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며칠이 지난 9월 어느 날, 나는 루프트한자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여 베네치아로 갔다. 긴 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마르코폴로 공항에 내리자 여기저기 전광판에서 화려한 색채가 번쩍번쩍 돌고 있는 것이 역시 베네치아는 찬란한 색채의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베네치아 토박이 청년이자 카포스카리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세종학당 운영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줄리오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 일단 육지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관문인 로마 광장이 나온다. 정말이지 육지의 마지막인 로마 광장에서 대운하 쪽을 바라볼 때 한눈에 잡히는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모습은 그만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경탄에 빠지게 한다. 그림엽서 같고 화보 같다. 카날 그란데의 풍성한 물결이 흘러가는 왼쪽에 산타마리아 나사렛 성당이 있고, 스칼치 다리가 있고, 오른쪽에는 푸른 돔을 머리에 인 피콜로 성당이 있다. 비둘기들과 남녀노소의 사람들이 광장과 계단에 앉아 찬란한 일광욕을 하고 있다. 이 경이로운 아름다움! 자주 생각했다. 베네치아는 신이 혼자 만든 공간도 아니고 사람이 혼자 만든 공간도 아니다. 이 숨막힐 듯 아름다운 베네치아는 신과 인간이 함께 만든 비현실적인 경이로움의 공간이라고.
석 달간 머물 집을 본섬의 카나레지오 구에 정했기에 카도로역에서 배를 내렸다. ‘황금의 집’이라는 대저택을 왼쪽에 끼고 골목을 나서면 상점들의 거리가 펼쳐지고, 화려한 가면과 유리 공예의 상점과 호텔과 곤돌라 선착장과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고, 그 안쪽으로 주택가가 있다. 주택가 골목이 끝나는 곳에는 소운하가 흐른다. 여행 가방을 끌고 골목으로 들어가 이층집으로 올라갔다. 일층은 아쿠아 알타(우기에 비가 내려 운하의 물이 집으로 올라오는 것)가 올 때를 대비하여 비워놓기 때문에 베네치아의 주택은 이층이 삼층이다. 바깥에서 보기엔 빈민가처럼 보였지만 들어가 보니 집도 깨끗하고, 하얀 레이스 커튼이 흩날리고, 예쁜 베네치아풍 그림들로 장식된 실내가 아늑해서 좋았다.
그렇게 베네치아에서 석 달을 살았다. 거리 곳곳에 ‘비바 아르테 비바’라고 쓰여진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어서 비현실적인 축제의 시간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비바 아르테 비바’라고? 세상에나 ‘예술 만세?’ ‘예술 만만세?’ 예술을 찬미하고 예술가를 고취하는 이런 공기는 난생처음이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예술가적 자부심으로 내 가슴이 막 뛰었다. 순간 시곗바늘이 날개 돋친 듯 막 뒤로 돌아가 마치 내가 소녀시대가 된 듯 젊어진 것 같아 즐거웠다. 알고 보니 모든 비엔날레의 어머니라고 부른다는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이어서 국가관이 열리는 카스텔로 공원의 자르드니나 국제전이 열리는 아르스날레(옛날 무기제조창)를 제외하고도 베네치아 거리 곳곳의 미술관, 혹은 작은 성당이나 궁전, 저택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베네치아에서는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차게 뛰어서 내 심장이 하나뿐인 것이 못내 아쉽고도 슬펐다. 우리 동네 골목에서도 비엔날레의 전시작품들을 많이 접했다.
대학에 나가보려고 1번 리도행 수상버스를 타고 가는데, 배가 대운하 물결을 굽이치며 움직이자마자 바로 눈앞에 커다란 두 손이 물 위에서 불쑥 솟아올라서 깜짝 놀랐다. 어, 어, 어, 저것은 뭐지? 물에서 솟구쳐 올라와 건물의 벽을 붙잡고 있는 두 개의 하얀 손. 경이로운 손. 배는 쏜살같이 풍경을 스쳐 지나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두 손은 대운하 옆에 있는 카사그레도라는 아름다운 호텔 벽면에 설치된 <서포트(Support)>라는 조각 작품이었다. 영화배우 안소니 퀸의 아들인 로렌초 퀸이라는 조각가의 작품인데,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언젠가 침몰할 베네치아를 붙잡고 싶다는 소망을 두 손의 조각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이상하다. 언젠가 샌프란시스코에서도 그런 말을 들었는데. 앞으로 오백 년 안에 지진으로 인해 샌프란시스코는 소멸할 것이라고. 아름다운 것들은 늘 그렇게 소멸의 내러티브를 거느리고 있는 것인가? 불멸의 아름다움은 그런 소멸의 내러티브를 거느리고서야 자신의 한시적 찬란함을 더욱 애절하게 빛나게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필멸은 불멸의 어머니?
