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대 영화

습지가 가르쳐 준 생존의 시

VS
“암컷 반딧불은 허위 신호를 보내 낯선 수컷들을 유혹해 잡아먹는다.
암컷 사마귀는 짝짓기 상대를 잡아먹는다.
암컷 곤충들은 연인을 다루는 법을 잘 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습지 소녀, 마시걸이라고 불리는 카야가 있다. 아버지의 구타를 견디지 못했던 어머니는 어느 날 집을 떠났다. “엄마들은 자식을 두고 가지 않아. 원래 그렇게 못 해”라고 오빠가 말할 때도 카야는 “여우는 새끼들을 버리고 갔”던 것을 기억해 낸다. 엄마가 떠나고, 언니들도 차례로 떠나고, 심지어 오빠마저 떠나고 나서, 어린 카야만 남는다. 습지 소녀, 카야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전부 떠난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습지뿐, 습지는 카야의 부모님, 보호자, 친구, 연인이며 유일한 선생님이 되어 준다. 모두 다 떠난다 해도, 습지만큼은 그녀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렇게 홀로 남은 소녀가 습지 생태계에서 배운 삶의 방식으로 세상의 선입견, 폭력과 맞서 살아남는 생존의 이야기, 그 이야기가 바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다.

사진: Unsplash의 Nick Fewings

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매우 독특한 소설이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특별한 자연 생태계를 전경화하는 환경 소설이자 사랑하는 연인과 마침내 이뤄지는 로맨스 소설이며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범죄물이자 범인으로 지목된 습지 소녀의 결백을 증명해 가는 법정 소설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배경에는 『앵무새 죽이기』가 출간되었던 바로 그 시절, 편견과 따돌림, 피부색과 계층에 따른 차별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던 1960년대가 놓여 있다.

2018년 처음 출판된 책은 2019년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기록되고, 2021년 영화화되었다. 작가인 델리아 오언스는 극 중의 카야처럼 평생 야생동물을 연구한 생태학자였고, 그 경험은 카야가 살아가는 습지에 대한 묘사를 통해 사실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지금껏 본 적 없던 습지라는 독특한 공간, 외떨어져 홀로 자라난 여성은 영화를 통해 구체적 이미지로 눈앞에 그려진다. 소설에 묘사된 노스캐롤라이나의 습지, 그레이트블루헤론, 야생 칠면조, 고사리 등이 선명한 스펙터클로 스크린 위에 재현되는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석은 바로 카야라는 캐릭터를 담아낸 데이지 에드가 존스이다. 폭력과 낭만, 고립과 외로움 속에서 아름답게 자라난 까만 눈동자의 소녀는 영국 출신의 배우 데이지 에드가 존스 그 자체처럼 보인다.

로운 소녀가 고독을 이겨 내고 생태학자로 성공하는 서사의 뼈대를 보자면 평범한 성장 서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소녀가 습지와 맺는 관계의 양상은 우리가 말하는 단순한 서사적 배경의 역할을 넘어선다. 홀로 살아남는 방법을 배워 가면서 카야는 자연의 방식이 곧 아주 오래된 생존의 열쇠임을 습득해 나간다. 우리가 도시에 살면서 하나둘씩 잃어버렸던 환경을 이용하고, 환경을 이겨 내는 감각은 본성에 새겨진 매우 유용한 생존 지식이기도 하다.

사진: Unsplash의 Edu Grande

야는 다른 습지 생물들처럼 생존 방법을 터득해 간다. 썰물이 빠져나간 갯벌에 남은 발자국을 없애 외부의 감시로부터 그녀 스스로를 숨기기도 하고, 상처 입은 발을 흐르는 물에 담가 씻어내기도 한다. 홀로 있는 그녀를 누군가 습격하려 할 땐 문명의 산물인 집으로 도망가지 않고 습지의 커다란 식물 잎사귀 사이에 자기 모습을 감춘다. 집은 사방이 환한 무방비의 공간이라 출구가 막히면 덫이 되고 말지만 습지는 천연의 요새이자 미로가 되어 준다. 카야는 어쩌면 우리가 문명화된 삶 속에서 아예 잃어버리고 사는 생존의 능력을 통해 오히려 그녀를 공격하는 문명의 힘과 편견의 세력과 싸워 나간다.

