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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길라잡이

덕수궁

고종의 꿈 따라 걷기 서울 중구 덕수궁
덕수궁 대한문
아이와 떠나는 여행은 아이에게는 물론 부모에게도 좋은 교감을 이룰 수 있는 선물과도 같습니다. 그만큼 아이와의 여행은 교육과 훈육의 목적이 아닌, 아이의 눈높이와 아이의 걸음을 따라 함께 놀이하며 소통하는 진정한 교감의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여행기는 아이와 부모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인정 속에서 여행하고, 더 나아가 바람직한 가족 문화를 구현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자 기획 되었습니다. 여행기 본문 속 미션과, 함께 첨부된 게임보드 등을 활용한다면 아이와 보다 즐거운 여행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탐방안내

탐방장소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덕수궁

탐방코스

대한문, 함녕전 덕흥전(미션- 숨은그림찾기(오얏꽃 찾기), 정광헌(미션- 숨은그림찾기(오얏꽃 찾기), 미션- 체험미션! 고종 되어보기), 석어당, 즉조당 준명당, 석조전(미션- 숨은그림찾기(오얏꽃 찾기), 정원(미션-체험미션! 해시계 읽기), 미술관, 광명문, 중화문 중화전(미션- 퀴즈 미션! 잡상 이름 외우기), 대한문(미션-체험미션! 왕궁 수문장 교대 수위의식 체험하기), 덕수궁 돌담길
예상 소요 시간은 2시간 ~ 3시간.
성인의 등산 및 산책 속도라면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이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걷고 함께 보는 시간 만큼은 아이의 시선과 속도에 맞추어 걷는 여유가 필요하다.

소요경비

· 덕수궁 입장료 (대인 만25세 이상 1,000원)
· 덕수궁 안내책자 (500원 - 매표소에서 판매)

※ 덕수궁 미술관 입장료는 별도
아빠와 딸
아빠와 딸

준비물

· 물이나 음료수, 간단한 간식
· 도움이 될 만한 자료
  - 덕수궁 안내책자(매표소에서 판매)
  - 또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내 손 안의 덕수궁'
· 여분의 옷, 자외선 차단제 등

찾아오는 길

· 대중교통 이용 시
  - 지하철 : 시청역 1호선 (2번 출구), 2호선 (12번 출구)
  - 버스 : 시청 앞 하차

※ 덕수궁은 따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한다.
덕수궁 지도
※ 출처 : 덕수궁 홈페이지 (http://www.deoksugung.go.kr/)
함께 보기
사회 교과서

우리 아이 교과서에 나와요!

5학년 사회
2. 새로운 문물의 수용과 자주 독립

· 자주 독립을 위한 노력, 대한 제국
· 근대 문물의 수용과 일상 생활의 변화
덕수궁 탐방을 통해 자주 독립과 세계화를 꿈꾸던 대한제국과 고종의 삶을 만나보자.
근대화를 꿈꾼 고종황제 책표지

관련 도서

근대화를 꿈꾼 고종황제
함규진 지음 / 출판 한우리북스
서양 열강들의 침범과 청과 일본, 러시아의 대립 속에서 혼란했던 근대 조선의 왕, 고종의 일생을 다룬 책이다. 그림과 함께 볼 수 있어서 아이들도 읽기 쉽다.
덕수궁-시대의 운명을 안고 제국의 중심에 서다 책표지
덕수궁-시대의 운명을 안고 제국의 중심에 서다
안창모 지음 / 출판 동녘
덕수궁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역사적 과정과 더불어 덕수궁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덕수궁의 구조와 구체적인 건물 그리고 덕수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견과 감상 등을 볼 수 있다.
알고가기

탐방 길라잡이

1. 고종의 삶 들여다보기

덕수궁에는 ‘나라를 잃은 비운의 황제’로만 기억되는 고종 황제의 근대화를 위한 집념과 외로이 나라를 지키려고 고군분투했던 그의 삶이 담겨 있다. 대한제국으로 이름을 바꿔 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자주 독립을 꿈꾸던 고종의 마음을 만나보자.

