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동화

이야기새가 들려준 이야기

이야기새가 들려준 이야기
나는 이야기새야. 훨훨 날아다니다 멈춰 앉는 곳에서 보고 듣는 이야기를 먹고 산단다.
세상을 날아다니다 보면 별별 희한한 곳이 다 있어. 동쪽 나라에 있는 우는 모퉁이 흑흑대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라고 할 만하지. 그 나라에는 5살이 넘으면 아무 데서나 울 수 없다는 법이 있어. 바로 그 흑흑대에서만 울게 되어 있는 거야.
흑흑대는 한적한 강마을의 오래된 성당 담벼락이 꺾이는 자리에 있었지. 우는 모퉁이, 말 그대로야. 마침 성당 뜰 안쪽에서 자라는 울창한 밤나무 가지가 담장을 넘어 드리워진 덕분에 내가 그 가지에 앉아 있곤 해도 아무도 몰랐어. 내가 눈에 띄어도 나뭇가지에 새 앉은 게 대수로웠을 리 없지. 울기 바빠서 말이야.
참, 사람들 세상은 울 일이 많은가봐. 흑흑대는 밤낮 없이 우는 사람들로 붐볐어. 무엇을 잃고, 후회하는 울음과 눈물이 끊이지 않았지. 어떤 사람은 울음으로 그득 찬 병인 것처럼 그것을 콸콸 쏟아냈고, 어떤 사람은 뼈 마디마디에서 울음을 자아내듯 흐느꼈어. 웃듯이 우는 사람도 있고, 기침하듯이 우는 사람도 있었어. 하지만 모두가 어디서도 울 수 없어 참고 참았던 것을 내어놓는 터라 기도하듯 울었어.
흑흑대를 관리하는 이에게는 여러 가지 원칙과 규칙이 있는 듯했어. 그 덕분에 울려고 오는 사람들은 차례차례 정중하게 안내되어 충분하게 우는 시간을 누렸지. 어린 소년에서부터 허리 굽은 할머니까지, 흑흑대에 왔다 가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넉넉히 눈물을 흘리고 울음을 쏟고는 말쑥한 얼굴로 돌아갔단다.
나도 거기서 몇 방울 눈물을 떨어뜨린 적이 있는데, 다름 아닌 그 덩치 큰 밤나무가 가여워서였어. 자기 뿌리가 사시사철 몸서리치게 차가운 강물 속에 빠진 듯하다면서 끙끙 앓곤 했거든. 그뿐 아니야. 우는 사람들이 밤나무 가지를 할퀴거나 주먹질 하면서 울어댔거든. 한번은 거인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사내가 밤나무 가지를 뚝뚝 부러뜨리면서 우는 바람에 밤나무도 울음을 터뜨렸단다. 흑흑대는 이래저래 눈물바다 울음바다였어.
언젠가는 흑흑대에 와서 울던 사람들 모두가 울면서 웃은 적이 있어. 며칠째 한 엄마가 와서 밤나무 줄기를 쾅쾅 두드려 가며 우는데, 아마 아이를 잃었나봐. 아가, 아가, 소리치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지. 정말이지 파도에 배가 뒤집히듯 그 울음에 엄마 몸이 뒤집힐 것 같았어.
울음이 얼마나 그득 차있었던지, 하루는 그 엄마가 열흘째 와서 또 울고 있었을 때야.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 울면서 아가, 아가, 소리치는 걸 어디선가 아이가 듣고 온 것일까. 아니면 하늘까지 그 울음이 닿아서 아이를 데려다준 것일까. 하루는 대여섯 살쯤 된 아이 하나가 와서 엄마를 잃었다며 제 차례가 아닌데도 엄마, 엄마, 하고 엉엉 울어. 그러자 열흘째 줄을 서고 또 서가며 울고 있던 그 엄마가 문득 울음을 뚝 그치는 거야. 그러고는 줄지어 기다리는 행렬 쪽으로 다가갔지. 세상에, 엄마 잃은 아이가 바로 그 엄마네 아이였던 거야. 아아, 지금도 난 그토록 기뻐 놀라던 그 엄마 얼굴을 잊을 수가 없어. 울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엄마와 아이 쪽을 향해 한꺼번에 눈물을 흘리며 웃었단다. 눈물을 흘리긴 했지만 웃었으니, 법을 어긴 건 아니었어. 또 언젠가는 그 흑흑대에 개 하나가 와서 행렬을 이었어. 처음엔 모두들 지나가던 개가 잠시 엉뚱하게 끼어들었나보다 했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개도 울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관리인은 누구에게나 공정했지만, 이 개에 대해서는 어떤 규칙을 적용해야 될지 몰라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 하지만 개는 규칙을 아는지 모르는지 크게 잘못하지 않고 제 차례에 이르렀어. 그러고는 마침내 크르릉, 울기 시작했어. 아니, 울었다기보다는 짖었다고 해야 옳겠지.
개도 누구를 잃었을까? 무슨 후회할 일이 있었을까?
아무도 개의 사연을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개는 자기 울음을 다 울더니 겅중겅중 가벼운 걸음으로 흑흑대를 떠났어.
한번은 내가 흑흑대 근처 눈물 웅덩이에서 물 한 모금 마시는 참인데, 관리인이 흥건히 젖은 바닥에 마른 흙을 뿌리면서 혼자 중얼거렸어.