사진: Unsplash의 Eric Ward

지 바깥의 세계, 학교를 다니고 거래를 하며 데이트나 축제를 하는 문명 공간은 여차하면 폭력의 시선을 퍼붓고 차별적 언어로 그녀를 공격할 뿐이다. 아무도 없지만 습지에서 풍족한 따스함을 느낀 카야는 학교에 가고, 사람들을 만날 때 더 외로워지고 고독해진다. 배가 고파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학교에 갔을 때도 아이들은 개(dog)의 철자도 모른다며 놀리고 괴롭혔다. 문명의 남자 체이스도 마찬가지였다. 카야를 무척 이해하고 아끼는 척 다가온 체이스는 그녀의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을 탐한 도둑에 불과했다.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흑인을 차별하는 백인들, 습지 소녀를 두고 험악한 농담을 해대는 동년배 청년들은 말하자면 카야가 살아남아야만 했던 야생의 생태계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무정하다.

지만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나쁜 사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외롭고 고립된 카야에게 살아갈 힘과 온기, 방법을 알게 해 준 훌륭한 이웃도 몇 명 있다. 제대로 된 말과 글을 가르쳐 주었던 동네 오빠 테이트, 흑인이라는 이유로 이유 없는 차별을 받는 캠핑과 그의 아내는 동병상련의 마음과 연민의 감정으로 카야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캠핑과 메이블이 없었다면 어쩌면 아주 어린 시절 이미 카야는 배고픔과 외로움을 견뎌내지 못하고 말았을 것이다.

사진: Unsplash의 Nicolas Messifet

지만 문명이 카야에게 늘 어둠만 준 것은 아니다. 문명의 어두움이 차별과 폭력이었다면 문명이 준 빛은 언어, ‘시’로 압축된다. 테이트를 통해 활자, 문자, 문법, 언어의 묘미를 알게 된 카야는 마침내 시를 알게 된다. 알게 된 것은 시뿐 만이 아니다. 그 활자들을 통해 늘 손에 쥐고, 관찰하고, 들여다보고, 발가락 사이로 느끼던 습지 생물들의 이름을 라틴어 학명으로 하나씩 구분하고 부를 수도 있게 된다. 언어는 카야에게 필연적인 무기이자 도구가 되어준다.

사진: Unsplash의 Brian Sumner

명의 무기와 자연의 생존 방식을 겸비한 카야는 무척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카야는 자연스러우면서도 매우 지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알고, 정리하고, 이해해 간다. 초경 이후 테이트에게 강렬한 성욕을 느끼는 장면은 습지 생태계에서 성숙한 암컷과 수컷의 자연스러운 발견으로 그려져 신비로움을 선사한다. 한편, 그녀만 구분할 수 있는 다양한 습지 생태에 대한 기록과 보고는 그녀에게 차별적인 지적 지위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트와의 이별, 체이스와의 갈등 가운데 이야기는 갑작스럽게 범죄물, 법정 장르로 전환된다. 카야는 특별한 물증도 없이 정황 증거 만으로 체이스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카야를 도와주는 또 한 명의 선한 사람, 톰은 카야가 ‘마시걸’이라는 멸칭과 편견이 그녀를 살인자로까지 몰고 가는 원흉이라며 열변한다. 그녀를 유죄로 만든 건 사실들이 아니라 마시걸의 흉흉한 편견들, 지속적 따돌림과 차별적 언어였다고 말이다.

앵무새 죽이기』의 영리한 변주로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차별적 편견이 한 사람을 어떻게 억압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마침내 마시걸, 카야는 혐의를 벗고 자신에게 폭력을 퍼붓던 체이스로부터도 벗어나 사랑했던 테이트와 기러기들처럼 한 쌍의 부부가 되어 늙어가게 된다.

사진: Unsplash의 Paul Kapischka

말 놀라운 것은 마지막의 반전이다. 모든 비밀은 카야가 죽은 이후에야 드러낸다. 생존을 위해 흔적을 은닉하는 습지 동물들처럼, 카야는 살아남기 위해 자기를 위협하는 천적을 제압해야만 했던 것이다. 본능과 문명은 그렇게 시너지를 일으켜, 카야가 원했던 이상적 삶을 가져다준다. 폭력에 시달리다 자식들을 버리고 집을 떠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던 엄마와 달리 카야는 자신의 삶의 공간, 환경, 영역을 지켜낸다. 가장 영리하고도 확실한 방법으로. 카야는 이 모든 일을 홀로 살아가는 습지 생태계의 일부인 스스로의 힘으로 해낸다.

화도 무척 인상적이지만 소설만이 주는 매력이 단단하다. 특히 다양한 시의 인용들이 그렇다. 습지의 생물들처럼 종이 위에 새겨진 시들은 아름다운 무늬를 띤다. 소설에 놓인 시들은 카야의 표정이자 고백이며 그녀만의 고유한 색채이자 정체성이다. 잔잔한 물결 속에 꿈틀대는 비밀을 숨긴 작품,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다.

강유정
글 / 강유정

강남대 글로벌문화학부 교수, 1975년생

저서
『타인을 앓다』 『시네마토피아』 『영화글쓰기강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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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08-01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