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여로

위대함의 출처, 그레이트 네크 가는 길

위대함의 출처, 그레이트 네크 가는 길 F.S. 피츠제럴드와『위대한 개츠비』
롱 아일랜드 레일로드 - 그레이트 네크를 향하여
2013년 7월 23일 오전 10시 50분, 맨해튼 34번가 펜 스테이션(Penn station, 34th Street & 7th Avenue)에서 롱아일랜드 포트 워싱턴행 열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이스트 강을 건너 퀸스와 플러싱을 지나 그레이트 네크(Great Neck). 일명 롱 아일랜드 레일로드(LIRR, Long Island Rail Road). 맨해튼과 롱아일랜드를 잇는 통근열차 노선이다. 맨해튼 서쪽 허드슨 강 건너 팰리세이드 파크에 머물고 있는 내가 동쪽의 노선을 따르기 위해서는 하루 여행을 감행해야 했다. 여행이라면, 맨해튼과 한 시간 거리 안에 롱아일랜드의 와이너리들에 닿을 수 있었고, 대서양 연안에 톱니바퀴처럼 곶들이 들고나는 해안가 그림 같은 저택들을 순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날의 내 목적지는 와이너리도 해안가 저택들도 아닌, 그레이트 네크에서 개츠비라는 허구의 인물을 상상한 F. S. 피츠제럴드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맨해튼 펜 스테이션
△ 맨해튼 펜 스테이션
맨해튼에서 그레이트 네크 가는 길
△ 맨해튼에서 그레이트 네크 가는 길
그레이트 네크로 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행 작업이 필요했다. 5월 24일, 번개치는 폭우 속에 바즈 루어만 감독이 연출한 2013년판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맨해튼 34번가 펜 스테이션 옆의 상영관(AMC Leuws 34street 14)에서 보았고, 7월 3일, 내리쬐는 폭염 속에 지인의 자동차로 스무살 어름의 피츠제럴드가 학생 문사(文士)로 필명을 날리던 뉴저지 남서쪽 끝에 위치한 프린스턴대학 캠퍼스로 하루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6월의 여러 날들, 23살의 피츠제럴드가 젤다와 함께 보스턴에서 워싱턴 D.C.를 거쳐 남부에 이르는 자동차 여행 노선에도 일부 발을 들여놓았고, 틈나는 대로 마천루(skycraper)의 세계 수도인 맨해튼의 거리들로 나서곤 했다. 피프스 애비뉴 패션가와 메디슨 애비뉴, 타임스퀘어가 있는 42번가를 비롯 그 인근의 40번대 길들, 4번가와 그랜드 스테이션, 이스트 강변과 플라자호텔 근처를 숨바꼭질하듯 돌고 돌았다. 이 플라자호텔은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의 최후를 향한 결정적인 순간을 제공하는 공간. 피츠제럴드는 1922년 9월 롱아일랜드의 그레이트 네크에 집을 구하기 전에 이 호텔에 머물렀다. 개츠비의 동선(動線)을 따라 떠돈 지 두 달 여, 뉴욕을 떠나기 전날, 비로소 개츠비의 이웃이자 관찰자 닉이 알려준 대로 ‘뉴욕에서 정동쪽으로 길게 뻗어나간’ ‘길쭉한 섬’ 중간에 있는 그레이크 네크로 향했다.
집은 뉴욕에서 정동 쪽으로 뻗어나간, 시끌벅적하고 길쭉한 섬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섬엔 자연의 신비라 할 만한 기이하게 생긴 두 지역이 있다. 거대한 달걀 모양의 이 두 지역은 뉴욕으로부터 20마일쯤 떨어져 있었고, 외형은 서로 비슷했다. 만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작은 만을 사이에 둔 채 서반구의 바닷물 중에서도 인간의 손길이 가장 많이 닿은 거대한 롱아일랜드의 해협의 안마당 쪽으로 툭 튀어져 나와 있다. (…) 생김새가 너무 닮아서 하늘의 갈매기들도 헷갈릴 지경이다. 날개가 없는 것들은 그 두 지역의 모양과 크기 말고는 전혀 닮은 게 없다는 점에 더 흥미를 느낀다.

