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만난 사람

뭔가 새로운 시작을 원한다면, 지금 시작하세요! [지대넓얕] 채사장

철학한답시고 글 안종준 그림 김지혜철학한답시고 글 안종준 그림 김지혜

올 한 해도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 인생에 올 해와 똑같은 해는 없을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가 만나는 매일매일은 우리가 처음 맞이하는 하루이며 그런 점에서 새롭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유일한 하루일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셈일 겁니다. 하지만 그 새로운 뭔가도 왜 매일 똑같은 일과가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질까요? 지겨울 정도로 말이죠. 이번 이야기의 주제는 시작입니다. 12월,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해야 하는 기간에 함께 생각해 볼만한 주제인 듯합니다. 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요즘 가장 주목 받는 작가, [지대넓얕]의 저자인 채사장을 만납니다.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똑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행복하고 즐거울 수도 있고, 또 반대로 괴롭고 힘들 수도 있다는 뜻일 겁니다.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에픽테토스(Epictetus)

특별하지 않은, 그러나 사실은 특별한...

흔히 세상은 보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말한 철학자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에픽테토스(Epictetus)가 있습니다. 그는 본래 노예의 신분이었으나 나중에 자유인이 되었고, 또 스토아 철학을 대표하는 현인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는 어떤 책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가 한 말들은 전해집니다. 그는 우리를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일은 우리를 둘러싼 사실이나 사물들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과 태도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 느냐에 따라 똑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행복하고 즐거울 수도 있고, 또 반대로 괴롭고 힘들 수도 있다는 뜻일 겁니다. 그저 그렇고 그런 하루라고 생각하면 그런 하루겠지만, 생각을 바꿔 매일을 새롭게 살면 또 그렇게 매일매일이 새로운 도전이 될 겁니다.

2015년 누구보다도 바쁘게 살았을 법한 채사장(참고로, 채사장은 필명입니다.)에게 올 한 해가 어땠는지 물었습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이 워낙 많은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내심 기대한 대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답은 의외로 반전이었습니다.

“별로 특별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바쁘기는 했지만.”

뭔가를 잔뜩 기대하고 물었는데, 대답이 너무 싱거워서 물어본 사람이 겸연쩍습니다. 글쟁이라면 꽤나 의미 있는 한 해였다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시작부터 멘탈이 흔들립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제가 미리 답을 생각해 두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도 한 번 더 고집을 피웁니다. 그렇게 밋밋하게 대답을 한 걸 보니 살면서 더 특별한 순간이 있었던가 하고 물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돈을 벌 궁리를 할 때였어요.

주식에도 빠져서 전업 투자도 하고. 그렇게 사는 일에 지칠 무렵 제주도에 여행을 갔다가 사고를 당해서 큰 일이 날 뻔 했죠. 그 일을 겪으면서 생각이 좀 많이 바뀌었던 것 같아요. 내가 뭘 하고 살고 싶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생사의 경계를 넘어보는 것은 확실히 특별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면, 그야말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순간일 수도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도 올 한 해가 바빴지만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았다는 말이 여전히 이해는 잘 안 갑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그 실마리가 잡힙니다.

사실 올 한 해 정말 여러 사람을 만났어요.

이런 저런 강연 자리에서 만나 뵙기도 했지만, 올 봄에는 많은 분들이 찾아오시기도 했거든요. 실제로는 자기 일들이 있으신 분들이어서 저보다도 바쁘신 분들이 많은데 저를 찾아오신 거였죠. 그 분들은 저를 만나러 오신 것만이 아니라, 바쁜 와중에도 가족들하고 주말에 여행도 가시고, 연극이나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시고 나름 삶을 즐기시면서 사시더라고요. 저는 그런 걸 못 배웠다는 걸 알았죠. 자기 삶이 지루해지거나 루틴에 빠지지 않도록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시며 사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래서 이제는 좀 즐기고 여유 있게 사느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아니요. 여전히 그렇지 못해요.

제주도에서 사고가 났을 때, 생각에 큰 변화가 있었지만 몇 년 지나보니까 다시 옛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어찌 보면 성향이지 싶어요. 사실 바쁘다는 것도 심리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실제로는 저보다 바쁘신 분들이 훨씬 많거든요. 강연을 할 때는 삶에서 여유를 가지시라고 말씀은 드려요. 미래에 뭔가를 만들어서 그것에 자신을 매어두지 말고 주어진 순간을 즐기라 말씀 드리는데, 정작 제 자신은 그걸 아직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 같아요.