2. 근대 문물의 흔적

세계 열강에 휩싸인 대한제국의 당대의 현실과 같이, 덕수궁 곳곳에서 이국적인 근대 문물들의 유입의 흔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의 과학과 새로운 문물의 유입에 적극적이었던 고종의 삶을 만나보자.

3. 도심 속 궁궐, 덕수궁

덕수궁은 도시가 형성되고, 주변에 외국의 공관들이 있는 상황에 들어온 새로운 궁이다. 도심 한복판에 들어선 만큼, 덕수궁 안에서 담장 밖으로 멀리 바라보면 궁궐과 빌딩이 만들어내는 묘한 조화를 감상할 수 있다.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법

1.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하자

고종과 대한제국의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세종, 영조, 정조 등 흔히 알고 있는 조선의 왕과는 다른 옷차림과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고종’의 삶을 아이와 함께 다양하게 상상해보자.

2. 아이의 발견을 존중하자

덕수궁 안에는 미션에 들어 있는 오얏꽃 무늬를 비롯하여 동물, 꽃 등의 다양한 문양과 화려한 장식들이 곳곳에 있다. 아이와 함께 덕수궁을 돌아다니며, 아이가 보고 듣는 모든 것들에 함께 집중해 본다면 새로운 발견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3. 새로운 문물에 대한 열린 태도를 익히자

