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위의 패스포트

머물고 지키는 힘

시간의 흔적 늘도 비가 온다. 비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젠 일기예보에서 ‘sunny spells’, ‘맑은 날씨가 예상됩니다’라는 말이 더 반갑다. 옥스퍼드에 온 지 10개월. 하루 종일 해가 떠 있는 날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미세먼지로 자욱한 서울에 비하면 옥스퍼드의 공기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깨끗하다. 맑은 날이라 그냥 집을 나섰다가 갑작스러운 비에 낭패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곳 사람들은 비가 내려도 우산을 거의 쓰지 않는다. 혓바닥으로 비를 받아먹는 아이들. 유리창으로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보며 말러(G. Mahler)를 듣는다. 기분이 좋아진다. 물론 이 기쁨은 다분히 정신적인 것이다. 그래서 몸을 움직인다. 비가 오지 않으면 태극권 수련을 하고, 비가 조금 흩뿌리는 정도라면 우산을 들고 산책을 나간다.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집 청소를 한다. 행복감은 그렇게 몸을 통해서만 온다.

스퍼드는 작은 도시지만 조금만 걸어도 파크가 나온다. 제법 큰 유니버시티파크, 사우스파크, 플로랑스파크 외에도 동네마다 크고 작은 파크와 스포츠그라운드가 있다. 칼리지가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그라운드파크를 더하면 그 수는 엄청나다. 처음 도착해 지리를 잘 몰랐을 때는 커피를 한 잔 사 들고 유니버시티파크 벤치에 앉아 반나절을 보내기도 했다. 며칠 지나 알게 되었지만 바로 옆에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J.R.R. Tolkien)이 자주 와 쉬었다는 벤치가 있었다. 뭐 이런 곳이라면,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 대학생들이지만 유모차를 밀고 산책을 나온 부모들도 제법 있다. 아마 런던이나 서울이라면 아이들이 아이패드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겠지만 이곳에선 그렇지 않아 조금 의아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조잘대며 잔디밭 위를 뛰어다닌다. 네 살만 지나도 자전거를 아주 멋지게 타고 논다. 프라이머리스쿨 근처에는 가끔 메도우와 내추럴파크가 있다. 말 그대로 잡초와 관목이 우거져 있는 곳이다. 아이들은 학교생활 중 일부분을 이곳에서 자유롭게 보낸다. 일종의 체험활동인 셈이다. 엎어지고 뒹굴다 보면 옷은 어느새 진흙투성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의 목소리를 멀리서 듣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유니버시티파크의 톨킨 벤치

간은 점점 땅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그런데 옥스퍼드는 조금 예외다. 연구년을 보낼 장소로 옥스퍼드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의 즐거움에 빠져 쾌락의 시대를 산다.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옥스퍼드는 그 쾌속열차를 타지 않았다. 도시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오래된 대학 건물들만 봐도 그렇다. 1096년에 대학이 처음 문을 연 후 옥스퍼드의 많은 대학 건물들에는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건물의 벽은 색이 바랬고 지붕엔 이끼가 무성하며 창문은 뿌옇다. 그런데 아름답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이 수학교수로 있었던 크라이스트처치(Christ Church)칼리지의 고딕 건물은 영화 해리포터의 촬영 무대로 알려져 관광객들이 늘 붐빈다. 트리니티(Trinity)칼리지의 외벽은 놀라울 정도다. 나무와 벽이 한 몸이 되어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시의회와 대학에서는 대학의 중요한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함부로 개보수를 하지 않아 생활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없지 않지만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그것을 지키는 일의 의미를 시의회도 대학도 시민들도 알고 있다. 영혼의 처소처럼 보이는 골목길을 걷다보면 아무데나 앉아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그 사이를 관광객들이 지나 다닌다. 그들도 어느새 천사처럼 앉아 잠시 숨을 돌린다. 별생각 없이 쉬다 보면 정말 생각이라는 것들이 떠오른다. 고갱(P. Gauguin)의 그림 제목처럼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숙제를 받아들고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 볼 것이다. 여행이란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법. 보들리언(Bodleian)도서관 바로 옆에 있는, 지금은 열람실로 사용되는 레드클리프 카메라(Radcliffe Camera) 주변에는 사색에 잠겨 있거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학생들과 관광객을 쉽게 볼 수 있다.

