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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세프 1세는 제국의 전통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이 귀족 계급을 폐지해도 오스트리아 제국은 1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귀족제도를 유지했죠.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정치에 무관심했으며, 유난히 예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미술 분야에서도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그려야 했던 고전주의 화법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었는데, 1874년 파리에서 개최된 제1회 인상파 전시회를 계기로 예술계에 새로운 바람이 붑니다. 당시 프랑스나 영국 등 유럽 각국은 시민혁명을 거치며 근대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이곳 빈만큼은 제국의 수도로서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바로크 시대에 갇혀있었습니다. 제국의 몰락을 외면함과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호화스러운 빈이었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보헤미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금 세공업으로 대가족을 먹여 살렸지만 가난했기에 클림트는 일찍 자립하고자 황실 장식공예학교에 입학합니다. 클림트는 당시 학생 신분으로 남동생, 친구와 함께 예술가 컴퍼니를 차려 사업을 시작했는데, 1884년 빈에서 회화의 왕자로 불리던 한스 마카르트가 사망하자 기회가 찾아옵니다. 1886년에 부르크 극장의 천장화 그리는 일을 맡게 된 것이죠.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예술 컴퍼니는 공로를 인정받아 황제 메달을 수상하기도 합니다. 젊은 나이에 명성을 얻으면서 경제적으로도 탄탄대로를 걷게 됩니다.
클림트가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화풍으로 유명해서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겁니다. 하지만 클림트는 그림을 매우 잘 그렸습니다. 부르크 극장 천장화 외에 그가 르네상스시대 화가들처럼 고전적인 화풍으로 얼마나 섬세하게 잘 그렸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빈 미술사 박물관의 <베아트리체> 그림입니다. 사진보다 더 생생함이 느껴집니다. 데생에 능했던 클림트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그림, 젊은 시절 천재 클림트를 만나기 위해 빈 미술사 박물관을 찾아가는 이유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