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 미술관

그림 속 모델에서 위대한 예술가로

인상파 그림을 좋아한다면 한번쯤 듣게 되는 이름,
바로 수잔 발라동이다.
인상파 화가들의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녀는
훗날 캔버스 속 모델 역할에서 벗어나 당당히 화가로 자리매김한 여성이었다.

특히 19세기는 여성이 사회활동이나 교육을 받기가 힘들었던 시절이었기에 그 시절 가난한 사생아로 태어나 수많은 불행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룬 화가 수잔 발라동의 이름을 우리는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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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르누아르의 연인이자 모델이었던 수잔 발라동

잔 발라동은 모델 시절 르누아르와 연인 사이로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무렵 르누아르가 그녀를 그린 초상화와 훗날 그녀가 그린 자화상은 큰 차이를 보인다. 1885년 르누아르는 드레스를 입은 수잔 발라동의 모습을 그렸는데, 대체로 밝고 화사하며 볼은 살짝 발그레하게 표현했다. 마치 솜사탕 같은 느낌에 현실의 걱정은 잊은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1898년 그녀가 직접 그린 본인의 모습은 르누아르의 작품과는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전체적으로 무거움이 느껴지고, 어두운 배경 앞에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은 세상을 향한 어떤 불만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그녀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삶의 고단함, 험난한 현실 앞에서 강해져야만 했던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캔버스 속 모델로서의 수잔 발라동은 진실된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스스로 붓을 들고 진짜 자신의 모습을 그리게 된다. 험난한 현실의 벽을 넘어 비로소 화가의 삶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서커스 곡예사를 꿈꾼 비운의 여인

잔 발라동은 1865년 9월 23일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19세기 산업화와 도시의 발달은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를 가속시켰다. 가난 때문에 거리로 쫓겨난 사람들이 모이던 곳이 바로 몽마르트르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세탁부로 일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고, 알코올 중독까지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삶의 무게를 짊어져야만 했고, 열 살을 갓 넘기면서부터 상점이나 카페에서 혹은 재봉이나 세탁 일을 했다.

렇게 사회의 비주류에 속해 힘겨운 나날을 이어가던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서커스였다. 처음 서커스를 보며 느꼈던 흥분과 놀라움을 잊지 못해 곡예사라는 첫 번째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머지 않아 서커스 무대의 주인공이 될 기회가 찾아온다. 공중 곡예를 담당하던 단원이 몸이 아파 무대에 오르지 못했고, 이것은 그녀에게 하늘이 준 기회였다. 그렇게 무대 위에 올랐지만 공연 중 추락사고를 당하며 큰 부상을 입게 되고, 처음으로 품었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신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상처가 더 컸을 그녀는 화가가 된 뒤에도 종종 서커스 장면을 그리곤 했다.

진실된 자신의 모습을 담은 첫 번째 자화상

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말이 있듯 수잔 발라동은 모델로 일하던 친구를 통해 우연히 그림 속 주인공이 되는 일을 하게 된다. 처음 모델을 한 것은 1880년 퓌비 드 샤반의 화실에서였고, 그녀는 곧바로 모델로서의 재능을 뽐내게 된다. 이후 많은 화가들이 그녀의 모습에 매료되어 그림을 그렸고,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역시 르누아르의 그림일 것이다. 르누아르와 발라동은 비공식 연인으로 함께했다. 당시 화가와 가난한 모델이 연인이나 정부가 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르누아르의 <부지발에서의 춤>을 보면, 무도회장에서 한 커플이 춤을 추고 있다. 화려하고 하얀 드레스에 빨간 모자를 쓰고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은 마냥 행복해 보인다.

가의 주문에 맞춰 포즈를 취하며 그려진 본인의 모습을 보며 수잔 발라동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름답게 꾸며진 자신의 모습은 진짜 모습이 아니었기에 진실된 자신을 그리고 싶었던 걸까. 그녀는 곧 스스로 붓을 들기 시작한다.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는 모든 악조건 속에서 두 번째 꿈을 꾸게 된 것이다. 형편상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그녀는 모델을 하며 화가들을 관찰했다. 그들의 붓 터치를 어깨 너머로 배우고, 쉬는 시간마다 연필로 그림 연습을 하며 독학을 한 끝에 그녀는 드디어 자신의 첫 자화상을 탄생시킨다.

영혼의 단짝, 툴루즈 로트레크와의 만남과 이별

가들은 그녀가 그림 그리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여성이 그림 그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시대였다. 외적인 모습에만 집중했지 그녀의 내면을 바라보고 화가의 꿈을 알아준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았다. 그러던 그녀 앞에 화가의 꿈을, 그녀의 마음을 처음으로 이해해주는 화가가 나타난다. 그가 바로 툴루즈 로트레크였다.

트레크는 귀족으로 태어났지만 유전병으로 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이로 인해 사회에서 소외 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잔 발라동의 내면과 험난했던 삶이 보였던 것이다. 그는 그녀의 그림을 관찰하며 재능을 발견해주고, 방향을 알려주었다. 에드가 드가를 소개시켜주며 제대로 그림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왔다. 그녀 역시 진실된 마음으로 로트레크를 사랑했지만 로트레크는 스스로를 가정을 이룰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나머지 발라동의 청혼을 거절하고 둘은 헤어지게 된다. 사랑의 아픔은 있었지만 이제 조금씩 그녀의 예술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1894년에는 프랑스의 국립예술원인 보자르의 전시에 프랑스의 대표 화가들과 함께 그녀의 작품이 전시되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당시 여성 화가가 이 전시에 참여한 것은 최초의 일이었다.

정우철
정우철

EBS 클래스 e 도슨트 정우철의 미술극장
<알폰스 무하>, <툴루즈 로트렉>, <앙리 마티스> 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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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12-15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