세계 각국의 새로운 문화와 문물을 적극적으로 경험하고 받아들였던 고종의 모습처럼, 아이도 낯설어하거나 접해보지 못 했던 것들에 대해서 용기를 내어볼 수 있도록 응원을 하자. 조금씩 더 자라는 아이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덕수궁 이야기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이야기
1902년. 고종황제는 자신의 재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칭경예식’에 사용하기 위해 자동차 구입을 결정한다. 탁지부(국가 재정 전반을 관장하는 관청) 대신 이용익은 미국 공사 호러스 알렌(Horace N. Allen)에게 자동차 구입을 부탁했고,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프레이저라는 자동차 판매상에게 승용차를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이때 들어온 자동차가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들어온 최초의 자동차이다.
자동차는 우여곡절 끝에 칭경예식 4개월 후에나 도착한다. 그런데 정작 고종은 자동차를 공식적으로 타고 다닐 수가 없었다. 모름지기 임금님의 행차는 법도를 갖추고 장엄해야 한다고 여겼던 대신들의 ‘경망스럽다’는 거센 반대 때문이었다. 이후 궐 안에 방치되던 자동차의 존재는 ‘궁궐 안에 귀신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쇠망아지가 있다’는 소문을 서울 장안에 퍼뜨리기도 했다.
출처: 전영선, 『고종 캐딜락을 타다』
탐방하기
출발
덕수궁은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변화하던 시대에 왕위에 오른 후, 국제무대 속에서 국가의 자주성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했던 고종의 삶이 묻어 있는 곳이다. 덕수궁 안에 있는 고종의 흔적과 이야기, 그리고 다양한 미션들을 함께 체험하며 고종이 꿈꾸었던 자주화와 세계화의 정신을 배워보도록 하자.
코스안내
이번 덕수궁 편은 대한문으로 시작해 고종 황제의 삶을 되돌아보고 다시 대한문으로 나와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여행을 마무리하는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덕수궁 내부의 대략적인 코스는 다음과 같다.
대한문 → 함녕전, 덕홍전 → 전광헌 → 석어당 → 즉조당, 준명당 → 석조전 → 정원 → 미술관 → 광명문 → 중화문, 중화전 → 대한문
덕수궁 내부 코스 그림
Point 01대한문
대한문 사진
대한문은 덕수궁의 정문이자 현재 이용되고 있는 유일한 출입구이다. 도심 속에 지어진 궁이기 때문에 주변 환경과 이질적인 느낌도 있지만, 의외로 운치가 있기도 하다. 정동이란 동네 자체가 가진 느낌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매표소에서 덕수궁 안내 책자(500원)를 판매하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충실히 담고 있어 궁의 전체적인 모습과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니 꼭 구입하자.
안내왜 대한문일까
대한문(大漢門)의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 이었다. ‘크게 편안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대안문이란 이름은 덕수궁 안의 화재 이후 궁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대한문’으로 그 이름이 바뀐다. 바뀐 글자(漢)의 뜻을 두고 사대주의적 의미를 부여하며 다시 대안문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대한은 ‘큰 하늘’을 뜻하는 훨씬 거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황제만의 특권이었고, 대한문은 원래부터 고종 황제가 하늘에서 제사를 지내던 환구단을 향하고 있다. 고종의 시야는 ‘크게 평안하다’로 만족하지 않고 더 ‘큰 하늘’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대한문은 알맞은 이름을 얻은 것으로 봐야한다.
Point 02-01함녕전
함녕전 사진
고종이 잠을 자고 개인 생활을 했던 ‘침전(寢殿)’인 함녕전. 우리는 덕수궁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고종의 방을 구경하게 된 셈이다. 고종은 주로 석조전을 침전으로 사용해 왔지만, 돌아가실 당시에는 이곳 함녕전에서 돌아가셨다. 그러고 보니 1904년 덕수궁에 대화재가 났을 때도 불씨는 이곳 함녕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고종에게는 별로 기분 좋은 곳이 아니겠지만, 고종의 꿈이 시작되고 끝맺은 곳으로서 의미가 있겠다.
Point 02-02덕홍전
덕홍전 사진
덕홍전은 고위 관료와 외교사절을 맞이하는 접견실이었다. 덕홍전의 내부는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꽃 모양의 샹들리에와 화려한 패턴의 천장 문양. 그 중에서도 눈의 띄는 꽃무늬가 있는데 이 꽃무늬가 오얏꽃 문양(이화문 李花文) 이다. 대한제국의 황제에 오르면서 서양이나 일본의 통치자들처럼 상징적인 문양의 필요성을 느낀 고종은 ‘오얏 이(李)’에서 딴 이 문양을 대한제국의 상징으로 삼았다. 오얏나무는 자두나무라고도 한다.
미션숨은 그림 찾기
덕홍전 내부 장식에는 오얏꽃 무늬로 꾸며져 있다. 꽃잎이 다섯에 꽃잎마다 각각 꽃술이 세 개씩 표현되어 있다. 답사 중 정광헌과 석조전에서도 숨어 있는 오얏꽃 무늬를 찾아보자.
안내고종의 자주화와 세계화
고종의 삶은 평생에 걸쳐 강력한 권력 사이에서 홀로 서려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스무 살이 넘기 까지 대왕대비인 신정왕후 조씨와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권력 밑에 있어야만 했다. 정치적 파트너였던 명성황후의 도움으로 친정(親政 : 나라의 정사를 돌봄)을 펼치게 되지만,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세계열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해야만 했다.

그런 그에게 자주화와 세계화는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었다. 그가 외세에 지나치게 기댔다는 평가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국가 간의 권력관계를 제대로 파악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본에 의한 식민지화라는 최악의 결말을 피하기 위해 그는 과감하게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그들을 이용하려고 했다. 고종이 일본에 의해 퇴위당하는 계기도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하여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호소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급진 개화파와 온건 개화파 사이에서, 또한 절대적인 왕권과 민주적인 정치 세력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 노력했다. 자연스럽게 고종의 재위 기간은 우리나라 근대화의 아픈 역사 그 자체다. 임오군란, 을미사변, 아관파천, 청일전쟁, 동학농민운동, 그리고 굴욕적인 일본과의 조약들까지. 결국 일본의 야욕을 피하지는 못했지만, 고종의 노력들까지 빛을 바래서는 안 될 것이다.
Point 03 정관헌
정관헌 사진
정관헌은 전통 건축의 장식과 서양 건축 양식이 절충해서 조화를 이룬 이국적인 건축물이다. 외국인 사신들과 연회를 즐기거나 고종이 커피를 마시며 서양 음악을 듣던 일종의 휴식 공간이다. 커피에 서양음악이라니! 고종이 서양 문물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고 우호적으로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준다.
미션정관헌에서 고종 되어보기
정관헌에서 외국 공사(자기 나라를 대표하여 외국에 살면서 외교 업무를 보는 공무원)들을 맞이하는 고종이 되어 보자. 외국 공사를 대할 때는 조정 대신을 대할 때와는 달리 절을 하는 대신 허리를 굽힌 인사를 세 번 받았다고 한다. 외국인의 입장과 문화에 맞춰준 것이다.