-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김영하 옮김, 문학동네
펜 역에서 출발하여 그레이트 네크에 도착한 것은 11시 40분. 이 역으로 말하자면, 당시의 흐름에 맞춰 증권계에 입문하려고 동부로 온 예일대 출신의 청년이자 소설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가 육촌지간인 데이지의 남편 톰에게 이끌려 그의 정부(情婦) 머틀의 맨해튼 아파트에서 광란의 밤을 보내고 롱아일랜드 집으로 가기 위해 추운 지하 대합실에서 반수면 상태로 조간 <트리뷴>을 읽으며 열차를 기다리던 곳이다. 열차는 이스트강의 해저 터널을 통과해, 소설에서는 건설 중으로 소개되는 롱아일랜드 철도를 따라 허름한 동네와 습지들을 지나 40여 분 달렸다. 열차가 지나가는 철도 주변의 퀸스와 플러싱은 소설에서처럼 여전히 공사 중인 곳이 많아서 어수선해 보였다. 맨해튼의 플라자호텔과 함께 소설을 파국으로 이끄는 장소인 재의 계곡(Valley of Ashes)의 형상을 볼 수 있을까 하여 차창 밖 풍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영화에서 재현된 장면들과 V.F. 시프라이드가 찍은 흑백 사진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피츠제럴드가 위의 인용에서처럼 이름붙인 두 개의 에그(소설의 웨스트 에그는 현재 그레이트 네크 킹스 포인트, 이스트 에그는 현재 맨해셋 네크의 핸즈 포인트)에 이어 이 재의 계곡은 소설에서 플라자 호텔과 더불어 의미심장한 공간. 이 둘은 밤이면 밤마다 호화로운 파티를 여는 개츠비의 그 으리으리한 대저택보다도 서사적인 파괴력을 품고 있는 곳들이다. 개츠비와 그의 첫사랑 데이지, 데이지의 남편 톰 뷰캐넌, 그리고 이들의 관계를 알아가면서 비교적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서술하려고 노력하는 내레이터 닉 캐러웨이, 데이지의 친구이자 닉에게 개츠비와 데이지와의 관계를 전해주는 조던 베이커. 이들은 데이지네 집에서 점심 식사 후 둘 셋씩 자동차에 올라타자마자 맨해튼을 향해 총알처럼 질주해 이 재의 공간을 통과한다. 그들이 미친 듯이 달려 이른 곳은 맨해튼의 플라자호텔 방. 데이지를 사이에 둔 개츠비와 톰 부케넌이 치고받고, 마약과 밀주업으로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개츠비의 치부가 까발려지고, 물러설 수 없는 대치 상태에서 개츠비가 데이지를 데리고 호텔방을 뛰쳐나오고,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롱아일랜드를 향해 광적인 질주를 하다가 결국 머틀을 차로 받아버리는 장소가 바로 이 재의 계곡이다.
웨스트에그와 뉴욕을 잇는 도로는 중간쯤에서 철로와 만나 4분의 1마일 정도를 나란히 달린다. 어느 황량한 지대를 피해가기 위해서이다. 바로 잿더미 계곡으로, 산마루, 언덕, 기괴한 정원에서 재가 밀처럼 자라는, 꿈에서나 볼 법한 농장인데, 이곳의 잿더미는 집이나 굴뚝, 혹은 그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모양을 하고 있다가 마침내는, 안간힘을 다해 회백색의 인간으로 변신한다. 인간을 닮은 그 회백색 잿더미는 어렴풋이 움직이는가 싶다가 그만 가루가 되어 공기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 하지만 잠시 보고 있으면, T.J. 에클버그의 눈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 얼굴 없는 두 눈이, 사라져버린 코 위에 걸쳐진 광대한 노란 안경 너머로 (…) 이 장엄한 황무지를 응시하고 있다.

