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여로

떠도는 삶,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

떠도는 삶 이청준의「선학동 나그네」
이청준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벌써 6년(2008년 별세)이 지났다. 그가 삶을 바쳐 이룬 작품들은 언뜻 보기에 매우 다양한 경향을 지닌 것 같다. 하지만 그 숲 한가운데로 두 길이 나 있다. 많은 품종의 나무들이 제각기 어느 한 길가에 서 있다. 이청준은 그 두 길에 ‘존재적 삶’과 ‘관계적 삶’이라는 명패를 붙이며, ‘나무’와 ‘새’를 각 삶의 표상으로 삼았다. 그에 따르면 《남도 사람》 연작은 존재적 삶을, 《언어사회학 서설》 연작은 관계적 삶을 다뤘다. 눈여겨 볼 점은 성격이 전혀 달리 보이는 두 연작이 「다시 태어나는 말」이라는 한 작품으로 맺어진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이청준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결국 《언어사회학서설》에서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삶의 관계를 형성하고 여러 법칙을 만들어 온 말들의 모습이나 우리와 그것과의 화해롭고 조화로운 질서를 찾는 일이, 《남도 사람》 연작에서 우리의 삶의 한 숨은 양식이나 존재의 근원을 찾는 일과 전혀 다른 일이 아님을 확인하게 되었다.’
《언어사회학 서설》 연작은 타락한 말이 순결한 말로 재탄생하는 과정, 그러니까 말이 부활에 이르는 과정인데, 그것이 《남도 사람》 연작에서는 소리를 통해 학이 다시 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여기서 ‘소리’는 무엇일까. 《남도 사람》을 요약해보면 남도 소리의 핵심은 한(恨)이고, 한은 삶의 과정에서 맺힌 매듭, 옹이다. 소리는 그런 한을 삶으로 푸는 양식이기 때문에 삶의 한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남도 사람》의 주인공은 시골의 삶에 끼지 못하고 소리를 찾아 떠도는데, 그의 떠돎은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의 여로다.
그 여로의 끝에서 말이 다시 태어나고, 새가 부활한다.
《남도 사람》은 모두 다섯 편이다. 1976년 4월 「서편제」를 시작으로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 「새와 나무」를 거쳐 1981년 「다시 태어나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남도 사람》 주인공이 가는 길은 지리상으로 보성-강진-장흥-강진-해남이다. 그 한가운데 「선학동 나그네」가 있다. 주인공 사내는 이 작품에서 비로소 장흥읍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는 선학동까지 간다. 그곳은 이청준의 고향 회진이기도 하다. 이청준은 ‘내가 좋아하는 한 마디 말’이라는 부제가 붙은 산문 「나그네」를 썼다. 그가 이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그네가 어느 곳에도 자신의 신전(神殿)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그네는 ‘자신의 신전을 자신의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의 삶, 어쩌면 그 자신이 차라리 자기의 삶의 신전으로 끊임없는 구도의 길을 떠나고 있는 사람’이다. 이청준의 소설 중 나그네가 표제로 쓰인 작품은 「선학동 나그네」뿐이다. 「선학동 나그네」의 사내는 이청준이 정의한 나그네에 잘 어울린다. 그 나그네의 여로를 따라가 보자.
아스팔트포장도로가 된 돌고개 산길
△ 아스팔트포장도로가 된 돌고개 산길
관음봉과 간척지
△ 관음봉과 간척지
몸의 길
사내는 지금 막 장흥읍에서 해안도로를 한 시간 남짓 달려 회진 시외버스 정류소에 도착했다. 그는 이제 선학동으로 가는 돌고개 산길을 넘어갈 것이다. 그의 마음은 학이 나는 정경을 곧 볼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있다. 하지만 돌고개를 넘어 마주한 풍경은 옛 모습이 아니다. 학을 닮은 관음봉 산 그림자를 비춰 날아오르게 하던 포구의 만조는 간 곳이 없다. 포구는 간척지로 변했다. 사내는 고개 마루에서 선학동과 관음봉을 그저 바라보다가 관음봉 맞은편에 있는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보름 지난 달빛이 들판 가득 내려 비추고 있는 밤 사내와 주막 주인이 마주한 술자리, 등잔불도 없는 주막 앞마루 술자리가 달빛으로 그만저만 밝았다. 거기서 사내는 자신과 깊은 관련이 있는 옛이야기를 듣고, 다음날 아침 관음봉이 보이는 돌고개 산길을 다시 넘어간다. 사내는 갔지만 남은 주막주인 눈에 그는 학이 되어 선학동 푸른 하늘을 날고 있다.
「선학동 나그네」는 여기서 끝난다. 하지만 우리는 연작 덕택으로 이후 사내가 갈 여로를 알고 있다. 선학동을 떠난 사내는 강진을 거쳐 해남 땅 초입 면소마을에 있는 과원 수림에 머물다 대흥사 일지암까지 갈 것이다.
내가 갔을 때 선학동에는 늦가을 찬비가 내리고 있었다. 「선학동 나그네」가 원작인 영화 《천년학》 세트로 지어진 주막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나그네의 마음이 쓸쓸해졌다. 회진 선학동 마을은 본래 산저 마을이었다. 문학이 한 마을의 이름을 바꿔놓았다.
선학동 주막
△ 선학동 주막
이청준 문학자리
△ 이청준 문학자리
마음의 길