“메멘토 모리를 머리에 두르고 / 카르페 디엠을 전신에 펼치고 / 풍성한 누드로 누워있는 여인 같은 베네치아 // 불멸의 햇빛은 오늘도 찬란하건만 / 내일의 햇빛은 나를 모르리라 / 내일의 물결도 나를 모르리라 // 오늘의 사람들은 오늘의 물결에 씻기며 / 목욕하는 누드로 지상의 광채를 걸치고 / 일시에 물방울을 철철 흘리며 함께 일어선다 // 우리는 반짝이며 시계 안에서 살았다 / 온몸이 젖어서 시계 안에서 죽었다”
- 졸시 <베네치아처럼> 전문
배 안이 왁자지껄하다. 이탈리아어, 영어, 중국어 등이 뒤섞인 말들은 그저 음악만 같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이 도시로 와서 모두 이 배를 타고 가는 것만 같다. 배 앞쪽에 1번 버스 노선도가 붙어 있어 유심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산 마르코와 리도 섬 외에는 아는 이름이 없다. 1번 버스의 종점은 리도 섬이다. 리도는 베니스국제영화제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또한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무대가 바로 리도 섬이 아닌가. 주인공 노(老)작가 아센바흐가 바닷가에서 노는 사랑하는 폴란드 소년 타치오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너무 가슴이 아파 “타치오!”라고 부르며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다가 콜레라가 스민 몸에 심장마비가 와서 죽는 그 장면이 너무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살아있는데. 미국에 사는 딸이 추수감사절에 잠시 베네치아를 방문해서 함께 리도 섬에 가서 자전거를 빌려 타기도 했다.
카포스카리대학에 가기 위해 카 레조니코 역에서 배를 내렸다. 배에서 내리면서 대운하의 건너편을 바라보니 바로 앞 건물에서 ‘데미안 허스트 전’을 하고 있었다. 또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피카소 전’을 하고 있었다. 예술이 넘쳐흐르고 있다. 어둠침침한 골목을 한참을 걸어 들어가 마르가리타 광장을 지나고, 비둘기와 갈매기들이 싸우는 작은 광장과 서점과 극장과 성당과 강의실 건물들과 공자학당을 지나 장난감처럼 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다.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교수들이 함께 사용하고 있는 큰 공간의 한 쪽에 한국어 책이 진열된 서가가 몇 개 있고, 벽에는 고은 시인, 조용미 시인, 김광규 시인의 시 낭독 행사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한국말이 나보다 더 유창한 두르소 교수, 민정아 교수 등 교수진이 우수해서인지 이탈리아에서도 카포스카리대학이 한국어 전공 학생들이 가장 많다고 했다. 체류 중에 대학에서 한국 현대시에 관한 특강을 했고, 시 낭독도 했다. 10월에는 남 알프스 산맥을 넘어 파리의 동양학 대학에 특강과 시 낭독을 다녀왔고, 11월에는 런던 SOAS 대학에 특강을 다녀왔다.
참으로 많은 길을 걸어 다녔다. 거리로 나서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베네치아로 와서 캐리어를 끌고 모두 이 거리를 걷고 있는 것만 같았다. 또 가끔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즐겨 산책했다던 게토의 거리를 걸었다. 게토의 거리에는 역사의 침묵과 비애가 유난히 하얀 햇빛 아래 조용히 숨 쉬고 살아있는 것 같았다. 이 게토에 살던 베네치아 유태인 중 250명 정도가 아우슈비츠 등에 강제로 끌려가서 수용소에서 죽었다고 하지 않는가. 죽은 사람이 250명이라니.
