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 미술관

원시로 떠난 화가, 폴 고갱

원시로 떠난 화가, 폴 고갱 원시로 떠난 화가, 폴 고갱
원시로 떠난 화가, 폴 고갱 원시로 떠난 화가, 폴 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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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로 떠난 화가, 폴 고갱 원시로 떠난 화가, 폴 고갱

증권맨의 삶을 버리고 화가의 길을 선택하다

고갱은 184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1년 뒤 기자였던 아버지가 정치 문제에 휘말리게 되면서 페루로 떠나게 되지만 정작 아버지는 페루로 가는 도중 배 위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한다. 이 때문에 고갱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고, 아버지의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채 성장한다. 고갱은 어린 시절 페루에서 본 거칠지만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훗날 그의 그림에 영향을 주게 된다. 몇 년 후 파리로 다시 돌아온 고갱은 증권 거래인이 되는데, 고갱은 이때 특출한 재능을 발휘한다. 증권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업계에서도 알아주는 인물이 된 것이다. 안정된 삶을 얻고 아름다운 여성과 가정도 꾸린 폴 고갱.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처음에는 일을 하며 주말에 취미로 그림을 그리다가 파리에서 활동하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점점 그림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경제적 빈곤이 가져온 고갱 가족의 불화

고갱의 초기작 중 잠든 아내의 모습을 그린 1875년 작 <소파에서 잠든 메테 고갱>이 있다. 흰 드레스를 입고 누워있는 고갱의 아내는 어두운 벽과 대조되는 하얀 피부로 그려졌는데, 아무 걱정 없고 여유로운 삶을 꿈꾸는 모습이다. 결혼 초기에는 부부 사이도 좋았다고 한다. 고갱은 돈도 잘 벌고 주말이면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성실한 남편이었다. 문제는 1882년 경기 침체로 프랑스 주식 시장이 붕괴되면서부터 일어난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고갱은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진다. 다시 증권 거래인으로 버티며 살 것인가, 아니면 화가가 될 것인가. 결국 고갱은 전업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이는 그의 아내에게 비극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고갱은 이때부터 화가로 성공할 것을 다짐하며 하루 종일 그림에만 몰두하느라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가정 경제는 오롯이 아내의 몫이 됐다. 하지만 고갱의 기대와 다르게 성공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결국 이런 생활에 지친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친정으로 떠나버리고, 가족들은 고갱을 마치 아내에게 빌붙어 사는 벌레 보듯이 했다고 한다.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과 싸우며 붓을 들다

고갱은 1885년 <이젤 앞의 자화상>을 그렸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 창백한 낯빛에 눈은 초점이 나가있다. 당시 그는 작업할 곳이 없어 좁은 다락방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래도 돈을 조금이라도 벌기 위해 전단 붙이는 일을 하며 포기하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그러던 어느 날 고갱은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가족을 두고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제8회 인상파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한다. 그에겐 하루 빨리 성공해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전시회에 가장 많은 작품을 출품했을 정도로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고갱의 그림은 관람객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 당시 그 전시회에는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바로 신인상주의라 불리는 조르주 쇠라가 점묘법으로 그린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작품이었다. 인상파의 짧은 붓 터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점을 찍어 그린 쇠라의 작품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한동안 파리 사람들을 완전히 매료시켰다.

오직 새로운 그림을 위해 찾아간 원시의 섬 타히티

이 사건으로 인해 고갱은 인생을 바꿀 진리 하나를 깨닫는다. 미술계에서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미술 형식과 기법을 개발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역사에 기록된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길을 개척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고갱은 결심한다. ‘예술가들이 모이는 파리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그림이 탄생할 수 없다. 어떤 화가도 도전하지 않은 곳, 새로운 곳을 찾아가야 한다. 그곳에서 이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그림으로 충격을 줘야 한다’고 말이다. 그곳은 어린 시절 그가 경험했던 것처럼 강렬한 태양이 모든 자연의 색을 물들이는 곳이어야 했다. 드디어 고갱은 새로운 그림을 찾아 파리를 떠나 브르타뉴의 퐁타방, 고흐와 함께 작업한 아를, 그리고 마지막 종착지 타히티 섬까지 가게 된다. 여러 곳을 떠돌아 다니며 고갱은 수많은 대표작을 탄생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고갱이 타히티 섬에 간 것은 알지만 그가 왜 원시의 섬까지 가게 되었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화가들에게는 도전해야 하고, 떠나야 하는 이유가 존재했던 것이다.

정우철

정우철

EBS 클래스 e 도슨트 정우철의 미술극장
<알폰스 무하>, <툴루즈 로트렉>, <앙리 마티스> 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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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10-19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