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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놀룰루로 쓰는 편지

녕하세요. 다들 잘 계시지요?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아득합니다. 하와이에서는 비행기 일정 때문에 갈팡질팡 헤맸고, 한국 들어와서 코로나 검사 받고 이런저런 조치를 하느라 경황이 없었어요.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강의 준비에도 정신이 없어 지나온 일들을 금세 잊었네요. 하와이 생활에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셔서 그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죄송스럽습니다. 걱정하시던 귀국 여정을 한번 돌아보고 하와이 생활의 소회를 적어 편지를 드린다는 것이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황이 그렇게 변할 줄은 하와이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꿈에도 생각 못했지요. 그때가 눈에 선합니다. 하와이대학교 한국학 센터(Center for Korean Studies, 이하 CKS)의 후의로 방문 연구자 자격을 얻어 도착했던 때가 지난 2019년 여름이었습니다. 8월 20일에 도착했지요.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던 하와이에서의 일 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조언해주셨던 대로 인하공원 앞에 숙소를 구했습니다. 인하대학교 설립에 공헌한 하와이 교포들의 노력을 기념하는 공원인데 인천, 하와이에서 인하로 명명되었다는 것도 숙소를 정하고 알게 되었지요. 이곳에서 하와이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와이 탄탈루스 언덕에서 내려다본 호놀룰루 전경

와이대학교의 한국학센터는 미국의 아시아 연구에 있어 아주 주요한 위치에 있는 연구소입니다. 주지하듯 하와이대학교는 미국 내에 가장 규모가 큰 한국학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고, 구미권 제주어 연구의 대가인 오글래디(William O'Grady) 교수, 고려 무신 정권 연구의 권위자 슐츠 교수,북한 연구의 권위자 해리슨 김 교수, 언어학자 전상이 교수가 그곳에 있습니다. 센터의 소장은 우리 또래면 누구나 알고 있는 백태웅 교수,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오랫동안 영어생활을 해야 했던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센터로 가는 캠퍼스 도로

와이대학교 마노아 캠퍼스로 가는 학교 셔틀버스가 인하공원 건너편에 섭니다. 9시에 타면 10분 만에 학교에 도착합니다. 매일 거의 같은 사람들이 탔습니다. 그 버스가 반가웠고, 그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 즐거웠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CKS로 가는 길도 좋았습니다. 학교에서 마련해준 연구실은 한국학 센터 2층에 있었는데, 이미 나와 같은 처지의 연구자들이 도착해 있었지요. 버클리대학교에서 한국의 대형교회 연구를 위해 온 히더 연구원(Heather M. Lehto), 그녀가 발표한 「How Korean Megachurches Have Changed the World-and Why You May Not Know about It」(한국 대형교회는 세계를 어떻게 바꾸어왔나- 그리고 왜 이것에 대해 잘 모를까)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브라질 음악, K-팝, 그리고 남미의 한류에 대해 관심 있는 서울대학교 서문과의 폴 스니드(Paul M. Sneed) 교수, 그리고 훈민정음에 대한 민족주의적 담론 비판으로 잘 알려진 상명대학교 정다함 교수, 대구대학교 최정운 교수 등. 매일 9시에 나가 4시 반에 돌아왔습니다. 그들과 이야기하고 점심 도시락을 같이 먹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에 관한 특강을 늘 듣지만 이야기는 주로 하와이에서의 ‘일상’에 대해서였어요. 그러니까 코로나로 하와이 지역이 락다운에 들어간 2020년 2월까지 6개월은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숙소에서 내려다 본 인하공원과 그 주변