릴케가 <두이노의 비가 1>에서 “너는 가스파라 스템파를 마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연인으로부터 버림받은 / 어느 소녀가 이 사랑하는 여인의 고결한 모범을 본받아 / 자기도 그녀처럼 되리라는 생각을 간직하게 하리만큼 / …… / 우리가 사랑하면서 연인으로부터 벗어나, 떨면서 참아내야 할 때가 아닌가 / 마치 화살이 힘을 모아 날아가서 / ‘그 이상의 존재’가 되기 위하여 떨면서 / 시위를 견뎌내듯이, 참으로 머무름이란 없도다”라고 노래했던 가스파라 스탐파(1523~1554)라는 여성 시인의 슬픈 생애도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실연으로 인한 육체적 소진과 우울증으로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었다. 깨진 심장 증후군이라고도 했다. 실연당한 이후 311편의 시를 쓰고 자신을 버린 콜랄티노 디 콜랄토 백작에게 그 시들을 헌정했다. 350년 후에 태어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만나서 그녀는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시인이라는 굴레를 벗고 현대적 여성 시인, 혹은 페미니스트 시인으로 강력하게 부활한다. <라임 8>에서 그녀는 “고통과 펜은 동등하다. 고통과 펜이 나 자신 안에서 동등해지도록 만들 수 없는가?”라고 묻는다. 상실의 고통을 시를 위한 영감으로 사용하고자 했으며, 그리하여 그것을 통해 자신의 생존을 얻었다. 그녀는 패러독스에 근거한 사랑론을 펼쳤으며, 스타일에 있어서도 매우 현대적이다. “사랑으로 인해 나는 저 불 속에 사는 / 지구상에 새로운 도롱뇽처럼 / 또는 다른 희귀한 피조물인, 피닉스처럼 / 소멸하고 동시에 솟아올랐다.” ( <라임 208> 전문)
사랑의 변전과 무상(無償)을 긍정하던 릴케에게 그녀는 초인간적 불멸의 사랑을 아는 위대한 여인으로 찬미되었다. 버림받은 여인들은 사랑의 성숙을 향해 변모하고 있는 중이며, 상실을 통해 불멸을 만들어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베네치아에서 릴케를 만났고, 릴케를 통해 사랑의 불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상실을 통해 불멸을 얻는다는 그 패러독스와 고통과 펜은 동등하다는 아름다운 진실도.
아침에 눈을 뜨면 햇빛이 아까워서 그냥 잠자코 있을 수가 없다. 창 밖에 넘쳐흐르면서 나를 부르는 것. 그것은 햇빛, 그리고 물결. 햇빛과 물결은 서로에게 생명의 영감을 주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오늘은 신이 주신 선물. 물의 출렁임, 혹은 굽이치는 일렁임 속에 생명은 일어나 꽃을 피운다. 오 솔레미오. 나부끼는 빨래들 속에 햇빛은 사랑의 노래를 쓰고 일분일초가 아까워 사람들은 집을 나선다. 생명에는 어떤 부글거림이 있는데 바로 베네치아의 거리가 그러하다. 그 거리에는 티셔츠나 스카프 등을 파는 중동인 노점상이 많다. 쌍욕 F자를 막 넣어서 “입 닥쳐라 구글”, “꺼져라 페이스북”, “나는 내 말을 하련다”와 같은 글귀들이 써진 티셔츠는 그 자체로 하나의 탈주였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에서 벗어나 내 말을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표현 욕구까지 티셔츠에 넣어 상품화하고 있으니 베네치아는 곧 자유를 상품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아니 그래서,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그런데 ‘알로라’라는 말이 왜 그렇게 많이 들리나? 줄리오에게 물으니 ‘알로라’라는 말은 접속 부사로서 그러면, 그래서, 그러니까 등의 뜻이란다. 길에서 만나 알로라 어쩌고저쩌고, 알로라 어쩌고저쩌고……하는 것은 말하자면 이탈리아에서는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일상적 수다의 풍경이다. 그렇게 다정한 접촉과 접속의 말, 알로라 어쩌고저쩌고, 알로라 어쩌고저쩌고 속에서 거리를 활보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아직도 그 어둡고 더러운 베네치아 골목의 이층집에서 한 늙은 동양 여자가 새벽에 일어나 조용히 시를 쓰며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시인, 1952년생
시집『달걀 속의 생』 『희망이 외롭다』 『도미는 도마 위에서』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산문집『베네치아 산문 -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