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 근육 키우기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

마음 근육 키우기 :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
마음 근육 키우기 : 그 사람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자신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배울 수 없다.”
- 에픽테토스 -

아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재빨리 검색을 해서라도 "나 그것 안다."고 말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는 것'을 무척 높게 평가합니다. 남들은 아는 것 같은데 나 혼자만 모르고 있는 것 같을 때, 상대가 물어본 것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대개 불편하게 느낍니다.

하지만 가장 지혜로운 사람 중 하나로 알려진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지요. '내가 아는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무지하다는 사실뿐'이라고 말입니다. 그가 겸손을 가르치려고 이런 말을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이 메시지를 여러 번 강조한 것은,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사람'만 배울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지혜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정말로
알고 있는 것일까?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의 경계는 얼마나 명확할까요? 앎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인지과학자들은 《알고 있다는 착각, The Knowledge Illusion》이라는 책을 최근 출간했는데요. 이 책에는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지 설명하기 위한 작은 실험 하나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다음 질문에 한번 답해보세요. 당신은 지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알고 있나요?

1. 전혀 알지 못한다.
2. 거의 알지 못한다.
3. 잘 알지 못한다.
4. 보통이다.
5. 조금 알고 있다.
6. 많이 알고 있다.
7. 완벽하게 알고 있다.
몇 번에 답하셨나요? 마치셨으면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이번에는 지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단계별로 차근차근,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해보세요. 뭐라고 설명하실 건가요? 한번 해보셨나요? 답을 하셨으면, 다시 첫 번째 질문에 답해보세요. 당신은 지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아마 이번에는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하나나 둘 정도 낮게 응답하시지 않았나요?

이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 비로소 내가 별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알고 있는데 말이 안 나오는 것뿐이라거나 지금 당장 기억이 자세히 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정말로 알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때로는 모르는
태도가 도움이 된다

어떤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가 '뜻밖의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알던 그 친구가 아닌 것 같지요. 하지만 내가 애초에 그 사람을 정말 잘 알고 있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내가 아주 일부분을 알고 있으면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걸까요? 이에 대해 간단히 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피상적인 수준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생각 실험 하나 해볼까요? 지금 누가 됐든 내 주변의 한 사람을 마음속에 떠올려보세요. 그리고 다음의 질문에 답해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나이는, 직업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나요?
그 사람이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들에 대해 충분히 답했다고 해도 한 사람을 다 안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어디까지 알아야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평생이 걸려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잘 모른다’는 태도가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를 잘 모르지만 좋아하고, 잘 모르지만 알아가고 있으며 잘 모르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어떨까요?

흔히 심리 상담에 대해, 사람을 보면 척하고 알아차리거나 마음을 꿰뚫어보는 일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나본 심리상담의 대가들은 오히려 ‘모르는 자’의 태도를 간직하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당신이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하군.'이라고 추측하고 알아맞히는 것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 좀 더 얘기해 달라. 잘 들어봐야겠다.'고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섣불리 안다고 생각하지 않고 계속 모르는 자로 남아, 작고 미세한 것까지 잘 듣는다는 것, 아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경청 아닐까요?

때로는
모르는 자로서의 즐거움을 느껴라

왜 우리에게 여행은 항상 즐겁고 신나는 일일까요? 아마 ‘모르는 자’로 있어도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낯선 곳에서 우리는 전문가 행세를 하지 않습니다. 지름길을 찾지 못해 돌아갔다고 자책하지 않습니다. 돌아가든, 길을 잃든 여행지에서 우리는 그 모든 경험에 관대해집니다. 애초에 ‘모르는 자’이기 때문이지요. 삶을 여행처럼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모르는 자’로서 있어도 되는 순간을 늘린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능해야 하고, 빨리빨리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모든 것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 우리 현대인에게 필요한 휴식이란 어떤 것일까요? 모르는 자로서 그대로 있을 수 있는 시간, 잘 모르기 때문에 귀 기울여 듣는 시간. 때때로 필요하지 않을까요?

변지영

변지영

소장

공생연 (공부와 생활 연구소) 소장으로 한국인의 복잡하고 특수한 ‘자아’ 개념과 이로 인해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학습된 무기력’ 증상을 연구하며 심리학과 철학의 경계에서 ‘삶이 되는 공부’의 방법론에 관해 연구중

역서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 저술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당신에게」 「항상 나를 가로막는 나에게」 「아직 나를 만나지 못한 나에게 」 등

  • ·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 · 본 콘텐츠는 사전 동의 없이 상업적 무단복제와 수정, 캡처 후 배포 도용을 절대 금합니다.
작성일
2017-12-08

소셜 댓글

SNS 로그인후 댓글을 작성하시면 해당 SNS와 동시에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공유하기

URL 공유시 전체 선택하여 복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