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어때

대립의 불씨가, 문화의 등불로: 평화문화진지

‘시민아파트’라 불리던 대립의 건축

“유사시 서울 도심으로 가는 길목을 끊기 위해 탄생한 건축물”

울 지도에서 북쪽 가장 끝에 위치한 도봉구에는 ‘평화문화진지’라는 뜻깊은 건축물이 있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는 기다란 형태가 우선 특별해 보이지만, 실은 더욱 특별한 사연이 얽혀 있죠. 한때 남북 대립을 상징하는 방호시설이었던 곳이 변화를 거쳐, 마침내 활기찬 문화와 예술을 담아내는 구심점 같은 공간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과거 대전차방호시설의 흔적과 기억, 이제 문화와 예술을 담는 건축으로 거듭나다. ⓒ정보근

곳은 한때 북한군의 침공을 막기 위해 1970년에 건설한 대전차방호시설이었습니다. 포화 속에 서울 전체가 휘말린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서울로 진격한 주요 침공로에 지은 군사시설이었죠.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이 건축물의 대외적인 이름이 ‘시민아파트’였다는 것입니다. 남북 대립이 극심했던 당시에 만들어진 곳인 만큼, 군사시설임을 감추기 위해 시민아파트로 위장했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죠. 총 5개 동의 건물이 줄지어 선 형태로, 총 180세대를 수용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건물의 1층은 방호시설이고 2~4층은 군인들이 거주하는 아파트로, 유사시 탱크의 이동을 저지하는 시설이자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1970년, 유사시 적군의 이동 경로를 차단하기 위해 태어나다.

강렬했던 긴장이 풀리고 난 뒤

“대립을 상징하던 공간에서, 예술을 담는 모두의 공간으로!”

지만 시간이 흘러 2004년, 도봉구 시민아파트는 노후화로 인한 안전상의 문제로 주거 공간이 철거되었고, 1층 방호시설만 덩그러니 남겨져 방치되어 왔습니다. 모두 철거하고 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도 있었지만, 관련 주체들의 입장이 통일되지 않아 철거 직후의 상태로 자그마치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남겨졌죠. 시간이 흘러 이제는 달라진 남북의 대립상황 속에서 쓰임새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고 기억 속에서도 잊혔습니다. 서울시와 도봉구에 사는 시민들에게도 좋은 눈길을 받지 못했죠. 그렇게 분단과 대립의 아픔이 서린 곳의 생명력은 그만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지만 철거 이후 10여 년이 지난, 2014년 7월. 방치되었던 공간이 다양한 사람들의 노력으로 두 번째 삶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시와 도봉구청, 제60보병사단이 함께 공간을 변화시키기로 협약을 맺고, 시설의 역사적 흔적을 보존하며 활용하는 공간재생사업을 시작한 것이죠! 그리고 2017년, 역할을 잃어버렸던 방호시설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 넣고자 했던 많은 사람과 부처의 노력 끝에 도봉구 시민아파트는 ‘평화문화진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쓰임새를 잃어버려 완전히 생명을 꺼진 듯했던 도봉구 시민아파트는
방치된 지 10년이 지나 새롭게 태어납니다.

화문화진지는 이제 입주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이자, 시민들을 위한 문화적 오아시스입니다. 다양한 예술가들이 입주하여 창작활동을 펼치고, 전시회, 오픈스튜디오, 워크숍 등이 열리는 시민들의 새로운 문화공간이죠. 주말과 휴일에는 평화문화진지 주변으로 이어진 푸른 공원을 찾는 사람도 많습니다. 때때로 펼쳐지는 다양한 공연과 문화행사는 일상 속 예술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들의 안식처이기도 하죠.

과거 시민아파트였던 옛 건물의 주동을 그대로 보존해 1동부터 5동까지의 공간을 시민동, 문화동, 예술동, 평화동으로 재구성했고, 전체의 중앙공간을 비워 평화광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각 동은 다른 성격을 띠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데요. 시민동엔 시민들이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연장 등이 문화동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유공방 등이 있습니다. 예술동엔 입주작가들이 창작활동을 하는 공간이 있으며 평화동엔 평화와 통일에 관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예술인들의 작업공간이자,
시민들의 문화적 휴식처가 되다. Ⓒ정보근
Ⓒ정보근
대전차 방호벽이 여전히 이 공간을 둘러싸지만,
이제 대립이 아닌 문화를 품습니다. Ⓒ정보근

분리된 건축이 하나로 바뀐 드라마

“1970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우리를 감싸는 콘크리트 벽”

화문화진지의 건축적 특징은 역사를 반영하는 양식과 디자인입니다. 그래서 대전차방호시설의 건축물을 그대로 보존하되, 일부를 리모델링하였습니다. 1970년부터 그대로 제자리를 지킨 굳건한 콘크리트 벽은 내부의 실들을 지금도 안전하게 감싸고 있죠. 그렇기에 이곳에 머무는 동안 자연스레 과거의 흔적을 피부로 느낄 수 있고 동시에 새로운 문화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채 남은 기존 건축물의 벽 일부들. Ⓒ정보근

욱 극적인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각각 떨어진 기존의 5개 동을 옥상 휴게공간으로 이은 것이죠. 또한 공사 중에 2동과 3동 사이의 지하통로를 발견하면서 5개 동 모두 하나의 건축물로 묶였습니다. 분리된 건축물이 하나로 바뀐 드라마는 남북대립 구도가 여전한 지금, 이 건축물을 더 매력적이게 만드는 대목이죠.

분리된 다섯 동은 하나의 건축으로 바뀌었고
덕분에 공간의 드라마는 깊어졌습니다. Ⓒ정보근

리고 2~4층의 아파트 주거 공간은 철거되었지만, 그 자리에 전망대가 새롭게 설치되었습니다. 도봉산과 창포원 등 주변 경관이 잘 보이는 전망대에 오르면 과거에서 현재로, 대립의 공간에서 문화 공간으로 바뀐 이 건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죠. 1층 한편에는 방호시설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전시관도 있습니다. 또한, 전차와 베를린 장벽 등 평화와 대립, 통일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전시되기도 했습니다. 공간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존중하면서 문화예술을 담는 공간으로 재생된 것이죠.

Ⓒ정보근
기존 건축구조가 드러나는 중정 Ⓒ정보근

대립의 불씨가, 문화의 등불로

“우리는 언제나 재탄생과 창조에 대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화문화진지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건축적 미학이나 문화프로그램에서 오는 감동 때문만은 아닙니다. 평화문화진지는 한때 군사시설이었지만, 지금은 예술과 문화를 담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는 건축적 의미, 분단과 대립에서 창조로 나아가는 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죠. 그리고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변모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었습니다.

립의 상징과도 같았던 건축공간을 창의성, 문화 그리고 건축이 힘을 모아 바꿔냈다는 사실이 생생히 살아있는 평화문화진지. 우리나라 국민들은 비록 암울하고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역사를 지나왔지만, 언제나 재탄생과 조화로운 창조에 대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과거 방호시설에서 지펴진 대립의 불씨는, 오늘날의 평화문화진지에서 문화의 등불로 변했습니다.

평화문화진지
장소
서울 도봉구 마들로 931
문의
02-3494-1970
운영시간
10:00~18:00 (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정보근
정보근
글 / 정보근

정림건축에서 건축설계와 공간기획·컨설팅을 맡고 있습니다.
다양해지고 있는 공간, 그리고 입체적인 경험에 대한 인사이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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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09-27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