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분 클래식

30년 만에 한국에 소개되는 명작

둘라자크 구르나는 1948년 잔지바르 술탄국, 현재는 탄자니아가 된 동아프리카 지역 태생의 작가입니다. 스무 살에 영국으로 망명해 문학 연구자의 길을 걸은 작가는 40대에 이르러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영어권에서는 상당히 인지도를 얻었지만, 국내에는 소개되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202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작품이 본격적으로 번역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낙원』은 1994년 발표된 작가의 대표작으로 당시 부커상 후보 등에 오르면서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명성을 얻게 했던 작품입니다.

『낙원』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아래 영상에서 바로 만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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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유수프의 이야기 설은 주인공 유수프가 자신의 고향을 갑작스럽게 떠나 ‘사이드’라고 불리는 아지즈 아저씨의 하인 생활을 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요. 어리고 왜소한 아이였던 유수프가 건장한 청년이 되는 시기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동아프리카 지역의 거상이었던 아지즈를 통해 자신이 속해 있는 시공간을 점차 인식하게 되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여러 갈등을 경험하면서 유수프는 차츰 성장해 나가게 됩니다.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는 여정이 매우 풍부한 묘사로 이루어져 있고 유수프의 성장을 함께하는 아지즈 아저씨, 칼릴, 모하메드 압달라, 아미나 등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어서 ‘대작’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아프리카계 소설로써의 의미 선 흔치 않은 동아프리카, 그것도 아랍계 이슬람 정체성을 가진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이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아프리카계 소설은 대체로 식민지 흑인 중심의 서사인데,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아랍인, 인도인, 페르시아인, 유럽(독일, 영국)인 등 다양한 인종의 상인, 선원, 현지 원주민, 이방인(침략자)이 뒤섞이는 동아프리카 해안 지역의 이야기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슬람 계열의 상인 공동체를 중심에 두었다는 점에서 낯설고 새로운 감각으로 소설이 읽히는데요. 이것은 물론 작가 자신의 경험이나 정체성과 관련이 있기도 합니다.

신념과 믿음의 영역 리고 단순히 야만과 문명의 대립이나 지배/피지배의 관계를 넘어 신념의 문제를 가시화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여러 정체성이 교차하고 혼종되는 상황 속에서 인종이나 언어, 국가 등은 그다지 큰 의미를 띠지 못하고, 종교로 대표되는 믿음의 영역이 중요하게 부각되는데요. 그 믿음 역시 거래와 교환이라는 자본주의적 메커니즘 아래에서 유동하고 있다는 점이 섬세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그것이 사랑과 애정, 욕망의 문제와 결부될 때 소설은 매우 흥미로워지기도 합니다.

처럼 『낙원』은 출간된 지 30여 년이 지나서야 한국 독자들을 만나게 된 만큼 독특하고 신선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새로운 시공간의 이야기를, 깊이 있는 시선으로 만나보고 싶은 문학의 독자라면 『낙원』은 탁월한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제목인 ‘낙원’은 소설 속에서 자주 묘사되는 안락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의미하기도 하는데요. 대체로 낙원이 광활한 대자연의 풍요로움과 숭고함을 가리킨다고 할 때 다소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특히 그것이 아프리카 대륙의 이야기라면 더욱 그러하고요.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소설은 『낙원』을 비롯해 『바닷가에서』, 『그 후의 삶』, 『배반』 등 순식간에 4권이나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접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노태훈
글 / 노태훈

문학평론가, 1984년생

이력
중앙신인문학상 평론부문, 계간『자음과 모음』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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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04-04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