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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드가는 1834년 7월 19일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당시 부유한 집안 출신의 화가들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법률가가 되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대부분이 그렇듯 체질에 맞지 않아 결국 포기하고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드가는 초기에는 고전주의 미술에 빠져 이탈리아 거장들의 작품을 보며 공부했고, 특히 좋은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선을 많이 연습해야 한다는 앵그르의 조언을 받아들여 데생 연습을 꾸준히 했다. 작품활동 초기에는 신화나 역사, 혹은 자연을 소재로 한 인물화를 주로 그리다가 유난히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탓에 오케스트라를 그리는가 싶더니 이후에는 점차 발레리나를 주로 그리게 되었다. 19세기 발레는 문화예술의 주축을 담당했을 만큼 황금기였다. 그와 함께 발레를 보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도 꾸준히 등장하던 시기였으며, 드가 역시 발레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선을 강조하는 신체 예술인 발레는 평소 데생이나 선을 중시했던 드가에겐 더없이 매혹적인 소재였다. 발레뿐 아니라 당시 부르주아 계층이 즐기던 서커스, 경마 등을 소재로 사람의 동작을 세심하게 관찰한 뒤 여러 번의 드로잉을 거쳐 다양한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드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무대 위의 무용수>는 시선의 위치가 조금 특이하다. 당시 귀족들이 주로 앉았던 위층 박스석에서 바라본 모습인 것이다. 무용수는 무대 위에서 우아하게 발레 동작을 취하고 있으며, 백색의 의상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듯 환하게 빛나고 있다. ‘발레의 화가’가 그린 대표작이라 부를 만한 작품이다. 그리고 또 하나 드가의 독특한 점은 무대 위에서의 모습뿐 아니라 무대에 오르기 전 리허설이나 무대를 마친 후 휴식을 취하는 모습도 선호했다는 점이다. 1879년 작 <두 발레 무희의 휴식>을 살펴보자. 이 작품은 고된 일과를 잠시 멈추고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발레리나들의 모습을 그렸다. 너무 과도한 연습을 한 것인지 고된 훈련과 연습으로 몸은 지칠 대로 지쳐 통증을 느끼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그들의 자세만 보고 있어도 피곤함이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이다. 이렇듯 드가는 발레 연습실을 수시로 드나들며 혹독한 연습에 시달리는 발레리나의 고통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했고,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생생히 묘사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드가의 작품들에 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일까? 사실 19세기에 발레리나는 우아한 직업이 아니었다. 현재와는 달리 당시 파리의 발레는 굉장히 타락해 있었다. 발레는 신분 상승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 예술 자체로서의 목적이 되기 힘들었다. 극장 안팎에서 좋은 스폰서를 만나 부르주아로 상승하는 것이 무용수들의 목표였다. 당시 파리 오페라극장에는 무용수들이 공연 전 몸을 푸는 공간인 무용수 대기실이 매우 많이 설계됐다. 그 이유는 당시의 부르주아 남성들이 발레리나를 감상하며 비즈니스를 하는 사교클럽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은 은밀하게 매춘 거래가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했다. 실제 당시 파리 오페라극장에는 VIP 관객들만 접근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드가의 <분홍과 초록 튀튀를 입은 무희들>에서도 우측 나무기둥 옆에 중절모를 쓴 검은 실루엣의 남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바로 성 구매자, 즉 스폰서였던 것이다.
드가의 대표작 <무대 위의 무용수> 역시 이와 같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공연을 하는 발레리나 왼쪽을 자세히 보면 또 한 명의 검은 정장을 입은 신사가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 역시 스폰서의 존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발레단 소속의 어린 소녀들은 주 6일의 힘겨운 노동에 시달리면서 오페라극장 정기관람권을 소유한 부유한 남성들의 눈에 들어 신분 상승하는 것을 유일한 희망으로 여기는, 매춘문화의 희생자들이었다. 드가는 이러한 현실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목격한 장면들을 작품에 남겨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을 자세히 보면 검은색 턱시도 차림의 얼굴 없는 남자가 그림자처럼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드가의 발레 그림 속에는 화려함 뒤에 숨겨진 예술가의 비애를 전하고 싶은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화가의 그림 속에는 우리가 놓치고 지나쳤던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음을 알고 감상한다면, 그저 아름답게만 보였던 드가의 작품도 완전히 새롭게 보일 것이다.
정우철
EBS 클래스 e 도슨트 정우철의 미술극장
<알폰스 무하>, <툴루즈 로트렉>, <앙리 마티스> 展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