“흑흑대가 이런 시골 강마을이 아니라 수도 한복판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데 어디서 대답이 들렸어.
“수도에 있었지. 지금으로부터 325년 전에는.”
나도 관리자도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저만큼 떨어진 느티나무 아래에 늙은 나그네 한 사람이 이쪽을 향한 채 앉아 있었어. 틀림없이 그 노인이 대답을 한 거지.
관리자가 놀란 얼굴로 늙은 나그네에게 소리쳐 물었어.
“네? 그게 정말인가요?”
“정말이다마다.”
그러면서 늙은 나그네는 자기 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지.
관리자가 다가가자 늙은 나그네가 으흠, 하고 목청을 가다듬었어. 나도 얼른 아래쪽 나뭇가지로 날아가 자리를 잡고 앉았지. 난 이야기새잖아. 이야기새는 이야기를 먹고 살거든. 늙은 나그네가 이야기를 시작했어.
“흑흑대를 처음 정한 건 이 나라의 열 번째 왕이었지. 느지막이 공주를 얻었는데,
이 막내 공주가 울보야. 첫 새벽부터 깨어나 늦은 밤 잠들 때까지 공주가 울어대는데,
왕궁에 사는 사람들이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어.”
왕이 우두머리 대신을 시켜 온 나라 안이며 이웃 나라의 용한 의원들을 부른다, 점쟁이들을 부른다,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공주의 울음은 나아지지 않았대. 왕은 그토록 사랑스럽던 공주도 미워하게 되었고, 나아가 세상 모든 울음소리를 지긋지긋하게 여겼어. 마침내 공주가 다섯 살이 되자 왕은 새로운 법을 만들어 온 나라에 알렸더란다. 물론 공주도 시녀를 딸려 왕궁 밖으로 내보내었지.
열흘 뒤부터 이 나라에서는 정해진 장소 흑흑대에서만 울 수 있다.
이 법을 어길 때에는 중벌에 처한다.
흑흑대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 왕궁 후문 우물가
처음에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 그까짓 울음 좀 참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 울 일이 뭐 그리 많겠나 하는 생각도 했고 말이야. 그러나 왕궁 후문 우물가에는 날마다 온종일 사람들이 줄서 있었어. 울음을 참는다는 게 쉽지 않았고, 참는다고 참아지지도 않았지. 생각보다 울 일이 많기도 했어. 왕의 새로운 법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고약한 것인지, 불만에 찬 목소리가 높아갔어.
왕궁 사람들은 귀마개를 하고도 담장을 넘어오는 끔찍하게 슬픈 울음소리에 잠을 설치곤 했어. 왕과 왕비는 더구나 막내 공주의 울음소리가 또렷이 들리는 바람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곤 했더란다.
“흑흑대를 정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우물에 눈물이 흘러넘쳐 하필 왕궁으로 스며드는 것
도 문제였어. 왕은 축축한 옥좌에 앉아야 하는 게 끔찍했지.
이마를 찌푸린 채 우두머리 대신에게 흑흑대를 시골 마을로 옮기라고 명령했어.
공주도 시골로 떠나게 했더란다.”
늙은 나그네는 이야기를 마치자 고개를 들어 나를 빤히 바라보았어.
처음부터 내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는 걸 안다는 듯이,
마치 내가 그 가여운 어린 공주라도 된다는 듯이 말야.
나는 날개를 퍼득이며 휙 날아올랐어. 이마를 찌푸린 왕이 구름 속에 보였지. 내가 왕에게 말했어.
“막내 공주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울음을 그쳤을 거예요. 틀림없어요!”
나는 이야기새야. 훨훨 날아다니다 멈춰 앉는 곳에서 보고 듣는 이야기를 먹고 산단다.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언제든지 나를 부르렴.

이상희_시인, 그림책 작가, 1960년생

그림책  『외딴 집의 꿩 손님』  『도솔산 선운사』  『고양이가 기다리는 계단』  『내가 정말 사자일까?』 『엄마는 내 마음도 몰라 솔이는 엄마 마음도 몰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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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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