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담는 카메라

소나기

소나기
포토그래퍼 ‘소담’이 사진으로 남기는, 소설 ‘소나기’ 감상기.
By sodam
난생처음 찾아온 이를 모를 감정을 온 몸으로 깨우치려 안간힘을 쓴다.
‘소년은 두 손으로 물 속의 얼굴을 움키었다.
몇 번이고 움키었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고
말았다. 소녀가 이리로 건너오고 있지 않느냐.’

소나기 속 소년 소녀의 나이는 열둘쯤 되었다.
아이들은 마치 거울처럼, 누구 하나가 하는 짓을
똑같이 따라하며 움직인다.마치 말하고 걷는 것을 처음 배우는 존재처럼. 난생처음 찾아온 이를 모를 감정을 온 몸으로 깨우치려 안간힘을 쓴다.

열두살 즈음
우리 모두가 그 애의 이름을 입 속으로 되뇌며
나도 모르게 그 애의 행동을 따라 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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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소년이 번갈아 가며 앉아있었을 것 같은 개울가에 얼굴을 비춰보았다.
#소나기 #황순원 #소년 #소녀 #개울가 #열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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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황순원 #부른순간 #상상했을순간 #마주본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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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 세상이 멈추었다.
저 멀리 개울가에 앉아있던 소녀가 처음으로 소년을 부른 순간
아마도 머리 속으로는 수십 번 수백 번도 상상했을 순간
자기도 모르게 돌아선 소년이 소녀의 눈을 마주 본 순간

모든 것이 아무래도 상관없어지고
누군가 내 마음의 건반을 마음대로 두드리는 듯한 그 감각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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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추고 바람도 숨을 죽였다. 너의 눈을 바라본 순간.
#소나기 #황순원 #포토에세이 #여름소설 #가을 #기다리던
#소나기 #황순원 #포토에세이 #여름소설 #가을 #기다리던
소나기가 여름 소설이라고 생각한 건 어디서 시작된 착각일까?
다시 읽어본 소나기는 단풍이 흐드러지게 핀 가을날의 이야기였다.
문득 청명하고 높은 하늘이 떠올라 약간 한기가 들었다.
지금의 뜨거운 햇빛만으로는 느끼기 힘든 상쾌한 공기.

반팔 아래로 훤히 드러난 팔뚝을 두 팔로 만져보았다. 먹먹함이 묻어난다.
개울가에 앉아서 소녀를 기다리던 소년이 된 기분으로
나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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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달라지는 것만으로 하늘의 높낮이가 다르게 느껴지는 건 언제나 신기한 일이다.
가을의 표정을 하고 있는 하늘을 담았다.
#조약돌 #시멘트 #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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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 중얼거려 보았다. 단어가 날아와 마음에 파문이 인다.
발음만 해도 매끈하면서 까끌하게 돋아난 돌의 표면이 손가락에 생생하다. 소녀의 온기가 남은 조약돌을, 소년은 소중하게 어루만지고 다녔다.

그러고 보니 조약돌을 만진 지가 언제였더라?
그토록 흔하게 발에 채였던 조약돌들은 모두 녹아서 시멘트 아래 깔려버린 건 아닐까.
어쩌면 이 세상 소년의 주머니 속에 하나씩 숨어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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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개울가에 앉아 만지작거렸을 돌무리 속 조약돌
노란 꽃을 좋아했었구나, 너는.
‘하나도 버리지 마라”

소나기를 학교에서 공부했을 때
국어 선생님은 소녀의 보랏빛 꽃이 비극과 절망의 상징이라고 강조해 말했다.
하지만 보랏빛 꽃만 남아있는 내 기억과 소설은 조금 달랐다.

