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클림트와 에곤 실레(2) - 새로운 예술로 출발


영원히 과거에 머물러 있을 것 같았던 빈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23명의 예술가들이 ‘오스트리아 예술가 분리파 동맹’이라는 조직을 결성합니다.
빈 예술계의 보수적 분위기에 저항하고 새로운 예술로 나아가자는 것이죠.

클림트도 고전적인 화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예술세계에 변화가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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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에 맞서 자신의 에술을 지키다

제7회 빈 분리파 전시회에 출품한 빈 대학 천장화의 스케치로 오스트리아 당국이 발칵 뒤집힙니다. 87명의 빈 대학 교수들은 클림트의 천장화를 대학에 전시할 수 없다고 반대 서명을 하죠. 클림트는 굴하지 않고 “어차피 이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가치도 없다.”라고 반박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그림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합니다. 하지만 사태는 점점 심각해지고 교수들은 물론 평론가, 나라에서까지 클림트의 천장화를 비난합니다. 클림트는 계약금을 돌려주고 “나도 이 작품을 주지 않겠다. 두 번 다시는 공공 건물 청탁 따위는 받지 않겠다.”라고 선언합니다.

클림트, 황금빛 세계를 열다

클림트의 황금시대 개막을 알리는 작품은 <베토벤 프리즈>입니다.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에게 바치는 찬가이자 모든 예술에 바치는 작품으로 화려한 금빛 구성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듬해 이탈리아 라벤나를 방문한 클림트는 6세기 비잔티움 모자이크의 화려함과 웅장함에 압도되고 영감을 얻습니다. 드디어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황금빛 모자이크에서 자신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예술의 길을 찾게 된 것이죠.

클림트는 작품 <유디트>에서 처음으로 배경에 금을 얇게 바르는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진짜 금을 사용했죠. 그의 그림 중 가장 많은 금을 사용한 <아델레 블로흐 - 바우어의 초상>도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소유권 문제로 소송을 거쳐 대중에게 공개하는 조건으로 경매에 부쳐져 무려 1억3천5백만 달러에 낙찰된 이 작품은 뉴욕 노이에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엄청난 가격으로 그림을 사들인 사람은 유명한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의 상속자 로널드 로더입니다. 누가 뭐래도 그의 대표작이며 황금시대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은 <키스>입니다. 라벤나에서 만난 비잔티움 모자이크를 생각나게 하는 황홀하고 신비로운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연간 10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벨베데레 미술관을 방문합니다. 아버지가 금 세공업자였기 때문일까요? 금의 특징과 금을 다루는 기법에 익숙한 클림트가 황금빛 화가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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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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