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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프루스트의 장소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프루스트의 장소들
1. 파리. 프루스트가 사랑한 장소들
2013년 3월에서 4월 사이. 일리에-콩브레에 다녀온 뒤, 마들렌으로 외출을 했다. 파리에 체류할 때면 가끔 오페라극장 근처에 가곤 하는데 마들렌 사원(Eglise de La Madeleine)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홍차와 패스트리(간식과 디저트용 과자류) 전문점 포숑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집에서 버스를 이용하든, 지하철을 타고 가든 10분이면 닿는 거리였다. 날씨가 좋으면 만보객 스타일로 에펠탑과 센강과 샹젤리제와 콩코르드를 거쳐 천천히 걸어갔다. 이번에 마들렌으로 외출한 것은 평소와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코린트 양식의 기둥 52개가 받치고 있는 마들렌 사원 옆 말레르브 대로(boulevard Malesherbes)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말레르브 대로 9번지 건물 안쪽 뜰에 자리잡은 아파트 2층에 한 소년이 살았다. 부유한 유대인 증권 거래인 집안을 외가로 둔 소년은 아버지가 파리의 유명한 의사였지만 천식을 앓아 병약했고, 어머니의 극진한 보호 속에 그 아파트에서 28세까지 살았다. 청년은 밤이면 19세기 말 벨 에포크 시절의 파리지엥답게 성장(盛粧)을 하고 한 손에 우아하게 지팡이를 잡고 문을 나섰다. 오른쪽에 우뚝 서 있는 마들렌 사원을 한번 바라보고 그 앞 그랑 대로(Grand boulevard)를 걸어갔다. 만약 청년이 사원 앞으로 가지 않고,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계속 길을 걸어갔다면, 침실 창문 밖으로 늘 돔이 보이던 생 오귀스탱 교회를 지나 오스망 대로(boulevard Haussmann)에 당도할 것이었다. 훗날 20세기 소설사에 청년의 이름을 올리는 소설을 집필하게 될 102번지 아파트 건물 앞에 서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말레르브 거리의 이 청년은 세상에 호기심이 많은 예술 애호가이자 소설가 지망생답게 문을 나서면 곧바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사원 앞을 걸어갔을 것이다. 걸어가다가 어느 날에는 대로 중간에 있는 막심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거나, 어느 다른 날에는 대로 끝 콩코르드 광장에서 사라질 것이었다. 육체적으로 섬약한 대신 문학적으로 집요했던 이 청년은 왼쪽 아니면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겼을 터,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단골 호텔인 리츠칼튼이 있는 방돔 광장에 이르렀을 것이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훗날 자신의 이름을 딴 산책로가 펼쳐지는 샹젤리제 대로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파리 17구 마들렌 사원의 모습
△ 파리 17구 마들렌 사원의 모습
파리 8구 몽소 공원
△ 파리 8구 몽소 공원
2. 마들렌에서 마들렌을 맛보다
말레르브 대로의 9번지 집은 일리에-콩브레나 몽소 공원, 파리의 라퐁텐 거리, 불로뉴 숲의 롱샹 경마장과 프레 카틀랑, 그리고 페르라셰즈 묘지처럼 시간을 내어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프루스트의 장소들 중 하나이다. 작가에게 초점을 맞추고 연대기적으로 장소들을 찾아 나설 수도 있으나, 자유 연상 기법을 고안한 프루스트처럼 그의 스타일에 따라 그날그날 발길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마들렌 광장에 도착하자 불안정하게 떠돌던 먹구름이 사원의 지붕을 누르고 있었고, 삼성 대리점을 지나 몇 걸음 가지 않아 말레르브 거리 9번지에 이르자 우박 섞인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졌다. 9번지 아파트의 문은 닫혀 있었고, 잠시 비를 피해 처마 밑에 들어선 낯 모르는 사내와 소나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곧 포석을 요란하게 두드리며 떨어지던 우박 소나기가 멎었고, 출입 코드 번호를 누르지 않았는데 등 뒤에서 문이 열렸다. 이어 서너 명의 잘 차려 입은 젊은 파리지엥 사내들이 문 밖으로 나왔다. 각자 개성적인 패션을 자랑했고, 다른 일행과의 약속을 확인하는지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막 소나기가 지나간 길가에 서서 대화하고 있었다. 그들이 대화하는 사이 문은 그대로 열려 있었고, 나는 열린 문틈으로 자유롭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벽에 부착된 투명 아크릴 판에 쓰인 거주자들 이름에 눈길을 주었다. 그리고 몇 걸음 걸어 통로 좌우에 난 계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안뜰로 나가 소년이 살았던 2층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계단은 고급스러웠고, 흰색 페인트칠이되어 있는 창문은 단아했다. 뜰에 자라는 나무는 없었는데, 가까이에서 새소리가 청아하게 들렸다. 창문을 올려다보고 서 있자니, 금방이라도 창문을 열고 누군가, ‘마르셀!’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았다. 소년의 이름은 마르셀, 파리 의과대학 교수인 아드리앙 프루스트 박사의 첫째 아들이었다. 아름다운 계단과 욕실이 있는, 말레르브 대로 9번지의 이 새 아파트에서 마르셀 프루스트는 세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살았다. 그의 51년의 생애 중 반을 이곳에서 보낸 셈이다. 그동안 그는 어머니의 저녁 키스를 절대적인 사랑의 징표로 성역화했고, 평생 지병인 천식 발작을 일으켰고, 명문 콩도르세 중고등학교에서 시인 말라르메를 만났고, 문청의 열병을 앓았고, 첫사랑을 겪었고, 사교계 귀부인들이 베푸는 파티의 맛을 보았고, 그 자신 또한 파티를 주재하며 파티 전후의 미묘한 흥분과 피로감을 경험했으며, 작가를 꿈꾸었다.