-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김영하 옮김, 문학동네
열차가 플러싱을 통과하면서 뉴욕 메츠 구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재의 계곡 어름일 것이었다. 여기는 개츠비라는 사내의 무가치한 첫사랑의 순정을 재즈와 패션, 밀주와 마약으로 출렁이던 1920년대 미국의 현실에 투영하여 휘황하게 치장한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반전이 창출되는 곳. 개츠비를 죽게 만드는 결정적인 순간, 그래서 닉의 이야기 속에 액자처럼 끼워져 있는 듯했던 개츠비의 생애가 한껏 부풀어 올랐다가 어이없이 끊기는 풍선 줄처럼 허망하게 추락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곳. 바로 톰의 정부 머틀을 차로 받고 그대로 달아난 것은 개츠비가 아니라 데이지였다는 아이러니를 품고 있는 곳.
맨해튼에서 그레이트 네크 가는 길의 해안가 풍경
△ 맨해튼에서 그레이트 네크 가는 길의 해안가 풍경
그레이트 네크 역
△ 그레이트 네크 역
플러싱을 지나자 습지가 펼쳐졌다. 습지 멀리 만안(灣岸)에 요트들이 백조처럼 떼 지어 떠 있었다. 그레이트 네크 역은 시골 역처럼 작고 허름했다. 소설에서처럼 바다는 어느 쪽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역사를 빠져나와 목적지인 게이트웨이 드라이브 6번지에 이르는 미들 네크 로드의 풍경은 철도변의 퀸스와 플러싱과는 완연 다른 분위기였다. 거리 양쪽에 자리 잡고 있는 가게나 식당들, 거리를 오가는 백인들 모습이 유럽의 작은 부촌을 연상시켰다. 십 분 정도 걸어 게이트웨이 드라이브에 당도했다. 잘 가꾸어진 정원과 무성한 고목들 사이사이 저택들이 거리를 두고 펼쳐졌다. 하얀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그 집인가 했는데, 4번지 빌리지 홀이었다. 면사무소 급의 행정 건물이었다. 빌리지 홀을 왼쪽에 끼고 호선형의 도로를 따라 조금 걸어들어 가자 ‘붉은 색과 흰 색으로 칠한 조지왕조 식민지풍’ 저택이 무성하게 가지를 늘어트리고 있는 고목 아래 조용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레이트 네크 게이트웨이 드라이브 6번지. 거기 풀밭에 피츠제럴드와 젤다가 딸 스코티를 안고 있는 장면이 환각인 양 어른거렸다. 1923년에 찍힌 흑백 사진 을 본 탓이었다. 젤다와 피츠제럴드의 만남, 아니 데이지와 개츠비의 그것이 오버랩되어 떠올랐다.
그레이트 네크 게이트웨이 드라이브 5번지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를 구상하고 집필을 시작했던 집
△ 그레이트 네크 게이트웨이 드라이브 5번지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를 구상하고 집필을 시작했던 집
그레이트 네크 게이트웨이 6번지 피츠제럴드가 이사와 자주 파티를 열고 위대한 개츠비를 집필하기 시작한 집 현관
△ 그레이트 네크 게이트웨이 6번지
피츠제럴드가 이사와 자주 파티를 열고 위대한 개츠비를 집필하기 시작한 집 현관
그녀는 그가 처음 만난 ‘상류층’ 여자였다. 그는 자기 나름의 수단으로 그런 부류의 여자들을 꽤나 겪어왔지만 늘 거리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데이지에게는 완전히 빠져버렸다. 처음에는 테일러 기지의 장교들과 함께 그녀의 집으로 갔지만 나중에는 혼자 갔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 집이 숨 막히게 강렬했던 것은 데이지가 그 집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 개츠비에게는 집 전체가 무르익은 신비로 가득했다.

-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김영하 옮김, 문학동네
초목들이 무성하게 자란 정원으로 들어섰다. 주인은 어디에 갔을까. 유럽으로 여름 바캉스를 떠난 것일까. ‘이듬해 4월 데이지는 딸을 출산하고는 일 년 동안 프랑스로 여행을 떠났’다는 조던의 말이 메아리처럼 귓전에 울렸다. 젤다 역시 스코티를 낳고 이 집을 떠나 남편과 함께 프랑스에서 1년을 체류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레이트 네크에 닿기 전까지 나는 피츠제럴드와 젤다의 행로를 몇 년 간 뒤따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파리, 남프랑스 코트다쥐르, 맨해튼, 중서부의 미네소타, 뉴저지의 프린스턴대학까지…….