<초국적 공간으로서의 북한>이라는 주제로 해리슨 김 교수가 조직한 학술대회에 참가하여 해리슨 교수의 <북한의 패럴 랙스 건축: 평양의 모더니즘과 반도시주의>를 들을 수 있었고,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는 한국학의 주제에 대해 점검하는 CKS의 <한국학 포럼>(The Forum on Critical Issues in Korean Studies)에서 박노자 교수의<한국의 사회주의> 특강도 들었습니다. K-Arts 공연의 일환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하와이대학교가 함께하는 국악 공연도 자주 열렸습니다. 한인 이민사에 대한 CKS 컬렉션 전시 및 심포지엄도 여기에서만 가능한 행사였습니다. 한국어 플래그십 과정(Korean Flagship Program)의 일환인 동아시아어문학과(East Asian Languages and Literatures) 학생들의 토론대회도 하나같이 의욕적이고 활기차 보기 좋았습니다. 그들의 한국어 실력은 대단히 놀랄 정도였습니다. 동아시아어문학과의 <한국 언어학 콜로키엄>(Korean Linguistics Colloquium)에서 발표되는 아주 실천적이고 수행적인 언어학 주제의 논문들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영화, 음악, 드라마를 아우르는 K-Arts에 대한 깊은 관심과 광범위한 연구, 그리고 북한에 대한 트랜스내셔널한 연구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해밀턴 도서관의 컬렉션을 전시한 <전후 북한의 일상생활 엿보기>(A Glimpse into Everday Life of Postwar North Korea, UH’s One-of-a-Kind of North Korean Materials)도 흥미롭게 관람했습니다. 쿠바 거주 조선인 후예들의 삶과 그 후예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 다룬 전후석 감독의 다큐멘터리도 이곳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에서 바로 그 감독과 함께 만날 수 있었습니다. CKS 콜로키움에서 발표된 하겐 구(Hagen Koo) 교수의 「Privilege and Anxiety: The Upper Middle Class in the Neoliberal Era」(특권과 불안)은 한국 내부에서 발표된 논문들보다 더 현장적이었습니다.

한국학센터 전경

렇게 살펴보니 하와이에 와서는 내내 한국에 관련된 강의와 세미나만 들었네요. 그러나 사실 매우 낯설었습니다. 한국어 토론대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문제를 고민하는 좌표의 어떤 위치는 국내의 시각과는 당연히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작은 차이 그리고 그 표현 언어와 대면하고자 이곳에 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 이곳에 지원하며 제가 제출한 연구 제안서의 주제는 ‘외국어의 번역 과정이 한국어의 구문에 미친 영향’이었습니다. 개화기의 신소설, 1920년대 염상섭의 소설, 그리고 해외에 유학한 후 돌아온 문학자들이 비평문에서 드러나는 그 문체의 형성과정을, 번역과 관련하여 살펴보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성경의 번역문체 그리고 인도유럽어족의 대표적인 문법 요소인 관계대명사가 번역되고 수용된 문체가 우리 근대 문체 형성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는 견지에서 말입니다. 물론 여기 하와이에서 비로소 시간을 낼 수 있겠다는 나름의 안이한 생각도 있었지요. 연구실에 앉아 매일 한 시간씩은 <열녀춘향수절가>를 작은 소리로 읽었습니다. 귀국하면 곧장 학생들과 함께 홍명희의 『임꺽정』 낭독회를 시작하리라, 그런 계획을 세우기도 했고요. 이 문체가 변형되어 현재의 소설 문체까지 왔다는 입장은 아닙니다. 그러나 서구적인 문체들로 인해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이 지점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이때 한국의 대구에서 코로나 환자가 대규모로 퍼지면서 불안했지만 하와이는 아직은 괜찮았습니다.

한국어 발표대회

들어 하와이 주 당국이 락다운을 단행하자 모든 공원과 학교, 해변의 주차장이 폐쇄되었습니다. 한국을 포함하여 하와이로 들어오는 대부분 국가의 비행기가 끊겼습니다. 모두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고, 마트에 가는 일 말고는 모두 집에 머물렀습니다. CKS에서 제 논문발표가 코로나로 인해 연기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통 해외의 경험을 도모하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생각을 갖는 것. 그러나 저는 CKS에서 한국에 대해서 더 경험하고 더 생각하려 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제 모든 관계가 단절되어 버립니다. 처음 겪는 세상. 그런 의미에서는 락다운 이후 본격적인 연구년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경험. 코로나 환자의 추이를 보며 집에 앉아 있었습니다. 생각도 많이 하고 불안했습니다. 5월이 되어 부분적으로 락다운이 풀립니다만 공원과 식당이 풀린 정도였고 학교는 그대로 닫혀있었습니다. 그리고 하와이 지역에 환자들이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차갑게 얼어붙었습니다.