이러한 고종의 세계화에 대한 노력을 배우는 마음으로, 정관헌 안에서는 부모와 아이가 영어로 대화를 나누어보자. 바라는 점을 말해도 좋고, 오늘에 대한 기대를 나누어도 좋을 것이다. 고종이 그러했던 것처럼, 서로의 방식과 생각에 맞춰주는 대화라면 더욱 좋겠다.
안내커피를 사랑한 고종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시기는 대략 1890년 전후이며, 영어 발음을 따서 ‘가배차’혹은 ‘가비차’라 불렸다. 일반 서민들 사이에선 보통 ‘양탕(洋湯)국’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는 커피의 색이나 쓴맛이 한약 탕국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커피가 보약처럼 여겨진 면도 있다. 근대화라는 절대적 영향력 아래에서 커피가 서양인들의 주된 음료라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문헌에 의하면, 고종은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 : 일본 세력을 피해 고종이 경복궁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일)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있을 때 커피를 처음 맛보았다. 러시아 공사 웨벨의 처형인 독일계 러시아인 손탁(Antoi-nette Sontag)의 권유로 당시 세자이던 순종과 함께 커피를 접하게 되었다. 그 후 덕수궁으로 환궁한 뒤에도 커피 맛을 잊지 못하고 즐기던 고종은 정관헌에서 커피를 마시며 서양음악을 듣기도 했다. 1898년 고종의 커피에 독약을 타 암살하려던 ‘고종 독살 음모 사건’까지 있었던 것을 보면 고종의 커피 사랑은 대단했던 것 같다. 고종이 커피를 즐기게 되자 양반들 사이에서도 커피는 급속도로 퍼지게 된다. 고종에 의해 커피가 근대화의 상징처럼 받아들여 진듯하다.
미션숨은 그림 찾기
오얏꽃 무늬를 찾아보자.
정관헌 기둥을 유심히 보자.
Point 04석어당
석어당 사진
석어당은 임금이 머물렀던 집이라는 뜻으로, 선조가 임진왜란 후에 이곳에 머물렀음을 의미한다. 광해군 다음에 즉위에 오른 인조는 이 건물과 함께 즉조당만을 남겨 놓고 궁을 옮긴다. 이후의 왕들도 이 건물을 보존시켰는데, 임진왜란이라는 어려움을 이겨낸 선조의 뜻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단청이 되어 있지 않은 이유도 당시의 모습 그대로 유지하기 위함일 것이다. 고종은 1904년 덕수궁의 화재로 즉조당과 석어당이 소실되자 매우 낙심했다고 한다. 아마도 선조 때 이후로 서까래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보존해 오던 두 전각을 보면서 국난 극복의 의지를 다졌으리라 생각된다.
안내조선 왕조에서의 덕수궁의 의미
『사실 광해군 시절 창덕궁이 중건되면서 경운궁(덕수궁)은 왕궁의 기능을 상실했지만, 이후 조선의 역사에서 완전히 잊혀진 궁이 아니었다. 실록에 따르면, 1679숙종 5년에 경운궁이 개수된 바 있고, 1748영조 24년부터 1775영조 51년 사이에 영조는 수 차례에 걸쳐 경운궁을 찾았으며, 1893년 10월 4일에는 고종에 의해 선조 환도 300주년 기념 의식이 행해지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왜 역대 왕들이 경운궁을 찾았는가 이다. 이유는 명확했다. 경운궁은 조선 정부 입장에서는 미증유의 국난을 극복하고 왕조를 지켜 낸 역사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역대 왕들은 조선이 당했던 미증유의 국난을 잊지 않기 위해 그 현장을 찾았고, 현장을 찾았던 왕이 건재하던 시기의 조선은 항상 굳건하게 국체를 유지했었다. 1893년 경운궁에서 선조 환도 300주년을 맞이하여 경운궁의 즉조당에 참배하고 대사령을 반포한 고종이 이러한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선조 환도 300주년 기념 의식은 외세의 압력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려 있던 조선의 상황에서 고종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는 행사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관파천 이후 경운궁을 수리하고 본궁로 삼은 것 또한 역대 왕들이 보여 주었던 국난 극복 의지를 타산지석으로 삼겠다는 정도를 넘어서, 눈앞에 닥친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굳건한 의지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출처: 안창모, 『덕수궁 - 시대의 운명을 안고 제국의 중심에 서다.』
Point 05즉조당, 준명당
즉조당, 준명당 사진
두 건물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즉조당은 석어당과 함께 선조 때부터 이어져 오던 건물이고, 준명당은 고종 때 새로 지은 건물이다. 즉조당은 인조가 즉위식을 했던 곳이고, 고종이 중화전이 지어질 때까지 정사를 보는 정전 (正殿)으로 사용된 곳이다.