사내가 달빛 술자리에서 주막주인과 나눈 얘기와 마음속에는 몸의 길과 다른 길이 있다.
사내는 30년 전쯤 선학동 포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돌고개 고빗길을 지나갔었다. 그때 선학동에는 이런 전설이 있었다. 선학동 뒷산 주봉인 관음봉은 고깔처럼 뾰족하게 하늘로 치솟아 오른 모습이 법승의 머리통을 방불케 하였고, 그 정봉에서 좌우로 길게 펼쳐 내려간 양쪽 산줄기는 앉아있는 법승의 장삼자락 형상이었다. 마을 앞 포구에 밀물이 차오르면 관음봉 쪽 산심에서 둥둥둥 법승이 북을 울려대는 듯한 신기한 지령음(地靈音)이 물 건너 돌고개 일대까지 들려온다고 했다. 그런데도 마을 이름이 관음리가 아니라 선학동(仙鶴洞)인 까닭은 그때 관음봉이 한 마리 학으로 물위를 날아오르기 때문이었다. 포구에 물이 들면 관음봉의 산 그림자가 물위로 떠오르는데, 그 그림자가 영락없는 비상학(飛翔鶴)의 형국이었다. 하늘로 치솟아 오른 고깔 모양의 주봉은 힘찬 비상을 시작하고 있는 학의 머리요, 길게 굽이쳐 내린 양쪽 산줄기는 그 날개의 형상이었다. 포구에 물이 차오르면 관음봉은 한 마리 학으로 물 위를 날고 선학동은 그 날아오르는 학의 품안에 안긴 마을인 셈이었다. 그런데 포구가 간척지가 되었으니 ‘관음봉은 이제 날개가 꺾이고 주저앉은 새였다.’
하지만 물이 없는 간척지에서 그 새를 다시 날게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눈먼 소리꾼 여자였다.
어느 해 가을, 선학동 주막에 소리꾼 부녀가 왔다. 앞을 못 보는 딸은 열 살 남짓한 계집아이였다. 그 딸이 이태 전 봄, 장성한 여자가 되어 20여년 만에 아비 유골을 갖고 다시 주막을 찾았다. 보성읍 밖 소리무덤에 묻혀있던 아비 유골을 선학동에 이장하기 위해서였다. 선학동에 있을 때 소리꾼 부녀는 해질녘 ‘포구에 물이 차오르고 선학동 뒷산 관음봉이 물을 타고 한 마리 비상학으로 모습을 떠올리기 시작할 때면,’ 그 비상학과 더불어 소리를 시작하곤 했다. ‘선학이 소리를 불러낸 것인지 소리가 선학을 날게 한 것인지 분간을 짓기가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렇게 서너 달 동안 아비는 눈먼 어린 딸아이의 소리에 선학이 떠오르는 포구의 풍정을 심어주었다. 그러니 여자의 소리가 황무지에서 학을 다시 날게 한 것이리라. 소리무덤에 생전 지어 묻힌 아비의 한과 함께 터진 여자의 소리가 비상학을 돌아오게 한 것이다. ‘여자는 눈을 못 보기 때문에 오히려 성한 사람이 볼 수 없는 물과 산그림자를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두 눈이 성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말라붙은 들판에서 있지도 않은 물과 산그림자를 볼 리가 없었다. 있지도 않은 물과 산그림자를 본 것은 그녀가 오히려 앞을 못 보는 맹인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성한 눈을 감고 선학이 날아오르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런데 여자에게는 소리장단을 잡아주던, 아비가 다른 오라비가 있었다. 오라비는 오래전 아비와 여자를 남겨두고 도망갔다. 그는 왜 달아나야 했을까.
3년 전쯤 오누이는 장흥읍 10여리 전, 탐진강을 끼고 돌아누운 산골주막에서 만난 적이 있다. 이때 사내의 어린 시절과 숙명의 태양, 살부(殺父)욕망과 도피에 관한 회한어린 내력이 드러난다. 어릴 적 사내는 어미가 해변가 언덕에서 울음소리 같은 노래를 웅얼거리며 콩밭을 맬 때, 찌는 듯한 여름 태양볕 아래 허리고삐가 매어져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뒷산에 숨어있던 소리가 산 어스름을 타고 내려와 어미를 덮치고, 어미는 소리 사내의 아이를 낳은 뒤 죽는다. 그 뒤 사내는 뜨거운 햇덩이를 괴롭고 고통스러운 소리의 진짜 얼굴로 품은 채, 그는 그렇게 지녀온 숙명의 태양, 소리의 얼굴을 만나기 위해 끝없이 떠돈다. 햇덩이가 이글거리는 콩밭과 콩밭 뒷산에서 들리는 소리를 둘러싼 이 인상적인 이야기는 「남도사람」연작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
그 콩밭은 이청준이 어린 시절 실제 어머니가 돌보던 곳으로 그의 문학이 태어난 자리이기도 하다. 소설에서처럼 해변가 언덕에 있던 밭에 서면 ‘파도비늘 반짝이는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고 한다. 지금 문학자리 앞은 선학동 포구처럼 간척지로 변했고 바다는 저 멀리 아득해졌다. 이청준이 떠난 뒤 그를 기리는 추모사업회에서 여러 사람의 뜻을 모아 그곳에 ‘문학자리’를 만들었다. 이청준의 호 ‘未白’이 찍힌 너럭바위가 놓이고 그가 직접 그린 장흥의 문학지도를 판석에 새기고, 그의 초상이 들어간 비도 세웠다. 그 ‘문학자리’에 이청준과 부모가 누워있다.
선학동 나그네
황무지와 같은 현실에서 날아오르는 영혼의 '비상학'을 꿈꿔온 작가 이청준.

『선학동 나그네』는
'비상학'이라는 상징적 형상과 함께
한의 정서가 자연을 통해 녹아들어
자연과 인간이 소통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이윤옥_평론가. 1958년생.
저서『비상학, 부활하는 새, 다시 태어나는 말』, 『시를 읽는 즐거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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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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