크라이스트처치칼리지
트리니티칼리지의 외벽
레드클리프 카메라

학문의 도시 대한 정보는 순간적이고 변하지만 진리는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다. 누구는 지겹다고 하겠지만 학문이나 문학은 지금까지도 이를 화두로 삼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옥스퍼드에 도착했을 때 웅장하고 멋진 대학 건물들을 보고 학문과 문학의 향기를 진하게 느껴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데이-루이스(C. Day-Lewis), 오든(W.H. Auden), 히니(S. Heaney), 멀둔(P. Muldoon) 등이 시학 교수였던 옥스퍼드라니, 얼마나 근사한가. 옥스퍼드 시학 교수는 칼리지에 소속된 교수가 아니라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임명한다. 특별히 부여된 업무는 없으며 임기는 4년이다. 1708년에 처음 도입되어 공석일 때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46명의 석학과 문인이 시학 교수로 활동했다. 2019년부터 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오스왈드(A. Oswald)의 강연을 멀찍이서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계에서 가장 오래된 옥스퍼드대학교는 38개의 칼리지와 6개의 퍼머넌트 프라이빗 홀(Permanent Private Hall)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과는 다른 학제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칼리지는 생활공동체에 가깝다. 같은 칼리지에 속한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과 중요한 행사를 함께하지만 전공은 달라 학부에서 개설하는 강의를 여러 칼리지 학생들과 함께 듣는다. 칼리지는 설립 시기와 배경도 조금씩 다르며 고유의 문장(紋章)이 있다. 당연히 학생 수도 차이가 난다. 최근에 문을 연 칼리지의 경우엔 건물과 기숙사가 현대식이지만 오래된 칼리지의 건물은 그야말로 유적에 가깝다. 당연히 기숙사 역시 낡았다.

모들린칼리지 그레이트 타워에서 본 옥스퍼드

별한 일이 없으면 일주일에 서너 번 집에서 연구소(Asian and Middle Eastern Studies)까지 40분가량 되는 길을 산책 삼아 걷는다. 그때마다 블랙웰(Blackwell)과 워터스톤스(Waterstones)를 들른다. 벤야민 블랙웰(Benjamin Henry Blackwell)이 1879년 옥스퍼드에 처음으로 오픈한 서점 블랙웰은 출판사를 갖추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입구는 평범해 보이지만 지하로 내려가면 노링턴 룸(Norrington Room)이 나오는데 여느 대학 도서관 못지않다. 하지만 시집 코너는 기대만큼 크지 않아 약간 실망스러웠다. 노링턴 룸에서는 종종 작가들을 초청해 북토크를 개최한다. 참가비는 음료를 포함해 25파운드 내외니 3만 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다. 어쩌다 한국문학 번역서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 비하면 영국은 아직 한국문학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진다. 몇 해 전 가즈오 이시구로[石黒一雄]가 노벨문학상을 받아서인지 일본 작가들의 작품들은 쉽게 눈에 띈다. 이미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나 영국인이 좋아하는 추리소설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작품들은 대부분 번역되어 매대를 차지하고 있다. 아쉬운 마음에 연구소에 딸린 작은 도서관과 옥스퍼드가 자랑하는 보들리언을 뒤졌다. 보들리언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 중 하나며 규모는 런던의 브리티시도서관 다음이다. 1,300만 권 이상의 책을 보유하고 있는 이곳은 1602년에 학자들에게 처음 문을 열었다. 열람실과 달리 서가는 ‘여기서 어떻게 책을 읽지’라고 생각할 만큼 경건한 분위기다. 서운했지만 한국어로 된 책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혹시 몰라 웨스톤도서관(Weston Library)으로 발길을 돌렸다. 보들리언이 넘치는 책들을 감당하지 못해 신축한 도서관이다. 여기엔 영국에서 출판되는 모든 서적이 보관된다. 일종의 수장고 역할을 한다. 그러나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문학의 위상이 늘 번역의 문제라는 반성과 평가와는 별도로 이제는 한국어로 읽히는 한국문학을 준비해야 할 때다. 그런데 언제쯤이면 그날이 올까?

블랙웰 노링턴 룸 전경
블랙웰 바깥 모습

페니 유니버시티와 펍 스퍼드 하이스트리트에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가 있다. 1650년에 생긴 커피숍 ‘그랜드카페(The Grand Cafe)’다. ‘The first coffee house in England in the year 1650’이라는 문구가 가게 유리에 새겨져 있다. 길 건너편으로 1654년에 오픈한 ‘퀸즈 레인 커피하우스(Queen’s Lane Coffee House)’가 보인다. 커피 맛은 블랙쉽이나 미씽빈에 비하면 한수 아래지만 ‘최초’라는 말 때문에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런던은 1652년에 커피하우스가 처음 오픈했는데, 이후 유행하기 시작해 17세기 후반에는 런던에만 3천 개가 넘는 커피하우스가 있었다고 한다. 기껏해야 애프터눈 티만 마시는 줄 알았는데 영국인들이 이렇게 커피에 진심이었다는 걸 몰랐다. 당시 대학 도시였던 옥스퍼드의 커피하우스에는 귀족이든 천민이든 누구나 출입할 수 있었고, 입장한 손님들은 하우스 내에서 이뤄지는 어떤 대화에도 참여가 가능했다고 한다. 물론 하우스에 입장하려면 1페니를 지불해야 했고, 커피는 한 잔에 2펜스였다. 그래서 얻은 이름이 바로 ‘페니 유니버시티’다. 가끔 길을 가다가 부모와 말싸움인지 토론인지 모를 대화를 하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면 영국 의회에서 지겹게 상대방을 향해 떠들고 있는 의원들이 떠오른다. 이곳에선 어디서나 누구와도 토론이 자연스럽다. 말 많은 사람을 꺼리는 편이지만 말 많은 영국 아이들은 왠지 사랑스럽다.