준명당은 한때 고종의 딸인 덕혜옹주를 위해 유치원을 운영했던 곳이다. 물론 귀족 자제들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이지만 고종의 영향으로 덕혜옹주도 서구식 문물을 적극 수용했던 여성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준명당의 돌계단 위에는 아이들이 떨어질까 봐 울타리를 쳤던 말뚝 자리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Point 06석조전
석조전 사진
덕수궁 안에서 가장 이색적인 공간인 석조전은 당시 우리나라의 나라살림에 대한 조언을 해주던 영국인 재정고문 브라운(John Mclevy Brown)의 건의로 지은 건물이다. 지금이야 서구식 건물 아닌 것을 찾기가 더 어렵겠지만 1900년대 초에 이런 건물을 그것도 한 나라의 임금이 머무는 궁 안에 지었다는 것은 근대국가로 나아가겠다는 고종의 의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고종은 앞서 이야기했던 자동차 외에도, 최초로 전기를 도입했고(경복궁 후원의 건청궁 안뜰), 최초로 전화기를 가설하기도 했다.

※ 일제 강점기 이후 미술관 등으로 개조되어 사용되다가 최근에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 공사를 하고 있어 2014년 10월부터 개방된다. 고종 시대 이후로 아무도 본 적 없는 황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다시 살려낸다고 한다.
미션숨은 그림 찾기
오얏꽃 무늬를 찾아보자.
가장 높은 곳에 있다.
Point 07정원
정원 사진
석조전 앞의 정원은 석조전 중건 당시 함께 지어진 유럽식 정원이다. 조선 왕조는 후원(後苑)이라 하여 궁의 맨 뒤편에 정원을 만들었다. 하지만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을 고려하여 유럽식 정원이 조성된 것이다. 정원 한 가운데의 분수(噴水)는 원래 없던 것을 나중에 만든 것으로,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자연 순리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궁 안에 분수를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과연 이런 조성을 고종은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미션해시계(양부일구)읽기
양부일구는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대표적인 해시계이다. 중국의 ‘양의’를 바탕으로 우리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개량하여 만든 것으로,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12지신을 새겨 보기 쉽게 만들어진 조선의 과학 문물로서 의미를 갖는다. 다음의 안내를 따라, 아이와 함께 양부일구를 보며 현재 시각을 맞춰보자!
안내해시계(양부일구) 보는 법
1. 바깥쪽 원에 12지신이 한자로 쓰여있다.
각각 한자가 나타내는 시각은 다음과 같다.
-자(子)시: 오후 11시~오전 1시 / 축(丑)시: 오전 1시~오전 3시
-인(寅)시: 오전 3시 ~오전 5시 / 묘(卯)시: 오전 5시~오전 7시
-진(辰)시: 오전 7시~오전 9시 / 사(巳)시: 오전 9시~오전 11시
-오(午)시: 오전 11시~오후 1시 / 미(未)시: 오후 1시~오후 3시
-신(申)시: 오후 3시~ 오후 5시 / 유(酉)시: 오후 5시~오후 7시
-술(戌)시: 오후 7시~오후9시 / 해(亥)시: 오후 9시~ 오후 11시

2. 침의 그림자가 닿는 한자칸은 세로로 4등분 되어 있다. 한 칸에 30분을 계산한다.
(예: 침의 그림자가 ‘신’시를 4등분 했을 때 가운데 있으면 오후 3시~5시 중에서 4시쯤인 것이다.)

