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대 영화

약속된 가치와 가짜 행복

VS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무엇 하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기분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리카는 신기했다. 나는 무언가를 얻어서 이런 기분이 된 걸까.
아니면 무언가를 잃어서 이런 기분이 된 걸까.”
사진: Unsplash의 Tegan Mierle

여자가 도망자 신세가 되어 태국, 방콕에 와 있다. 여자는 은행원이었다. 매일 내 것이 아닌 돈을, 수없이 만졌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부터 그 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곧 갚으면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내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멈춘 것도 아니다. 멈춘 건 들키고 나서다. 횡령범으로 발각되고 나서야 그녀는 횡령을 멈추고, 도주해 태국으로 갔다. 과연, 그렇게 많은 돈을 횡령한 여자는 어떤 사람일까? 왜 그 많은 돈을 훔쳤을까? 도대체 그 많은 돈은 어디에 썼을까? <종이달>의 이야기는 우리가 간혹, 신문이나 포털, TV 뉴스에서 보던 범죄자, 그런 범죄자의 뻔하고도 익숙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쿠다 미쓰요의 소설 『종이달』은 몇몇 실제 사건에 영향을 받았다. 소재 삼은 게 아니라 영향 받았다고 말한 까닭은 사실, 횡령이라는 게 매우 드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 같은 영화 속 사건이야 워낙 일회적이고 엽기적이니 실화 소재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회사 돈을 횡령한, 대범한 회계 담당자 및 경리 직원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찮게 보곤 한다.

사진: Unsplash의 Alexander Grey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면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횡령의 규모에 쏠린다. 즉, ‘돈’에만 온통 이목이 집중된다. 어느 정도 규모의 돈을 훔쳐서, 어디에 썼을까 돈의 향방에만 주목하지 그 사람 자체엔 별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돈을 훔치는 그 욕망을 너무 잘 이해해서일 수도 있다. 돈을 훔치고 난 이후의 일들이 두렵고, 무서워서 손을 대지 않을 뿐, 마음 속으로는 누구나 한 번쯤 욕심은 내 봤을 수 있으니 말이다.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보는 욕심 그게 바로 욕망이다. 모두들 욕망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 욕망대로 살아가지는 않는다. 대개는 억누르고 살아간다. 하지만 간혹 그 욕망을 발산하거나 욕망에 굴복해 법을 위반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사람들이 있다. 법의 영역에서 그들은 일상에서 분리해야 할 위험 요소이지만 문학에선 탐구의 대상이 되곤 한다. 과연 우메자와 리카는 어떤 사람이고, 왜 그 많은 돈이 필요했을까,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대상 말이다. 그리고 작가 가쿠다 미쓰요 역시 인간과 욕망에 이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따라간다.

범한 주부이자 아내였던 은행원, 횡령범죄, 어린 대학생 연인. 소재가 주는 호기심으로 소설 『종이달』은 이미 일본 현지에서 드라마와 영화로 각색되어 상영된 바 있다. 한국의 독자에게 잘 알려진 건 미야자와 리에가 주인공을 맡은 2014년 영화이다. 1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최근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배우 김서형 주연의 드라마로 다시 각색되어 방영되었기 때문이다. 가쿠다 미쓰요가 소설 『종이달』을 쓴 건 이미 9년 전이다. 일본의 경제가 거품처럼 부풀었다가 꺼진 지도 30여 년 전, 소설 속에선 한국과 일본이 공동 주최한 월드컵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한국에서야 모두가 카드를 쓰는 게 이미 일반화되었지만 2000년 초반의 일본에서는 여전히 현금을 쓰는 게 현명한 소비로 여겨졌다. 그렇게 하루치의 생활비를 현금으로 맞춰 쓰던 여성이 은행에 저금해 둔 돈을 꺼내다, 카드를 쓰고, 심지어 남의 돈에까지 손을 댄다.

사진: Unsplash의 Josh Appel

런데, 이렇게 십년 전의 이야기가 여전히 호소력을 지닌다. 세상의 유행이 한 달 단위로 경신되고,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스트리밍이 문화적 주류가 되어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빨라진 상황에서 <종이달>의 문제는 과거가 아닌 여전한 현재적으로 다가온다.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돈’, 소비에 대한 욕망은 사그라들기는 커녕 오히려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설 『종이달』에는 사건 보도에 실린 리카를 알아본, 리카의 지인들의 소회가 실려 있다. 대단히 가까운 사이였다기보다 고교 시절 동창이었거나 잠시 사귀고, 사회생활을 하며 명함을 나누고 스쳐 갔던 사람들이다. 리카에 대한 기억을 회고하는 사람들은 사실 그녀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기억이라기보다 막연한 이미지나 느낌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옳을 정도로 말이다.

