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숨어있는 역사

도로원표에 숨어있는 『대한민국의 중심』

역사로 만나는 광화문 도로원표
대한민국의 시작이자 중심, 광화문 도로원표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이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현재의 삶을 위해서도 그것이 매우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필자는 역사를 다시 공부하는 자세로 광화문 일대에 남아 있는 역사적·문화적 유물을 통해 우리 역사의 한 가닥, 치열했던 우리네 삶의 조각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역사, 그것이 바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연결된 우리의 삶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대한민국의 심장인 광화문 일대에서 우리 삶의 가닥과 조각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 않겠는가?

그 첫 회로 광화문이 대한민국의 중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로원표’를 소개한다. 광화문 일대를 역사로 만나는 이 여행에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이 동행하기로 했다. 역사를 함께 배우는 동반자이자 좋은 말동무가 돼 줄 것이다.
광화문 사진
서울의 정(正) 동쪽에는?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고, 서울을 상징하는 거리는 역시 ‘세종대로’다. 조선왕조 500년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상징하는 경복궁, 특히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 세종대로는 조선시대 주요관청이 있던 육조거리였다. 세종로와 광화문광장 일대는 우리나라 정치·사회·문화의 1번지라 할 수 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살고 있어 광화문(光化門)이 가깝기도 하거니와 이곳에는 세종문화회관·교보문고 등 문화공간이 많기 때문에 가족과 자주 오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은 광화문 일대의 역사적·문화적 유적을 들여다본다는 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오다보니 나도 아들도 감흥이 새롭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우선 종로와 세종대로가 만나는 세종로사거리로 갔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광화문사거리 혹은 광화문네거리라고 부르지만 정확한 명칭은 세종로사거리다. 전에는 삼거진, 사거리, 오거리라고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요즈음에는 네거리라는 말을 즐겨 쓰고 있다. 네거리가 사전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세거리나 다섯거리라는 말이 어색할 걸 보면 사거리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를 먼저 갈까?’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 때 ‘정동진’이라는 말이 도로를 달리는 차량처럼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서울 광화문에서 볼 때 정(正) 동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정동진(正東津)이다. 김영남 시인이 [정동진역]이라는 시에서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그 마을에 가면/정동진이라는 억새꽃 같은 간이역이 있다”고 노래한 바로 그곳이다.

정동진을 떠올린 이유는 바로 광화문이 가진 지리적인 위상과 가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광화문은 조선시대부터 방위와 거리를 재는 기준점이었고, 그 시작이 되는 곳에 도로원표(道路元標)가 놓여 있었다. 도로원표는 국내 또는 국외 주요도시 간의 도로상 거리를 표시하는, 도로교통망의 연계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식이자 상징이다. 대한민국의 중심이면서 출발점인 도로원표는 현재 세종로파출소 앞 광화문 미관광장에 설치되어 있다.
세종로사거리에서 광화문광장으로 가지 않고 반대방향으로 발길을 옮기자 아들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광화문광장에 간다면서 왜 이쪽으로 가세요?” “혹시 도로원표라고 들어봤어?” 대답 대신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했는지 아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런 아들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가보면 알아~!”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 했던가. 아무리 여러 번 들어도 실제로 한 번 보는 것보다는 못하다고 했다. 몇 발짝만 가면 눈으로 볼 수 있는데 굳이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한글로 음각되어 있는 ‘도로원표’에 대해 짧게 설명을 해주자 아들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로원표 사진
광화문에서 개성까지 58km, 차로 1시간 거리

