼편 길가에 사람들이 걸어가는데 루소의 크기에 비하면 너무 작게 그려져 있고, 또 루소의 발을 자세히 살펴보면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어색하다. 이는 그가 해부학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의 그림 테크닉은 조금 떨어져도 그림 속에서 늦깎이 화가의 자부심이 느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연히 접한 낯선 풍경에 눈을 뜨다

지만 사람들은 루소를 ‘일요화가’라 부르기 시작했고, 이 표현은 평일에는 생계를 위해 일하고, 일요일에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조롱의 말이었다. 당시에는 화가라면 누구나 출품할 수 있는 무심사 전시 ‘앙데팡당전’이 있었는데 루소는 대중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출품했다. 가끔 작품 앞에서 관람객이 한참을 웃다가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고 전해지는데, 그 광경을 바라보던 루소의 마음이 어땠을까? 하지만 당사자인 루소에게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못다 이뤘던 꿈을 이루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루소는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만국박람회는 다양한 나라들이 참석해서 문화를 소개하는 거대한 행사에서 뜻밖의 영감을 얻게 된다. 루소는 타히티와 아프리카 등 새로운 문화와 풍경에 관심을 보였고, 열대식물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외국 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루소에겐 충격이자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이후 작품에는 열대 우림이 주로 등장하게 된다. 재밌는 것은 루소는 파리를 떠나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루소는 “이국의 낯선 식물들을 보면 꿈을 꾸는 듯 행복해진다”라고 말했다. 나이를 떠나 순수함을 잃지 않는 것은 참 매력적인 대목이자 누구나 순수함을 지킬 필요성을 생각해 보게 한다.

무시와 조롱을 딛고 파티의 주인공이 된 앙리 루소

러던 어느 날 루소의 그림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등장한다. 당시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젊은 예술가들이었다. 그들에게 루소의 그림들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 젊고 에너지가 넘치던 화가들은 전통적인 뻔한 그림에만 머물러있던 미술계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고 새로운 예술을 찾고 있던 찰나에 마침 루소의 그림에서 자유로운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히, 루소의 진면목을 발견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놀랍게도 20세기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파블로 피카소였다. 에너지가 넘치던 피카소는 기존 회화의 전통을 통째로 뒤집으려는 계획을 품고 있었고 마침 어떤 규칙도 받지 않는 마치 어린아이 같은 루소의 그림에서 힌트를 얻게 된 것이다. 피카소는 루소의 그림을 극찬하며 구입했고 당시 유명 예술가를 한데 모아 루소를 초청했다. 그리고 루소가 주인공인 파티를 열어주는데, 조롱당하던 노년의 일요화가는 그곳에서 모든 설움을 지워버리고 활짝 웃었다. 당시 피카소의 나이는 20대, 루소는 60대였다. 이 계기로 인해서일까? 이후 조금씩 루소의 그림 속 신선한 분위기를 호평하는 비평가들도 나타나게 된다.

그의 그림에서 꾸준함의 위대함을 깨닫다

소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앙데팡당전에 출품한 작품 <꿈>을 살펴보면, 밀림 숲 속의 한 장면 중앙에 사자 두 마리 뒤로 한 남성이 피리를 불고 있다. 왼쪽에는 소파에 누드의 여성이 누워있다. 한 비평가가 정글 한가운데에 왜 소파와 여자가 있는지 물었는데, 이에 루소는 “여자가 긴 의자 위에서 자고 있다가 밀림으로 옮겨진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이라 말했다. 제목 그대로 환상적인 꿈의 한 장면이었다. 루소는 이 한 작품을 그리기 위해 무려 50여 가지 초록색을 사용했다. 정글을 그린 작품 중에서도 그의 마스터 피스라 불리는 작품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이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 시인 ‘아폴리네르’는 이렇게 호평했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아름다움을 분출하는 그림이다. 올해는 아무도 비웃지 못할 것이다”.

리고 그 해 66세의 나이로 루소는 세상을 떠났다. 꿈을 이루고 싶었던 늦깎이 화가의 그림에는 어린아이 같은 소박함, 순수함이 담겨있었지만, 생전 루소의 순수함은 대중의 비웃음을 샀고 좌절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루려는 노력은 결국 세상의 비웃음을 존경의 미소로 바꿨다. 우리는 가끔 타인이 살아가는 속도와 스스로를 비교하며 불안해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비교가 아니라 누가 뭐라든 내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는 것 아닐까? 꾸준함의 위대함. 루소의 그림과 삶은 우리에게 말한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조금 늦어도 괜찮다.”라고.

정우철
정우철

EBS 클래스 e 도슨트 정우철의 미술극장
<알폰스 무하>, <툴루즈 로트렉>, <앙리 마티스> 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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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05-12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