3. 마지막으로, 양부일구 옆에 있는 안내판을 보며 시차보정표를 맞춘다.
Point 08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관 사진
정원 옆의, 석조전과 직각으로 연결된 덕수궁 미술관은 1938년에 만들어진 석조전 서관이다. 고종황제의 서거 후 석조전이 미술관으로 개조 되었는데, 그곳에서 일본 미술품만 전시한다는 사실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높아지자 2여 년의 공사 끝에 덕수궁 미술관을 만들었다. ‘이왕가( 李王家 : 일제강점기 조선왕조를 비하해 일컫는 말)’ 와 관련된 사무를 보던 일제강점기의 기관인 이왕직( 李王職 )은 창경원 박물관의 소장품을 옮겨와 전시를 했다고 한다. 덕수궁 미술관은 현재는 국립 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Point 09광명문
광명문 사진
광명문은 사실 고종의 침전인 함녕전 권역의 입구였다. 그 문이 덕수궁을 공원으로 만든다는 이유로 철거되어 엉뚱한 곳에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광명문의 원래 위치는 숨겨진 덕수궁 이야기 ‘덕수궁의 본래 규모’ 속 그림 참고)
이곳에 전시된 신기전은 복제품이지만, 자격루와 홍천사 종은 진품이다. 어쩔 수 없이 떠돌다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지만, 공교롭게도 자격루와 신기전 모두 자주적인 기술력을 갖고자 했던 조상들의 노력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고종의 궁에 어울리는 유물이라 할 수 있겠다.
안내자격루
자격루는 세종 때 장영실이 처음 만든 자동 물시계이다. 밤이나 해가 뜨지 않는 흐린 날에는 해시계 대신 자격루로 시각을 측정하였다. 지금 광명문에 있는 자격루는 중종 때에 개량하여 새로 만든 것의 일부분이다. 정해진 시각에 자동으로 종을 쳤다고 한다.
안내신기전
1448년 (세종 30년) 제작된 로켓 추진 화살. 대신기전(大神機箭), 산화신기전(散火神機箭), 중신기전(中神機箭), 소신기전(小神機箭) 등의 여러 종류가 있다. 화약을 이용해 화살을 발사하는 장치로, 파괴력도 크지만 적에게 큰 공포감을 주어 조선 초기 여진족으로부터 우리 땅을 되찾기 위한 전쟁에서 큰 역할을 했다.
Point 10-01 중화문
 중화문 사진
정사가 이루어지는 정전(正殿)인 중화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지나쳐야 하는 곳이 중화문이다. 원래는 중화문을 중심으로 중화전을 둘러싸는 담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철거되어 중화문의 존재가 조금은 어색해 보인다.
우리나라의 어떤 궁이든 정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문 세 개를 지나가야 했다. 경복궁의 정전 근정전에 가기 위해서는 광화문-흥례문-근정문을, 창덕궁의 정전 인정전으로 가기 위해서는 돈화문-진선문-인정문을 거쳐야 하듯 말이다. 덕수궁도 원래는 대한문과 중화문 사이에 조원문이 있었지만 현재는 소실되고 중화문과 대한문만 남았다. 다른 궁과 달리 문들이 일렬로 배치되지 못한 것은 공간적인 협소함 때문으로 ‘도시형 궁궐’로서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Point 10-02 중화전
 중화전 사진
중화문을 통해 들어서니 중화전과 박석이 깔린 조정이 펼쳐진다. 조정 바닥에는 각각의 지위를 나타내는 품계석이 서 있다. 사실 조정에 들어올 정도의 계급이라면 최상위 벼슬에 오른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직접 왕의 얼굴을 뵐 수 있었던 사람들은 훨씬 소수였다. (조정에 서 있을 때는 왕을 바라보고 서는 것이 아니라 어도 쪽으로 마주보고 섰다고 한다.) 이곳에 햇빛 가리개를 칠 때도 특정 계급 이상이 아니라면 그늘 밑에 있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철저히 수직적인 유교 관료 사회임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동쪽 품계석에는 문신(文臣: 일반 행정 사무를 하는 관리)이 서고, 서쪽 품계석에는 무신(武臣: 군사와 관련된 일을 하는 관리)이 섰다.
 중화전 지붕 사진
중화전의 지붕을 보면 10개의 잡상이 서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잡상은 경사진 추녀마루의 기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안된 장치이자, 재앙을 막거나 화재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기를 바라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설치한 것이다. 서울의 다른 궁에 있는 잡상은 6~7개에 불과하지만 중화전의 잡상은 10개에 달한다. 이 또한 황제에 걸맞은 위엄을 갖추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션 잡상의 이름 새로 짓기
잡상의 이름은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① 대당사부(大唐師傅), ② 손행자(孫行者), ③ 저팔계(猪八戒), ④ 사화상(沙和尙), ⑤ 마화상(麻和尙), ⑥ 삼살보살(三煞菩薩), ⑦ 이구룡(二口龍), ⑧ 천산갑(穿山甲), ⑨ 이귀박(二鬼朴), ⑩ 나토두(羅土頭)이다. 모두 중국의 서유기나 도교의 설화 등에서 비롯한 것으로, 재양과 화재를 막는 다는 의미가 있다.
10개의 잡상을 세워 황제와 제국에 걸맞은 위엄을 갖추려던 고종의 마음을 담아, 현대에 맞게 잡상의 이름을 바꾸어보자.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나라의 자랑거리 베스트 10’을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며 목록을 만들면, 이것이 우리만의 잡상의 이름이 될 것이다.
 중화전 천장 사진
중화전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화려한 장식들의 위용이 대한제국의 포부를 엿볼 수 있게 했다. 천장의 용 조각은 상당한 크기를 뽐낸다. 모두가 황제의 위용에 맞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화전 천장 사진
당가 또한 조선왕조의 궁들 중에 가장 화려한 모습을 자랑한다.
안내당가
당가는 왕이 앉는 일종의 의자로써, 궁궐에서 가장 높고 중요한 공간이다. 청판 마루 위로, 임금이 직접앉는 어좌, 등받이를 기능하는 등널(背板), 그리고 어좌를 뒤에서 감싸주는 곡병으로 구성된다.
중화전 당가는 정전 당가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높은 품격을 자랑한다. 곡병을 비롯해 정전 천장, 월대 계단도 용문양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덕수궁이 대한 제국을 선포하고 황제 자리에 오른 고종황제의 궁이라는 자부심을 나타낸다.
안내일월곤륜도
임금이 앉는 용상(용상)의 뒤편을 장식한 그림. 일월곤륜도는 다섯 봉우리의 산, 파도치는 바다, 흘러내리는 폭포, 짙푸른 적송, 그리고 해와 달을 기본 소재로 하며, 좌우대칭으로 그려졌다. 그림 속 요소들은 단순히 자연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조상들의 우주관 들을 상징하고, 왕조가 복되고 창성하기를 바라는 소원을 나타내고 있다.
Point 11 대한문_왕궁수문장 교대식
 왕궁수문장 교대식 사진
다시 대한문으로 돌아와 왕국수문장 교대식을 본다. 대한문 앞을 지나칠 때 큰 감흥이 없이 몇 번이나 목격한 광경임에도 불구하고 고종 황제의 꿈을 이해하고 나니 그들의 몸짓 하나하나에서 기품이 느껴진다.
미션 왕궁수문장 교대 및 수위의식 체험하기
교대의식- 1회/ 11:00, 2회/ 14:00, 3회/ 15:30
순라의식-11:25~12:25 (덕수궁 대한문-청계천-보신각) 15:40~16:10 (덕수궁 대한문-세종로-광화문 광장)
※ 행사 시간 및 순라의식 구간 등은 사정에 의해 변경될 수 있다.