『위대한 개츠비』는 피츠제럴드가 맨해튼에서 이 집으로 옮겨온 뒤 쓰기 시작해서, 프랑스 코트다쥐르에 체류하며 초고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파리 센 강 좌안 뤽상부르 공원 옆에 아파트를 얻어 짧게 체류했고, 대부분은 남프랑스 니스, 앙티브, 주앙레펭, 생 라파엘으로 이어지는 코트다쥐르(알프스 마리팀이라 부르는 프랑스의 지중해 쪽빛 해안가 휴양 도시들)의 호텔과 빌라에 머물렀다. 니스에서는 프롬므나드데장글레(영국인산책로)와 케제타쥐니(미국둑) 경계에 있는 보 리바주 호텔에 투숙했고, 생 라파엘에서는 미국인 부호의 호의로 빌라 마리라는 저택을 얻어 살면서 『위대한 개츠비』의 초고 대부분을 썼다.
1922년 피츠제럴드가 ‘뭔가 새로운 - 뭔가 놀랍고, 아름답고, 단순한, 거기에 패턴에 얽매이지 않는’ 소설을 쓸 결심으로 착수한 이 소설은 경장편에 속하는 얄팍한 분량인데, 출간까지 4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초고를 완전히 다시 쓰는 개작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위대한 개츠비』, Matthew J. Bruccoli 주석 및 책임편집, 캠브리지, 1996, 참고).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작가의 집필 환경을 들여다보자면, 이 기간이 순전히 집필에만 바쳐지지 못했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집이든 여행지이든 작가에게 딸린 식구가 있다는 것은 집필에는 큰 장애이다. 내세울 것 없는 중서부 촌놈이 남부 명문가 출신의 미인을 아내로 맞은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던 것. 사치로운 삶에 길들여진 데이지를 연상시키는 아내 젤다와 어린 딸을 위해 피츠제럴드로서는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줘야 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집필 및 개작 과정만큼이나 이 소설은 여러 차례 제목이 바뀌었는데, ‘위대한 개츠비’라는 최종 제목으로 인쇄되는 순간까지도 피츠제럴드는 다른 제목을 찾고 있었다. 그는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가 보낸 ‘위대한 개츠비’라는 제목을 참을 수 없이 못마땅해 했다. 늦어지더라도 그 제목 대신 ‘빨강 하양, 그리고 파랑 아래 Under the Red White and Blue’로 바꾸라는 전보를 보낼 정도였다. 그러나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그의 뜻이 전해지기에는 너무 늦었고, 『위대한 개츠비』는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나 작가가 사랑할 수 없는 제목 때문이었는지, 피츠제럴드는 그것을 쓰기 시작한 이 ‘위대한 네크’에서 유래 없는 참패를 겪어야 했다. 20대 중반에 이미 스타 작가로 이름을 날렸던 피츠제럴드이지만 젤다와의 호화로운 생활을 오직 펜에 기대어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그레이트 네크 게이트웨이 드라이브 6번지. 저택 어디에도 피츠제럴드가 살았었다는 표지가 없었다. 그의 연대기 연구 자료에서 찾아낸 주소를 들고 찾아가 기웃거리는 나 같은 독자가 가끔 있을 뿐, 고목만이 성하(盛夏)의 깊은 그늘을 드리운 채, 현관문도 창문들도 굳게 닫혀 있었다. 십여 분 집 앞을 서성이자 육중한 풍채의 백발 노인이 마을 안쪽 길에서 걸어왔다. (묻지도 않았는데) 나를 보고 대뜸, “개츠비?!”하고 말을 걸었다. 자신은 근처에 산다고 밝혔다. 현재 그 집은 이탈리아인이 사서 리모델링을 한 상태라고 알려주었다. 이곳은 세금이 너무 비싸다고, 주민들이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있다고, 자신도 고려중이라고 큰 소리로 연이어 말했다. 보청기를 꽂고 있었다. 개츠비, 아니 피츠제럴드에 대한 자세한 내용보다는 이 마을의 사정에 대해서 들려주었다. 내 물음에는 동문서답 식으로 몇 마디 짧게 대답하더니 다시 한 번 “개츠비!”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보였다. 노인과 빌리지 홀까지 걸었다. 노인은 집 쪽으로 내처 걸어가고, 나는 뒤돌아 피츠제럴드가 한 때 살았던 집으로 갔다. 노인이 “피츠제럴드”가 아니라 “개츠비”라고 말한 것이 새삼 되새겨졌다. 참담한 실패 후, 피츠제럴드가 두고두고 후회했던 이름 개츠비, 그 여파로 아내 젤다는 정신병원을 들어가고 그 자신 알콜중독에 빠져 두고두고 저주했던 이름 개츠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름이 오늘 그를 세상에 되살려내고 있지 않은가.