말레르브 9번지 소년의 집에서 나와 길을 건넜다, 포숑에 들러 오후의 홍차와 마들렌을 주문했다. 나른한 봄날 오후를 위해 새롭게 준비한 것은 찌르듯 깊은 바이올렛과 달콤한 야생 산딸기 향의 조화. 홍차 한 잔에 마들렌 한 조각을 살짝 적셔 베어 물었다. 그러자 지난 3월, 비 내리는 어느 아침, 일리에-콩브레의 생 자크 성당 주임 신부님을 따라 종루에 올라 내려다보았던 마을의 재색 지붕들과 스완네 집 쪽의 비본 개울을 따라 서 있던 미루나무들과 나무들 끝에 울울하게 시작되던 르 프레 카틀랑(Le Pre Catelan) 정원이 떠올랐다. 이어 아미오 고모부가 동양풍을 가미해 꾸며놓은 영국식 정원을 마르셀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는 듯했고, 정원가 생울타리 너머 산사나무 활짝 핀 그늘 아래 서 있는 스완 씨의 딸 질베르트와 그녀를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는 열서너 살의 마르셀을 보는 듯했다. 바이올렛과 야생 산딸기 향의 홍차와 마들렌이 담긴 박스를 직원이 건네주지 않았다면 나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맛에 빠져 현실과 허구가 뒤섞인 채 이 장면에서 저 장면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프루스트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 것이었다.
마들렌에서 맛보는 마들렌의 맛이라니! 마들렌 사원을 등지고, 말레르브 거리 9번지를 지나 생 오귀스탱 교회 쪽으로 내처 걸어 내려갔다. 문득 25년 동안 마들렌 사원 옆에 살았던 프루스트와 방금 내가 홍차에 적셔 음미했던 조가비 모양의 마들렌 과자 간에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가 마들렌 옆에 살지 않았어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작동시키는 결정적인 열쇠어(mot-cle)인 마들렌 과자가 등장할 수 있었을까.
생자크 교회 종탑에서 내려다 본 일리에 콩브레
△ 생자크 교회 종탑에서 내려다 본 일리에 콩브레
페르자 셰즈 묘지
△ 페르자 셰즈 묘지
3. 잃어버린 시간, 되찾은 영혼 - 프루스트의 푸른 노트와 펜
마르셀 프루스트 추종자, 일명 프루스티엥(proustien)들이 제일 먼저 찾는 곳은 일리에-콩브레일 것이다. 단적으로 퐁피두도서관의 프루스트 서가에 꽂혀 있는 수많은 프루스트 관련 서적들 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대상으로 한 사진기행서들의 첫 장이 한결 같이 일리에-콩브레가 차지하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고, 결정적으로는 7장으로 이루어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인 ‘마들렌 효과’의 추억담이 비롯되는 장소가 일리에-콩브레이기 때문이다.
어느 겨울날, 집에 돌아온 내가 추워하는 걸 본 어머니께서는 평소 내 습관과는 달리 홍차를 마시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셨다. (중략)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서 생 자크라는 조가비 모양의, 가느다란 홈이 팬 틀에 넣어 만든 ‘프티 마들렌’이라는 짧고 통통한 과자를 사 오게 하셨다. (중략)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중략) 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 그 맛은 내가 콩브레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레오니 아주머니 방으로 아침 인사를 하러 갈 때면, 아주머니가 곧잘 홍차나 보리수차에 적셔서 주던 마들렌 과자 조각의 맛이었다. 그것이 레오니 아주머니가 주던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의 맛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온 콩브레 근방이, 마을과 정원이, 이 모든 것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내 찻잔에서 솟아 나왔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2.