이 사람 정말 솔직한 사람이지 싶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고 겸손한 사람이지 싶습니다. 올 한 해가 특별한 해였다고 말했다면,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인 겁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겁니다. 아니 좀 더 정직하게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경계하는 겁니다.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 잘 어울립니다. 특별한 것과 특별하지 않은 것 사이에 어떤 뚜렷한 경계가 있을까요? 에픽테토스의 말처럼 그렇게 보면 그런 것이고, 그렇게 보지 않으면 그런 게 아닐 겁니다. 아닌 게 아니라 채사장이 실제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역은 현실의 문제이기보다는 우리의 영혼과 정신에 관한 이야기들이라고 합니다.

사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었던 것은 세상을 좀 단순하게 보자는 거였어요.

- 단순함의 미학

“하지만 독자분들은 제가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져주시더라고요.”

내친김에 물었습니다. 인문학 공부 열풍에 큰 일조를 한 셈인데,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뭐였는지 물었습니다.

비록 독자분들이 제가 좋아하는 것과 다른 부분에 대해 귀를 기울이시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돼요.

텍스트라는 것이 그 자체의 생명력이 있는 거니까요. 각자 자신의 상황과 맥락에서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거죠. 그런 다양성은 또 중요한 거고요. 사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었던 것은 세상을 좀 단순하게 보자는 거였어요. 인문학 전도사쯤으로 알려져 있지만 책을 읽어라,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씀 드리려는 것도 아니었고요. 오히려 저는 그렇게 인문학 공부가 하나의 강박처럼 여겨진다면, 그게 더 문제라고 봐요. 책 읽기를 좋아하고 인문학 공부를 좋아하는 분들이 책을 읽고 사색을 하시는 거야 좋은 일이죠. 그런데 삶의 지혜를 꼭 책 속에서 찾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또 다른 반전입니다. 많은 분들에게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인데 정작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초밥을 만드는 장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분의 작은 손짓 하나에 그 분이 자신의 인생에서 깨달은 것들이 담겨 있을 거예요. 전 오히려 그런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인문학에 대한 요구가 강한데, 그게 새로운 강박이 되면 안 좋다고 봐요. 가뜩이나 경쟁 사회에서 스펙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인문학이 그런 스펙 목록에 들어가는 건 좋은 일은 아니죠. 그래서 제가 책에서 말씀 드리려고 했던 것도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최소한으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 말씀 드리려고 했던 거예요. 새로운 점이 있다면, 그걸 쉽고 단순한 방식으로 정리해 보려고 한 거고요. 많은 분들이 가뜩이나 복잡한 현실을 너무 복잡하게 설명하시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죠.”

우연히 학생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 취직하려면 인문학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인문학 공부가 강박이 된다면 그것은 진짜 인문학 공부는 아닐 겁니다. 채사장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됩니다.

한 시대의 담론이 사람들을 몰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20대와 30대의 사람들은 성장이 멈춘 시대를 살고 있죠. 그 윗 기성세대 분들은 성장 중심의 가치관을 갖고 계시고. 그래서 기성세대는 요즘 젊은 친구들이 도전의식이 없다, 소극적이다 말씀하시곤 하는데 그 세대는 노력하면 결과가 나온다고 믿으세요.
하지만 요즘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기대했던 만큼 나오지 않아요. 거기서 느끼는 좌절들이 있는데, 그건 세상이 달라졌는데, 그런 변화된 세상에 대해 예전 믿음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마 성장 없는 시대가 새로운 정상성이 되면 젊은 친구들도 그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되겠죠.”

험난한 삶을 살았던 에픽테토스는 우리네 삶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일이 있다. 하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것은 그 어쩔 수 없는 일에 매달려 있을 때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어쩔 수 없는 일에는 기다려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에 매달리다가 할 수 있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참, 단순하지만 명쾌한 말입니다. 채사장의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지 싶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겁니다.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보자는 그의 제안도 바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얼핏 세상을 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우리는 늘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사실 저는 자유주의자에 가깝습니다.
시장의 질서가 있어서,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결국에는 조화를 이룰 거라고 믿습니다

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을 믿는다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미리 걱정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싶습니다.

