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동화

자라나는 돌

생각하는 동화 자라나는 돌생각하는 동화 자라나는 돌

아빠는 웬일인지 앞마당에 우북하게 자라난 개망초며 쑥을 놔두고 뒤꼍으로 갔다. 뒤꼍 풀부터 뽑는 것이려니 하고 나도 따라갔다. 그런데 아빠는 엉뚱하게도 장독대 밑을 가리키며 호미를 건네줬다.

“종인아, 여기 좀 파 봐라.”
“왜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빠를 쳐다보았다

“글쎄 한번 파 봐.”
“무슨 보물이라도 묻어 놨어요?”
“보물? 글쎄, 보물이라면 보물이라고 할 수도 있지.”

무엇이 묻혀 있을까? 나는 궁금증이 잔뜩 생겨 호미로 땅을 파헤쳤다. 호미질을 몇 번 하자 무언가 호미 끝에 부딪쳤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조심스럽게 주위의 흙을 긁어냈다. 갓난아이 머리만 한 차돌이 나왔다. 나는 돌을 이리저리 돌려 가며 들여다보았다. 한 면에 새끼손가락 손톱만 한 수정이 오톨도톨 돋아 있었다.

“와, 수정 돌이네! 수정 동굴도 있어요.”

동굴처럼 움푹 파인 구멍 안 에도 조그만 수정들이 작은 사마귀처럼 돋아 있었다.

“그 옆에도 파 봐라.”

나는 아빠가 가리키는 곳을 계속 팠다.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호미질이라 손바닥이 화끈거렸지만 수정 돌이 또 있을 거란 생각에 신이 났다. 주먹만 한 차돌 두 개가 더 나왔다. 둘 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의 수정이 박혀 있었다.

“와, 이건 더 크네. 그런데 아빠, 이걸 왜 여기 묻어 놨어요?”
“수정이 더 크게 자라라고 심어 놓은 거지. 아빠가 너보다 더 어릴 때 심은 거야. 그땐 빨리 자라라고 아침저녁으로 물도 많이 줬는데…어디 좀 보자.”

아빠는 수정 돌을 받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그동안 많이 자랐네. 하기는 삼십 년이나 지났으니까…. 수정이 아무리 천천히 자라도 이만큼은 클 수 있지.”

아빠가 빙긋이 웃으며 수정 돌을 다시 건네주었다.

“에이, 아빠 거짓말. 돌이 살아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커져요?”
“아니야. 이거 봐.”

아빠는 주머니에서 주먹만 한 차돌을 꺼냈다. 그 차돌에는 아빠 엄지손가락보다도 더 큰 수정이 박혀 있었다.

“이게 아빠가 여기 심어서 제일 크게 키운 수정이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에이 아빠, 거짓말이죠? 그런 얘기는 책에도 안 나오고 선생님도 얘기해 준 적 없는데요?”

나는 아빠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아, 이 녀석아. 아빠가 땅속의 돌을 연구하는 사람이잖아. 돌이 자라는지 안 자라는지 아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니?”

아빠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정말 같다. 아빠는 연구소에 나간다. 광물자원을 연구하는 곳이라고 한다.

“나도 한번 볼래요.”

나는 아빠에게서 수정 돌을 받아 들여다보았다. 수정이 정말 크고 투명했다. 아이들에게 보여 주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신기해할 것 같았다.

“아빠, 이거 나 가지면 안 돼요?”
“안 돼, 자기가 키운 돌은 다른 사람 주는 거 아니야."
“에이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나는 일부러 삐친 척 하며 앞마당으로 나왔다.

“집은 사람이 살아야지 비워두면 금방 상해. 할머니 돌아가신 지도 벌써 삼년이 넘었구나.”

아빠가 집의 여기저기를 살피며 툇마루의 내 곁에 와 앉았다. 할머니 집은 방 두 개 부엌 툇마루가 있는 작은 집이다. 이 작은 집에서 어떻게 아빠, 작은아빠, 고모가 함께 컸는지 신기하다.

“그런데 아빠, 아빠 수정 돌 저 주면 안 돼요?”

나는 눈치를 보다가 아빠를 다시 졸랐다.

“정말 갖고 싶니? 이 수정 돌 가지려면 꼭 들어야 하는 얘기가 있는데…….”

아빠가 빙긋이 웃으며 나를 보았다.

“무슨 얘기인데요?”
“이 돌의 수정이 어떻게 갑자기 크게 되었나 하는 얘기지.”

수정이 어떻게 갑자기 크게 되었을까? 무슨 마법의 주문이라도 있는 걸까? 재미있는 이야기일 것 같았다.

“좋아요!”

아빠는 주머니에서 수정 돌을 꺼내 만지작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빠가 꼭 너만 할 때야. 작은아빠는 여섯 살짜리 꼬마였고, 고모는 네 살배기 아기였지. 우리는 자주 뒤꼍 장독대 밑에 수정 돌을 심고 물을 주곤 했단다. 그러고는 거의 날마다 캐내서 컸나 안 컸나 들여다보곤 했지. 조금 큰 것 같기도 하고 그대로인 것 같기도 했어. 그때 아버지, 그러니까 우리 종인이 할아버지는 병으로 오래 누워 계셨지. 아버지는 정신이 맑을 때면 뒤꼍으로 난 안방 문을 열고 우리가 노는 걸 물끄러미 지켜보곤 하셨어.