1997년에 설치된 현재의 도로원표는 중앙에 도로원표 상징조형물이 있고, 주위에 4방(동·서·남·북), 12방위(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가 설치되어 있다. 그 안에 서울과 전국 53개 도시 간 고속도로와 국도를 이용한 실제거리가 한글로, 64개 외국도시 간 직선거리를 기준으로 바닥면에 영문으로 표시돼 있다.
도로원표에서 북한 개성까지의 거리는 58km. 차가 60km로 달린다고 할 때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지척의 거리다. 평화의 시대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서로 공존하지 못하고 물리력과 물리력이 정면으로 부딪쳤을 때 그 파장은 상상을 추월할 만한 거리인 것이다.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는 그 파장을 가늠조차 하지 못하리라.
“아들, 여기 좀 봐. 멕시코시티 12,047km, 보고타 14,832km, 브라질리아 18,129km라고 쓰여 있네. 이쪽 방향에 아메리카대륙이 있다는 거네. 멕시코시티나 브라질리아는 어느 수도인지 알 것 같고… 보고타가 어느 나라 수도인지 알아?” “잘 모르겠는데요.” 아들은 진짜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별로 궁금해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호기심 천국인 아들은 벌써 다른 지명을 찾아 옆으로 몇 발짝 움직이고 있었다. 뒤늦게 나는 혼잣말처럼 “콜롬비아” 했다.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유심히 관찰하던 아들이 물었다. “이게 무슨 뜻이에요?” 그건 광화문광장 방향으로 ‘151m 지점에 도로원점이 있었다’는 표시였다. 원래부터 도로원점이 이곳에 있었던 건 아니다. 실제 도시 간 거리 측정의 원점은 서울시 도로원표의 진위치인 세종로사거리의 중심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그곳 노면에는 직경 50cm의 황동판 도로원표(眞標)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한낮에 차들이 쏜살같이 달리는 도로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확인해볼 수도 없으니 믿을 수밖에. 도로원표는 1914년 일제강점기 때 설치한 게 시초다. 이후 1960년대에 세종로의 지하보도 및 도로 확장공사를 하면서 현재의 교보생명빌딩 앞에 있는 고종황제 즉위 40주년 칭경기념비전 앞으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광화문 광장 도로원표 사진
칭경기념 비전 내 도로원표 사진
우리에게도 있었던 과학적 기준점

우리는 교보생명빌딩 앞에 있는 고종황제 즉위 40주년 칭경기념 비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칭경기념비전 안 종로 방향에 낮게 웅크리고 있는 도로원표를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도로원표의 단위는 일본식 한자 조합어인 ‘미천(米千)’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설치한 도로원표를 여기에 보관하고 있느냐? 특히 고종황제의 즉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역사적인 곳에 보관해만 하는가?’ 그 순간 세계적인 역사학자 토인비의 “역사에 작용하는 세력들은 한 국가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넓은 원인에서 생기는 것이고, 그 원인들은 여러 부분의 하나하나에 작용하는 것이므로 전체 사회에 끼치는 작용을 포괄적으로 관찰하지 않으면 부분적 작용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상이한 부분들이 동일한 일반적인 원인에 의하여 받는 영향은 서로 다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일제로부터 독립한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잔설처럼 남아 있는 세력이, 더 넓은 원인이 존재하는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조선시대 지역 간 거리를 측정할 때 그 기준점은 ‘성문(城門)’이었다. 의주로는 한양 서쪽의 정문인 돈의문(敦義門)에서 의주 남문까지, 영남대로는 한양 남쪽의 정문인 숭례문(崇禮門)에서 동래 수영성곽 성문까지와 같이 전국에 뻗어 있는 대로(大路) 10개가 성문을 기점과 종점으로 삼았다. 한양 도성 내 거리는 임금이 머물던 창경궁 돈화문(敦化門)이 기점이었다. 일제가 광화문에 도로원표를 설치하기 전까지 우리 선조들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과학적인 기준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광화문 사진
정부는 1986년 미국·캐나다·영국·벨기에·일본 등에 도로원표의 체계에 대해 문의한 바 있다, 그중 미국·영국·프랑스 3개국만이 도로원표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회신을 해왔다. 세계 주요국가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도로망의 발달로 도로의 기준점만 상징할 뿐 실제로 거리를 나타내는 데는 별 효용가치마저 사라져 버린 도로원표를 고집해야 하는가? 특히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설치한 도로원표를 역사유물로 보존해야 하는가? 그것도 고종황제 즉위 40주년 칭경기념비전 안에 굳이 보존해야 하는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다음에는 광화문광장을 둘러보기로 하고, 돌아서서 집으로 가는 길에 아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방금 본 도로원표는 일제강점기에 만든 것인데, 거기에 보관해도 될까?” “그건 안 되죠. 일제가 만든 걸 왜 보관해요. 없애버려야지.” 선가에 목격전수(目擊傳授)라는 말이 있다. 입 벌려 말하지 않고 눈끼리 마주칠 때 전해줄 것을 전해준다는 뜻이다. 사람끼리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것도 사실은 언어 이전의 눈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나를 보며 아들이 웃었고, 나도 아들을 마주보고 웃었다.
광화문 사진
김정수(시인)
사진
홍승진(포토마인드)
  •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 본 콘텐츠는 사전 동의 없이 상업적 무단복제와 수정, 캡처 후 배포 도용을 절대 금합니다.
작성일
2013-09-14

소셜 댓글

SNS 로그인후 댓글을 작성하시면 해당 SNS와 동시에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공유하기

URL 공유시 전체 선택하여 복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