그랜드 카페

론 분위기는 가족들이 함께 와 음식도 먹고 술도 마시는 펍에서도 마찬가지다. ‘터프 터번(Turf Tavern)’은 그중 가장 유서가 깊다. 하트퍼드(Hertford)칼리지의 관광 명소인 ‘탄식의 다리(Bridge of Sighs)’를 지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끝에 있다. 처음 몰트하우스 주점으로 사용된 것은 1381년이다. 원래는 ‘스팟티드 카우(Spotted Cow)’라고 불렸지만 1842년에 불법 도박 장소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터프 터번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뒤뜰의 개보수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인 14세기의 외벽이다. 서울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었지만 예전엔 대학교수와 학생들이 수업이 끝나면 이곳으로 와 맥주를 마시면서 강의실에서 끝내지 못한 대화를 이어갔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토론을 했을까. 1683년에 개관한 최초의 대학 박물관인 애쉬몰리언(Ashmolean)을 왼쪽으로 끼고 세인트 자일(St. Giles’) 길을 따라 북쪽으로 200미터쯤 가면 ‘이글 앤 차일드(The Eagle and Child)’가 왼편에 나온다. 1930년대 초반 당시 펨브룩(Pembroke)칼리지 교수였던 톨킨과 『나니아 연대기』를 쓴 모들린(Magdalen)칼리지의 루이스(C.S. Lewis) 교수가 비공식적인 모임을 가졌던 곳으로 유명하다. 내러티브를 중요하게 여기고 환상적 글쓰기를 장려했던 두 사람의 흔적은 아쉽게도 공사 중이어서 만날 수 없었다.

탄식의 다리
터프 터번

문 그리고 열쇠 꾸러미 스퍼드대학교의 모든 칼리지는 위압적인 커다란 정문을 열고 들어가야만 그 안을 볼 수 있다. 굳게 닫혀 있는 문은 그 안쪽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세계가 있을 것만 같다. 원래 학문이 그런 것이긴 하지만 신입생 유치에만 여념이 없는 한국의 대학을 생각하면 씁쓸해진다. 칼리지의 닫혀 있는 문 앞에서 기웃거리면 포터가 어떻게 왔는지 묻는다. 허락을 받고 구경을 할 수 있다. 종종 쿼드(Quad)라고 하는 정원은 무료로 개방할 때가 많지만 채플이나 건물 내부는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이젠 입장료를 받는다. 학문도 자본 앞에선 겸손해져야 하는 세상이다.

닫혀 있는 유니버시티칼리지 정문
뉴칼리지의 쿼드 (모든 칼리지에는 건물 안쪽에 이런 정원이 있다)

스퍼드의 모든 문은 열쇠로 연다. 이곳은 편리함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간혹 새로 지은 건물은 스마트키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건물은 아직도 열쇠로 문을 열고 닫는다. 모든 것들을 전자 시스템으로 바꿔 웬만하면 종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왜 열쇠를 아직까지 고집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터치만 하면 모든 것들이 해결되는 디지털 세계에 저항이라도 하듯 사람들은 대여섯 개가 넘는 열쇠가 매달린 꾸러미를 허리춤에 늘 차고 다닌다. 얼핏 봐도 무거워 보인다. 주머니에 있는 열쇠를 손으로 슬며시 만져본다. 현관문 열쇠, 집 열쇠, 우편함 열쇠. 디지털의 편리한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나를 이 열쇠가 붙들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이거 잃어버리면 안 되는데, 돌아갈 곳이 없어지면 어떻게 하지. 불현듯 무서워진다. 손으로 세상을 알아가는 일이 이렇게 힘들다.

크라이스트처치칼리지 쿼드에서

십을 넘긴 내 또래 세대는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났지만 삶의 후반기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서울에서의 내 삶도 그랬다. 어색한 옷을 입고 사는 것처럼 뭔가 불편하다.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이유가 크겠지만 한편으로는 디지털 기기가 무섭다. 딸아이는 그런 나를 디지털포비아라고 부른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요즘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ChatGPT를 접하고 나서 그 두려움이 더 커졌다. 반면에 MZ세대는 디지털과 친하다. 밀레니얼(M) 세대는 인생의 후반기에 이르면 그래도 아날로그의 삶을 그리워할 가능성이 있겠지만, 제트(Z) 세대는 아예 아날로그적 삶을 모른다. 그들의 정신적, 육체적 고향은 디지털이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점점 더 몸의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즐거움은 더 커지고 강할지 모르지만 행복이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옥스퍼드는 순간적이고 쉽게 변하는 정보의 세계에서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를 지키는 곳처럼 보인다. 오늘도 거리에는 비를 맞으며 뛰는 사람들이 있다. 비가 내려도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오는 날의 옥스퍼드 아침
여태천
글,사진 / 여태천

시인, 동덕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971년생

저서
시집 『감히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렇게 오렌지는 익어 가고』 『스윙』 『국외자들』
평론집 『시적 정의와 시의 윤리』 『경계의 언어와 시적 실험』 『미적 근대와 언어의 형식』 『김수영의 시와 언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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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08-28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