마들렌 효과란 작은 마들렌 한 조각이 과거 어느 시점의 기억을 불러내어 복원시키는 마술 같은, 그러나 동시에 자연스러운 현상을 가리킨다. E. M. 포스터에 따르면, 작가들마다 소설 속에 시간을 다루는 고유 운용법이 있는데, 마르셀 프루스트의 경우 가까이 또는 멀리 끊임없이 시계의 분침을 뒤로 돌리는 형국이다. 작가가 시간을 뒤로 돌릴 때마다 이야기가 생성되는 회상의 서사이기 때문에 독자는 속독을 자제해야 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하나의 회상에서 다른 회상으로 넘어가는 사이사이 무수히 많은 시간의 주름이 접혀 있다. 겨울날 외출에서 돌아온 화자에게 어머니가 건네 준 조가비 모양의 마들렌 과자를 홍차에 적셔 맛보면서 콩브레에서의 유년시절 삽화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듯이, 주름이 펼쳐질 때마다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이렇듯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 위해서는 프루스트의 시간 운용법에 적응해야 한다. 지난 2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파리에 체류하면서 프루스트를 집중적으로 만나는 동안 나의 시간은 프루스트의 시간, 곧 프루스트의 스타일에 맞춰졌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은 마르셀 프루스트로 짐작되는 작가 지망생이다. 따라서 이 소설 주인공의 동선을 따라가는 것은 작가에게 각인된 중요한 생(生)의 장소들을 찾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프루스트를 둘러싼 공간들은 크게 일리에-콩브레와 파리, 그리고 노르망디 해변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좀 더 세분해 보자면, 태생지인 파리 근교 오퇴이유 라 퐁텐 거리 96번지(2012년 민음사판 저자 소개를 최종으로 현재 한국어로 출간된 모든 프루스트 번역서에 이렇게 기재되어 있으나, 2013년 5월 1일 현재 필자가 답사한 바로 이곳은 파리시에 편입되어 파리 16구 파시 지구이다), 라 퐁텐 거리 이후 28살까지 살았던 말레르브 거리 9번지, 6살부터 9살까지 부활절과 여름 방학 때마다 머물렀던 아버지의 고향 일리에-콩브레(프루스트가 창조한 소설의 지명은 콩브레이고, 일리에는 프루스트 유년기의 행정 지명, 둘이 합쳐져 일리에-콩브레라는 행정명으로 공식적으로 개명되어 오늘에 이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묘사된 사교계인 파리 상류 부르주아 저택들로 이루어진 쿠르셀 거리 46번지(rue de Courcelles)와 그 앞 몽소 공원, 본격적으로 사교계에 드나들던 청년기의 샹젤리제와 콩코르드, 불로뉴 숲,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칩거에 들어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대부분을 집필한 중년기의 오스망 대로 96번지, 집필을 위해 체류했던 노르망디 해안가 호텔들과 파리의 리츠칼튼 호텔, 그리고 작가가 영면해 있는 페르라셰즈 묘지가 그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진정한 독법은 시간의 주름마다 꽃처럼 피어나는 여담에 빠져 ‘시간을 잃어버리는 과정’에 있다. 파리 4구 마레지구에 있는 카르나발레박물관에는 프루스트가 마지막으로 거주했던 16구 아믈랭 거리(rue Hamelin)의 작가의 방이 유품으로 재현되어 있다. 내 눈길을 끈 것은 침대 맡 스탠드 탁자에 놓인 푸른 노트와 펜, 그리고 벽에 걸린 아버지 프루스트 박사의 초상화와 그 아래 침대 발치에 놓인 지팡이이다. 프루스트의 모든 것, 곧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안과 밖 곳곳에서 살아 숨 쉬는 어머니 잔 프루스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1922년 11월 22일 프루스트가 숨을 멎은 직후의 모습이 동생 로베르 프루스트의 요청으로 사진가 만 레이에 의해 포착되어 전한다. 침실 건너편에는 프루스트가 높게 평가했던 여성 시인 안나 드 노아이유의 침실이 재현되어 있다. 카르나발레 박물관의 프루스트의 방을 나오면서 페르라셰즈 묘지 85구역에 있는 그의 묘를 생각했다. 그의 검은 대리석 묘석 위에는 시든 흰 장미 두 송이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누가 켜놓았는지, 아니 누가 매일 켜놓고 가는지, 심장 모양으로 모아놓은 작은 초들이 미약한 불꽃이나마 꺼지지 않고 계속 타고 있었다. 오랜 세월 글을 쓰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면서도, 글을 쓸 수 없는 무력감으로 생을 소모시킨 끝에야 세상의 빛을 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아카시아 흰 꽃잎이 눈처럼 떨어진 묘지의 포석을 밟고 내려오는 길, 프루스트가 전생을 바쳐 완성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구절이 귓가에 맴돌았다.
진정한 삶, 마침내 발견되고 밝혀진 삶,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체험하는 유일한 삶은 바로 문학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김희영 옮김
내일은 튈르리 정원을 가로질러 루브르로 베르미르의 그림을 보러가야겠다. 베르미르 전시회에 가기 위해 상기된 얼굴로 외출을 했던 프루스트처럼.
*참고자료, 마르셀 푸르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현대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나’의 성장과 시선을 통해 한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다양한 사유를 펼쳐 보인다. 인간 삶의 총체적인 모습들을 생생하게 담아냈으며 온갖 종류의 사랑에 대한 아름답고 비극적인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글과 사진
함정임_1964년생. 소설가.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설『이야기, 떨어지는 가면』, 『동행』, 『행복』, 『당신의 물고기』, 『아주 사소한 중독』, 『버스, 지나가다』, 『네 마음의 푸른 눈』, 『춘하추동』
산문집 『하찮음에 관하여』, 『그리고 나는 베네치아로 갔다』, 『인생의 사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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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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