사진: Unsplash의 Alexander Grey

제적인 것은 그 지인들 역시 작든 크든 간에 ‘돈’에 관련된 문제들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한 친구는 매우 알뜰한 주부로 살아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녀 역시 하루하루 허용된 생활비에 묶여 돈의 노예처럼 살아가긴 마찬가지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워킹우먼 친구는 자기가 버는 돈 안에서 현명하게 소비 생활을 한다고 자부하지만 어쩐지 소비욕을 다스린다기보다 지배당하는 쪽에 가까워 보인다. 리카의 옛 남자친구는 소소한 샐러리맨의 자기 삶에 만족하지만 아내의 불만 때문에 걱정이다. 과거 한때 부유했다던 아내는 더 나은 삶, 더 사치스러운 일상에 허기를 느끼고 현재를 비참하게 여긴다. 그는 그런 아내에게 점점 지쳐 가는 중이다.

만 보면, 리카를 기억하는, 리카의 주변 사람들 모두 욕망의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적인 것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의 세계처럼 먹고 사는 비참의 문제가 아니라 명품을 사고, 사립학교를 보내고, 파인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그러니까 어떤 브랜드 가치를 소비하느냐의 문제로 갈등을 겪는다는 점이다. 형편이 안 되지만 어렵사리 사립초등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믿는 학부모도 그렇고, 중요한 미팅 전인데도 구두를 사는 걸 포기하지 못하는 여성도 그렇다. 머리로야 어떤 게 합리적이고 옳은 지 알고 있지만 도쿄 같은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일종의 소비재로 표현되는 욕망은 쉽게 다스려지지 않는다. 그들이 리카보다 리카가 그 많은 돈을 왜 횡령했고, 어디에 썼는지 궁금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상 그 지인들은 지금쯤 리카가 어디에 있을지, 잘 지내는지에 큰 관심을 표하지 않는다. 그건 그다지 궁금한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 Unsplash의 Alicia Christin Gerald

화 속에서 리카의 횡령 사건은 기부를 위해 아버지 지갑 속 돈을 몰래 훔쳤던 학창 시절의 일과 교차 편집되며 비교된다. 너무 큰 액수가 기부되자 선생님은 기부 행사를 멈추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리카는 좋은 일인데 왜 멈추느냐며 선생님에게 항변한다. 좋은 일이라면, 어려운 이를 돕는 일이라면 아버지에게 많은 돈을 좀 훔쳐서 기부하는 게 왜 나쁘냐라고, 묻는 셈이다. 사실 리카의 첫 횡령도 그랬다. 구두쇠 할아버지로부터 조금의 도움도 받지 못해 제3금융권까지 손을 내민 대학생에게 연민을 느껴, 그 구두쇠 할아버지의 돈을 꺼내 손자에게 주었으니 말이다. 자기만족밖에 모르는 수전노 할아버지의 돈을 가난한 고학생 손자에게 주는 것, 리카는 그걸 나름의 정의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지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어린 애인은 리카의 돈에 익숙해져서 점점 뻔뻔하고 나태해 진다. 리카 역시 그럴수록 더욱 대담해져, 이젠 횡령을 위해 살아가는지 삶을 위해 은행에 출근하는지 헷갈릴 정도로 복잡하고 피폐한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누군가에게 들켜 금지 당하기 전까지, 리카의 욕망과 범죄는 멈출 수가 없어 보인다. 돈이 약속된 가치일 뿐 종이에 불과하듯, 리카가 훔친 돈은 가짜 행복에 불과했던 것이다.

사진: Unsplash의 Aidan Bartos

남의 돈에 손을 대기 시작 했느냐는 은행 선배의 말에 리카는 “어차피 삶은 다 가짜니까요, 모든 게 다 가짜라고 생각하니까 가벼워졌어요” 라고 대답한다. 만약, 지켜야 할 삶의 중심이나 무게, 원본이 없다면 하루하루의 쾌락으로 채우는 범죄의 세계로 기울어질 수 있는 것일까? 물론 리카가 손을 내밀어 일상의 울타리를 벗어나자고 하지만 은행 선배는 그녀를 멀뚱히 지켜볼 뿐이다. 가짜로 이루어진 세계라 해도 진짜 행복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곳에 있음이 분명하니 말이다.

본주의 사회, 특히 절대적인 가치보다 물품과 브랜드의 허구적 가치가 더 중요해진 이미지 중심의 사회에서 돈은 아무리 많이 가진다 해도 갈증 나는 것임에 분명한 듯싶다. 10년 전 일본의 이야기가 2023년 한국의 드라마로도 설득력이 있다면 여전히 우린 돈의 행방이 사람의 행방보다 더 중요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뜻일 테다.

강유정
글 / 강유정

강남대 글로벌문화학부 교수, 1975년생

저서
『타인을 앓다』 『시네마토피아』 『영화글쓰기강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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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10-31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