로드아일랜드 와이너리에서 주조한 레드 와인과 파스타로 점심 식사를 한 뒤 맨해튼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레이트 네크 역으로 향했다. 열차 티켓을 끊고 기다리는 동안 역사(驛舍)를 둘러보았다. 1924년 준공했다는 동판이 외벽에 부착되어 있었다. 그 사실로 미루어 피츠제럴드가 이사 왔을 당시 철도는 한창 마무리 공사 중이었고, 기록에 나와 있는 바대로 그는 롤스로이드 자동차를 타고 재의 계곡을 통해 맨해튼을 왕래했던 것. 대합실에 들어가니 처음 도착했을 때는 못 보았던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롱아일랜드 레일 로드를 따라 개츠비 맨션 여행’을 알리는 광고였다. 영화 개봉에 맞춰 최근에 내건 프로그램인지, 6월에서 8월 중 매달 1회 진행한다고 알리고 있었다. 1975년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프랑스의 노르망디 시청을 본뜬’ 대저택으로 등장시켰던 오헤카 성(Oheka castle)을 비롯 롱아일랜드의 역사적인 저택들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피츠제럴드는 개츠비의 저택을 프랑스의 노르망디 시청을 본뜬 것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노르망디 시청이란 것은 따로 없다. 노르망디(Normandie)는 주(州)이기 때문에 만약 노르망디를 대표하는 시청이라면 주도(州都)인 루앙(Rouen)의 시청(Hotel de Ville)을 의미할 것이다. 몇 차례 방문했던 루앙, 플로베르와 아니 에르노의 루앙, 루앙 대성당과 시청들을 역사 벤치에 앉아 기억 속에 떠올려보았다. 개츠비의 대저택, 루앙 시청사...그럴 듯했다.
열차 티켓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는 닉처럼 벤치에 앉아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제목처럼, 개츠비는 왜 위대한가? 『위대한 개츠비』의 첫 장을 펼치면 짧은 헌사가 정면으로 박혀 있다. “다시 젤다에게.” 마침내 열차가 선로 저편에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대낮인데도 헤드라이트 불빛이 터졌다. 밤마다 개츠비가 집 앞 잔교(棧橋)에서 바라보던, 데이지네집 앞 잔교 끝에서 반짝이던 초록색 불빛처럼 아련했다. 열차는 정시에 맨해튼을 향해 그레이트 네크 역을 떠났다.
위대한 캐츠비
미국의 192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사회상과 무너져가는 아메리칸드림 등을 묘사하고, 주인공 개츠비의 사랑과 낭만적인 삶을 다루고 있다.
글과 사진
함정임_1964년생. 소설가.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설『이야기, 떨어지는 가면』, 『동행』, 『행복』, 『당신의 물고기』, 『아주 사소한 중독』, 『버스, 지나가다』, 『네 마음의 푸른 눈』, 『춘하추동』
산문집 『하찮음에 관하여』, 『그리고 나는 베네치아로 갔다』, 『인생의 사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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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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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