소설 속 소녀가 꺾어 들었던 꽃은
양산처럼 생긴 노란 마타리꽃이었다.
노란 꽃을 좋아했었구나, 너는.
살포시 보조개를 떠올리는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소년이 필시 그랬을 것처럼
나는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 올라갔다.
ABOUT PHOTO
소녀가 좋아하며 무릎을 굽히고 앉아 들여다봤을 노란 꽃무덤.
#소나기 #황순원 #포토에세이 #보라색꽃 #꽃스타그램 #보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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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황순원 #포토에세이 #분홍스웨터 #소녀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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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항상 나보다 앞서 걸었다.
소녀의 분홍 스웨터 앞자락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내 눈 앞에 노란색 얼룩이 떠오른다. 그 애는 항상 나보다 앞서 걸었다.
걷고 있는 그 애의 가방 한 구석에는 내가 미술시간에 썼던 포스터 물감 얼룩이 묻어 있었다.
내가 장난 삼아 묻혀놓은 노란색 물감이었다.
그 애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지 물감은 여름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그 애는 꼭 내 앞에서 걸었다. 노란색 물감이 어른거렸다.
나에게 그 얼룩이 보이도록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첫사랑이 노란색으로 기억되리라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
ABOUT PHOTO
소녀가 읍내에서 내려왔을 길, 그리고 나의 그 애의 뒤에서 걸어갔던 길이 보여서.
#소나기 #황순원 #포토에세이 #꽃다발 #꽃스타그램 #어린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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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하나의 큰 꽃묶음 같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나의 큰 꽃묶음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첫사랑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득하다.
처음으로 소나기를 읽었을 때처럼, 내 감정을 내가 어쩌지 못했던 그 가슴 저림과 안타까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다발처럼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너와 나.
어지러운 사랑.
어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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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처럼 아름다운 꽃들, 소녀의 얼굴처럼 흐드러진 꽃들.
갑자기 습기가 훅 올라와 온 몸을 감쌌다.
갑자기 습기가 훅 올라와 온 몸을 감쌌다.
팔뚝 위로 물방울 하나가 뚝 떨어지더니
갑작스러운 비에 후두둑 사람들이 뛰기 시작해 뒤처지고 말았다.
손을 내밀어 빗방울을 만져본다.

스며온다. 잔잔히 파고든다.

빗방울이 분명 내 체온보다 따뜻한데도 어쩐지 울고 싶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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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소나기에 잠시 걸음을 멈춰 섰다. 비에 젖은 유리창이 선듯하다.
#소나기 #황순원 #포토에세이 #빗방울 #비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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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황순원 #포토에세이 #꽃묶음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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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누군가와 좁은 수숫단 속에 등을 맞대고 앉아 서로의 몸에서 피어 오르는 젖은 냄새를 맡는 것.
소녀가 안고 있는 꽃묶음이 망그러졌다. 그러나, 소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비에 젖은 소년의 몸내음새가 확 코에 끼얹혀졌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비오는 날, 누군가와 좁은 수숫단 속에 등을 맞대고 앉아
서로의 몸에서 피어 오르는 젖은 냄새를 맡는 것.

그건 나에게 아주 오랫동안 사랑의 이미지였다.
홀로 서 있는 마음의 냉기와 몸의 고독이 새삼스럽다.
사랑이 온통 그런 장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지금의 나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리 가까이 들어오라며 손짓하는 존재가 필요하다.
우산 안에 그리움이 부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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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소녀가 숨을 죽이고 서로의 젖은 냄새를 맡았을 법한 갈대밭 아래.
소나기가 그쳤다.
이번 계집앤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셔터 소리도 웅성거리는 소리도 어느새 귓가에서
사라진다. 언젠가 소년이 등을 돌리고 누워 잠결에 아버지의 말을 들었을 때처럼, 꿈의 끄트머리가 우주의 먼지처럼 남아 빙글빙글 돈다.
가만히 가만히 서서 소년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우주가 또다시 돈다.

소나기가 그쳤다.
비가 오면 그치기 마련이고 꽃이 피고 지고 피고 진다.
이제 나는 그 정도는 아는 나이가 되었다.
다만 웃으며 안녕 하지 못한 것 하나가 아쉽지만
쓸쓸해하던 소녀와 갈림길에서 헤어지며 마지막으로
손은 흔들어주었으니.
그걸로 어쩔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소나기는 올 줄 알 수 없어도 내일은 분명 또 올 테니까.
ABOUT PHOTO
비가 그치고 말갛게 갠 하늘은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침을 뗀 표정을 할 것이다.
#소나기 #황순원 #포토에세이 #안녕 #내일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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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저자 황순원
<소나기> 는 1953년 발표한 황순원의 단편 소설로 한여름 소나기처럼 짧게 끝나버린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첫사랑을 그린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개울가, 조약돌, 들꽃, 수숫단 같은 단어들이 시골마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유년의 향수를 자극합니다.
이별의 아픔을 받아들이는 것을 성숙이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어쩌면 영원히 성숙하지 못한 소년소녀일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시대가 흘러도, 우리가 얼마나 나이를 먹어도 소나기가 그리는 첫사랑의 아련함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듯 합니다. By sodam
사진
프로젝트 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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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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