헤로니모 포스터

국하려 예약한 비행기는 세 번 취소되었고, 하와이에서 인천으로 직항은 이제 없을 거라고 항공사에서는 단언했습니다. 미국 본토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도 한 차례 취소된 뒤에야 겨우 구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어느덧 귀국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8월 2일 아침, 노팁 택시로 아주 편하게 하와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은 정말 한적했고, 3분 만에 수속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 짐은 엘에이에서 찾을 필요 없이 인천에서 찾으라는 안내까지 친절히 해주었어요. 코로나에 대한 어떤 조치도 없이 바로 통과, 입국장 들어가는 데까지 10분도 안 걸렸어요. 식당이 문을 모두 닫아 미리 준비해 간 빵과 커피로 아침을 때웠습니다. 비행기는 세 자리당 한 사람 정도만 차서 허리가 아픈 집사람은 누워서 올 수 있었습니다.

해밀턴 도서관

에이공항도 한적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국내선에서 내려 공항 B까지 셔틀로 이동하는데 5분 정도 걸렸어요. 인천행은 4시간을 기다려 타는 거였는데, 대한항공 라운지는 문을 닫아서 공항 대기실에서 기다렸습니다. 엘에이발 한국행 비행기 탑승 시에는 몇 단계 절차를 거쳤어요. 우선 열 검사를 승무원들이 하고, 귀국 승객(인천 경유승객이 절반쯤 되는 듯)에게는 별도로 자가격리 의무를 고지해 주더라고요. 인천공항 도착. 비행기 안에서 받아놓은 서류 두 장에 입국 전, 입국 후 숙소 여행 경력을 기록하고 증상에 대해서도 신경 써서 항목별로 체크하였습니다. 입국장 입구에서는 서류 검토 일을 하는 젊은 군인들이 스마트폰에 자가격리 앱 설치하는 것을 도와줬습니다. 설치하자마자 자동 업로드되면서 구청 담당자 전화번호와 이름이 뜨더라고요. 감기 등의 증상이 있는 승객은 공항에서 바로 코로나 검사를 합니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바로 병원으로 가거나 준비된 차를 타고 격리시설로 이동합니다. 그렇지 않은 저희 같은 경우는 귀가하여 삼일 이내에 동네 보건소에 가서 검사를 받으면 되었지요.

항 밖으로 나오니 방역 밴 콜택시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차례가 되어 기사 분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 밴에 올랐습니다. 밴은 앞뒤 좌석이 비닐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기사 아저씨는 답답하면 열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체크하는 절차 때문에 입국하여 공항 밖 택시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린 듯합니다. 평소 인천 공항에서 저희 집까지 일반 택시는 15만 원쯤이라서 택시는 절대 안 타고 리무진을 타고 다녔는데, 이 밴 콜택시는 7만 원이었습니다. 어떻든 고마웠습니다. 짐이 없는 사람은 승객 수송 리무진이 별도로 대기 중이어서 그것도 좋아 보였습니다.

작지만 아늑했던 연구실

에 도착하여 짐 풀고 취침. 다음 날 아침 보건소로 갈 예정이었는데 전화가 서너 번 옵니다. 오는 방법, 자가 격리 주의사항 등. 그리고 문자 정보가 무수히 들어오네요. 보건소에서 생활 쓰레기봉투 대형 6장, 소독제 뿌리는 거 큰 거 두 개, 치약만한 젤 소독제 두 개, 안내문 등이 아파트 우리집 문 앞에 배달되었어요. 문 밖은 절대 못 나가고 모든 쓰레기는 그 봉투에 담아둔 후 격리가 끝나는 날 이를 아파트 수거함에 가져다 놓으면 자기들이 수거해간다. 등등. 보건소는 간호사, 의사가 모여 있었는데 이제는 조사 받은 사람이 거의 없는지 저희만 검사하고, 검사까지 서류 두 장 작성 5분, 실제 검사시간 30초, 집에 가라고 해서 왔는데 저녁때 문자로 옵니다. ‘음성.’

근을 시작했지만 강의는 온라인, 언제나 마스크를 쓰고 동료들과 만나는 일은 미뤄두고 있으니 정말 새로운 세상, 새로운 경험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며 방문학자의 목적한 바 새로운 경험, 새로운 생각이 어두운 세상을 마주하며 시작되는 듯합니다. 언제 뵐지 모르겠네요. 마스크 벗고 함께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립니다.

글, 사진 / 서경석

평론가, 1959년생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서
『한국 근대 리얼리즘문학사 연구』 『한국 근대문학사 연구』,공저서 『한국의 문화 70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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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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