문제는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보는 것이고, 그 다음 결과를 기다려 봐야죠. 사실 이런 생각들은 주식을 했을 때도 배웠던 셈이죠. 주식을 하면서 배운 것은 내 귀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리지만 그런 것들이 모두 다 맞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거였거든요. 분명 고급 정보라고 들었기 때문에 아마 이렇게 될 거야 라고 예측해 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러면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각자가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세상을 보는 관점도 다르지만, 그런 다양성이 존중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 가능해도 세상이 훨씬 좋아질 거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시작이라고 마음을 먹을 때는 진짜 새로운 시작이라기보다는 새롭게 시작한다는 느낌을 갖고 싶은 경우가 많거든요.

- 새로운 시작은 우리의 태도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새로운 시작은 우리의 태도다.

다시 특별하지 않은 한 해를 보냈다는 말로 되돌아갑니다. 어쩌면 정말 새로운 것은 없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하는 결심을 언젠가 이미 했었고, ‘내년에는...’ 하고 다짐했던 것도 언젠가 마음먹었던 것을 다시 반복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누군가 나와 똑같은 마음을 먹었던 사람들이 있었겠죠. 문제는 그 새로운 시작의 새로움은 바로 그런 마음을 먹는 사람의 태도이지 싶습니다.

죽음과 삶이라는 게,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죠.

안에서 보면 들어오는 문이지만, 밖을 생각하면 나가는 문이거든요. 시작과 끝이라는 것도 비슷하겠죠. 우리가 새로운 시작이라고 마음을 먹을 때는 진짜 새로운 시작이라기보다는 새롭게 시작한다는 느낌을 갖고 싶은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많은 경우에 시작을 유예시키게 돼요. 연말이 되면 내년으로 그 시작을 미루죠. 새해에 새롭게 시작하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면, 그냥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시작하면 되는 것 같아요. 내일부터 다이어트 해야지가 아니라 그냥 지금부터 다이어트 하면 되는 거죠.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어린 사람과 어른의 차이를 저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느냐에 차이에 있다고 봐요. 어렸을 때는 일을 순차적으로 처리하려고 하거든요. 이것 끝나면 저것 하고, 저것 끝나면 또 그것하고. 하지만 어른의 사회에서는 동시에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이 많죠. 시작도 마찬가지 같아요. 지금 어떤 일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도 그냥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요.”

올 한 해 마무리하면서 내년에는 뭔가 새로운 시작을 결심하는 분들께 한 마디 해달라는 이야기에 내놓은 채사장의 대답입니다. 그의 신념대로 대답이 단순합니다. 제가 어깃장을 놓습니다. 그렇게 마음먹는 대로 시작하는 게 쉬운 일이냐고.

습관의 문제이기는 하겠죠.

2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계산하거든요. 언제 출발하면 좋은지. 10분 먼저 출발하면 도착할 때까지 편하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가게 돼요. 그렇지 못하면 가는 내내 불안하게 가게 되고요. 생각을 바꾸면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데, 그게 삶을 여유 있게 사는 요령이 아닌가 해요.”

뭔가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는 사람이라면 기억해 둘만한 요령입니다. 일상을 바꾸는 일, 혹은 새롭지 않지만 새롭게 만드는 비법, 결국 그것은 마음을 바꾸는 일일 겁니다. 채사장도 새로운 시작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시민이라면 알아야만 하는 최소한의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그 단순함의 미덕이 발휘될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사실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법은 간단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행복한 마음을 먹어보는 것입니다. 세상을 그렇게 보는 거죠. 그럼 정말 달리 보일지도 모르니까요.

정말로 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현자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그렇게 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저 그렇게 해라. 또 당신이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저 그렇게 하지 마라. 이 단순한 진리가 그토록 우리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요? 아마도 제대로 마음먹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에픽테토스가 말한 마음먹은 대로 행위 할 수 있는 힘의 비법은 아마도 용기이지 싶습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담담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용기. 정말 원하는 것이 있다면, 뭔가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면, 그저 지금부터 시작하면 될 겁니다.

박승억 (숙명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사진
김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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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12-17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