[나도 수문장]
관람객이 수문장 역할로 직접 출연하여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을 직접 지휘할 수 있는 체험 행사
-접수는 왕국수문장 교대의식 홈페이지에서 예약(www.royalguard.kr)
-매일 2회 행사(14:00)에만 운영
-기상 상황 등에 의해 사전 통보 없이 취소될 수 있음
-수문장과 같이 사진을 찍기 체험
Point 12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돌담길 사진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걸어보자. 미술관과 교회 건물의 이국적인 분위기, 각국 대사관 앞을 지나며 걸어보자.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세계 속에 섞여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는 어쩌면 고종 황제가 꿈꾸었던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숨겨진 덕수궁 이야기
덕수궁인가, 경운궁인가
덕수궁의 기원은 임진왜란 직후 선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쪽 지방으로 몽진(蒙塵: 임금이 피난을 감)을 떠났던 선조가 한성으로 돌아와 보니 궁이란 궁은 모두 불타서 머물 곳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월산대군(세조의 장자 의경세자의 큰아들)의 집을 임시적인 행궁(行宮: 임금이 궁 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무르던 궁)으로 삼았는데 이곳이 지금의 덕수궁의 시초가 된다. 이곳은 한동안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광해군 대에 와서 ‘경운궁(慶運宮)’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창덕궁과 창경궁이 중건되면서 선조가 직접 묵었던 석어당과, 인조가 즉위했던 즉조당 만이 보존되고 궁의 역할은 없어진다.