그러던 어느 날이었단다. 부슬비가 오는 여름이었지.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동생들이 집에 없었어. 어머니를 따라 밭에 나갔나 보다 하고 안방 문을 열었지. 그런데 안방에 아버지도 없는 거야. 뒤꼍으로 난 안방 문이 열려 있기에 얼른 장독대 밑으로 가 보았어. 아버지는 장독대 밑에 비를 맞으며 쪼그려 앉아 계셨어. 나는 깜짝 놀랐지. 아버지는 몇 달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시질 못했었거든.

“아버지, 괜찮으세요?

나는 얼른 달려가서 아버지를 부축했어. 아버지는 내게 기대서 겨우겨우 방 안으로 들어가셨어. 자리에 누우셨는데 몹시 안 좋아 보였지. 하지만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계셨어.

“수종아, 네가 심은 수정 돌이 많이 자랐더구나.”

아버지는 그 말만 남기고 잠에 빠져들었어. 의식을 잃은 거였지. 그리고 며칠 뒤에 돌아가셨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서였어. 문득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생각나 장독대 밑을 파 보았어. 그랬더니 엄지손가락만 한 수정이 박힌 이 돌이 나왔어. 분명히 손톱보다도 작은 수정이 박힌 돌을 심었는데 말이야. 잘 안 믿겼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었지. 아버지는 몇 달 동안 혼자서는 화장실에도 못 다니셨거든. 그러니 아버지가 몰래 다른 수정 돌을 주워다 묻으실 수는 없는 일이었지.

그 뒤로 이 수정 돌을 만지작거리면서 참 많은 상상을 했지. 엄마의 배 속에서 아기가 자라듯이 땅속 깊은 곳에서 돌들이 자라는 상상 말이야. 돌들이 꿈도 꾸고, 여러 가지 보석으로 자라기도 하고……. 그 땅속 깊은 곳의 돌들만 생각하면서 살 수 있으면 참 행복할 것 같았지. 선생님에게 물어봤더니 그런 일을 하는 게 광물학자라고 하더구나. 그래서 그때부터 광물학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단다.

아빠는 말을 끊고 빙그레 웃으며 그 큰 수정이 박힌 돌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아빠, 그 수정은 진짜 아빠가 심은 돌이 자라난 거예요?”
“글쎄, 넌 어떻게 생각하니?”
“잘 모르겠어요. 진짜 그랬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었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정말 헷갈렸다. 돌들이 진짜 자랄 것 같기도 하고 거짓말인 것 같기도 하고…아빠가 잠시 무슨 생각인가를 하다가 말을 꺼냈다.

“이 동네에 복순이란 애가 살았어. 별명이 싸남쟁이였지. 우리 학교에 그 여자애 이기는 남자애가 없었거든.”

“그런데요?”

“그 애가 아빠랑 초등학교 6학년 때 짝꿍이었어. 어느 날 복순이에게 이 수정 돌을 보여 준 적이 있었어.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 이삼 년 뒤였지. 그랬더니 복순이가 이 수정돌은 자기가 개울가 동굴에서 주운 거라고 하더라. 복순이는 툭하면 학교를 잘 빼먹었는데 그날도 학교 빼먹고 놀러 가는 길이었대.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길가에 주저앉아 있더래. 인사를 했더니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큰 수정이 박힌 돌을 좀 주워 달라고 했다는구나. 그때 이 수정 돌을 찾아 주었대. 그리고 아버지를 부축해서 집에까지 바래다 드렸다고 하더구나.”
“그럼 그 큰 수정이 달린 돌은 할아버지가 몰래 바꿔치기하신 거네요?”

“그렇지.”

“할아버지가 몸도 아픈데 왜 그러셨어요?”

“할아버지는 가난한 농사꾼이었지. 그리고 오랫동안 병치레를 하셔야 했고. 그래서 아빠한테 남겨 줄 게 아무것도 없었지. 게다가 어린 동생들만 맡기고 가야 하니까…. 무척 미안하게 생각하셨을 거야. 그래도 마지막으로 무언가 꼭 해 주고 싶은데 달리 해 줄 건 없고… 우리 노는 걸 지켜보다가 수정 돌을 생각하신 거겠지. 그래서 마지막 힘을 다해 수정 돌을 찾으려고…….”

아빠는 말끝을 흐리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눈물 같은 게 반짝였다. 나도 괜히 콧마루가 시큰해져서 고개를 숙였다.

“자, 이제 이 수정 돌은 네 거다. 아빠한테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었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면서 살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아빠가 수정 돌을 내 손에 꼭 쥐여 주었다.

김진경_시인, 소설가. 1953년생시집 『갈문리의 아이들』 『광화문을 지나며』 『우리시대의 예수』 『별빛 속에서 잠자다』, 소설 『이리』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 『그림자 전쟁』, 어린이책 『고양이학교』 『괴물 길들이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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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12-04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