그러다가 광무황제(고종) 때에 이르러 경운궁은 다시 크게 중건 되었고, 고종이 폐위당하며 경운궁이라는 이름 대신 ‘덕수(德壽)’라는 궁호(宮號)가 내려진다. ‘덕수’라는 이름은 왕위를 물러나는 태조에게 올려진 이름으로 오래 사시라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시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숨겨진 덕수궁 이야기
덕수궁의 본래 규모 1910년 당시의 궁역 그림
서울의 다른 궁들이 산을 배경으로 널찍하게 들어선 것과는 달리 덕수궁은 도심 한복판에 서 있다. 이렇게 궁을 지은 이유는 앞선 궁궐들은 도시가 형성되기 전에 지어진 것에 비해 덕수궁은 도시가 형성된 이후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거기에는 고종의 정치적 계산 때문이 있기도 하다. 고종은 당시 서양 공사관들이 밀집해 있던 지금의 정동 일대를 새로운 궁궐터로 결정한다. 다급한 때에 서양 세력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일본과 청의 세력으로부터는 거리가 먼 것이 빼놓을 수 없는 이점이다. 그런데 이미 공사관들이 들어선 곳에 궁이 지어지다 보니 공사관들을 피해서 지을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공사관들 사이사이에 궁이 들어선 모양새가 되었다.

가장 건물이 많았을 때의 덕수궁은 중화전과 함녕전 등이 있는 주요부(오늘날의 덕수궁 구역), 주요부 서측의 중명전 구역, 그리고 주요부 서북방의 선원전 구역으로 나뉜다.
현재는 10여 채만이 남은 주요부에는 원래 주요 건물이 약 20여 채 있었다. 중명전 구역은 지금의 예원학교 일대에 이르고, 선원전 구역은 예전 경기여고 자리에서부터 현재 조선일보사 일대까지 그 규모가 오늘 날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넓었다.
게임보드
아이와 함께 역사탐방을 하며 미션을 수행할 수 있도록 "게임보드"를 제공해 드립니다. 아래 <탐방 자료실>에서 파일을 다운 받아 출력한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게임보드이미지
탐방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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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기획      │올댓스토리
ㆍ글/사진  │황성식
ㆍ그림      │홍소진
ㆍ감수      │안창모 교수(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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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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