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 미술관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살면서 한 번쯤은 듣게 되고 해외여행을 갈 때면
의무적으로 가게 되는 각 도시의 미술관들.
수많은 작품들 중 이것만큼은 꼭 봐야 한다는 작품들을
몇 점 선정해서 들려드리려 합니다.
처음 만날 미술관은 너무도 유명한 예술의 도시 파리가 사랑하는,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인상주의의 꽃 <오르세 미술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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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인상주의의 꽃 ‘오르세 미술관’ 르세 미술관은 인상주의를 중심으로 그 전후에 활동한 미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프랑스 예술이 전성기이던 시절에 작품을 총망라하고 있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 건물은 파리 중심에서 남서부를 잇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기차역이었으나 기술의 발달로 옛 방식의 기차 사용이 무용지물이 되자 지금의 미술관으로 탈바꿈되었고, 1979년 오르세 미술관으로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은 총 3개 층으로 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 1층에 해당하는 0층은 보수적이고 관학적인 아카데미풍의 작품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위로 올라갈 수록 점점 새로운 진보적인 예술로 나아가게 됩니다. 신고전주의로 시작해 사실주의를 지나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기 인상주의로 작품 순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장 레롱 제롬 <닭싸움을 시키는 젊은 그리스인들>

장 레옹 제롬, 닭싸움을 시키는 젊은 그리스인들, Oil on canvas, 143 x 204 cm, 1846

가 장 레옹 제롬은 19세기 중반 프랑스 아카데미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지금도 유명한 명문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의 3대 교수 중 한 명으로, 50대 즈음에는 ‘생존한 가장 유명한 화가’로 불릴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가 1847년 살롱전에 출품하며 극찬을 받았고 유명세를 알린 작품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가 생전에 받은 명성에 비해 현시대에는 거의 기억하는 사람없이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그의 말년 우리가 알고 있는 모네, 르누아르 같은 인상주의 작품들이 대세가 되며 그의 그림은 곧 역사에서 잊혔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현재, 전통과 진보를 적절히 조화시키며 완벽한 테크닉의 그림을 보여준 그의 예술관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테크닉, 선과 색의 완벽한 조화를 느끼고 싶다면 필수인 작품입니다.

밀레 <이삭 줍는 여인들>

장 프랑수아 밀레, 이삭 줍는 여인들, Oil on canvas, 83.82 x 111.76 cm, 1857

레가 활동하던 19세기 프랑스에서 이삭줍기는 농촌의 극빈층에게 부농이 베풀어주는 특권이었습니다. 농장주가 빈농에게 추수를 하고 난 뒤에 들판에 남은 밀이삭을 주워가도록 허락했던 거죠. 하지만 남아있는 곡식의 양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이삭줍기는 늘 엄격한 관리 속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잘 보면 저 먼 뒤편에 말을 탄 보안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또한 땅 속으로 들어갈 듯 몸을 낮춘 여인들은 허리 한번 피지 못하고 있지만 먼 뒤 지평선 쪽 수레에는 터질듯이 밀단을 쌓고 떠나가는 마차가 보입니다. 당시 풍요와 빈곤의 대비의 안타까운 공존이자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구스타브 쿠르베 <오르낭의 매장>

구스타브 쿠르베, 오르낭의 매장, Oil on canvas, 311.5 x 668 cm, 1849~1850

시 보수적인 미술계는 신화나 역사, 영웅들의 모습을 고귀한 예술 주제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쿠르베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 천사를 보여달라, 그럼 천사를 그리겠다.” 눈으로 보는 사실만을 그리겠다는 쿠르베의 신념은 미술사에 굉장히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과거를 바라보던 시선이 현재로 넘어오는 순간이었죠. 시골 장례식 풍경을 기록한 ‘오르낭의 매장’은 화가의 고향 오르낭에서 벌어진 장례식 장면을 그렸습니다. 실물 크기의 인물들이 40명 이상 등장시켰습니다. 평범한 시골 사람들의 삶과 정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가로 6미터가 넘는 대형 화폭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당대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중요한 역사나 신화일수록 큰 캔버스에 그리던 당시 예술계에서 이 거대한 캔버스에 일반 노동자의 장레식을 그렸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그림이었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던 쿠르베는 농민이나 도시 하층민의 비참한 현실을 묘사한 작품으로 사실주의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마네 <올랭피아>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Oil on canvas, 130 x 190 cm, 1863

인이 온몸을 드러낸 채 비스듬히 누워 있습니다. 발 밑에는 검은 고양이가 있는데요. 당시 꼬리를 세운 검은 고양이는 성적인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흑인 하녀가 손님이 보낸 꽃다발을 들고 있는데 여성을 찾아온 남성이 선물로 가져온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목에 사용된 '올랭프'는 당시 매춘부들이 흔히 사용하던 이름이었습니다. 즉 올랭피아의 뜻은 "매춘부의 장소"라는 의미인 것이죠.

연히 많은 비평가들이 이 여성을 몸을 파는 여성으로 해석했는데요. 또 큰 문제는 여인이 정면을 똑바로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이었습니다. 이는 관람자가 여인을 찾아온 고객의 자리에 위치하게 된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당시 파리의 신사들은 겉으론 신사인 척 뒤에서는 매춘을 들기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 작품은 그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의 이런 대범한 작품들은 이후 예술이 무조건 아름다워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 또한 만들어주었습니다.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 Oil on canvas, 131 x 175 cm, 1876

복을 그리는 화가라 불리는 르누아르의 대작입니다. ‘물랭 드 라 갈레트’ 파리 야외 무도장에서 춤을 추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을 그려낸 1876년 작품입니다. 작품 앞에 서 있으면 마치 그림에 실제 햇빛이 비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인데요. 르누아르는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행복은 먼 곳이 아니라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했습니다.

조르주 쇠라 <서커스>

조르주 쇠라, 서커스, Oil on canvas, 185.5 x 152 cm, 1891

묘법을 창시한 조르주 쇠라는 광학을 토대로 점을 찍어 그림을 그렸습니다. 멀리서 볼 땐 일반 회화 작품 같지만 가까이 보면 수많은 점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참 신기했죠. 쇠라는 감각에 의존하는 예술의 한계를 넘어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당시에는 첨단 과학이었던 색채학과 광학을 참고하여 점묘법을 탄생시켰습니다. 팔레트에 물감을 섞어 캔버스에 칠하는 것이 아닌 원색의 물감을 점으로 찍어 우리 눈으로 더해지게 만드는 것이었죠.

지만 안타깝게도 이 그림은 쇠라의 유작이 되었습니다. 해당 작품을 전시 중이었을 때 그는 디프테리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쇠라의 작품은 몇 점 남아있지 않은데요. 단명한 이유도 있지만 점을 찍어 그리는 방식으로 인해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2년이란 시간이 걸리기도 했기 때문이죠.

빈센트 반 고흐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 반 고흐,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Oil on canvas, 92 x 72.5 cm, 1888

덕한 유화의 질감과 파란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 물에 비친 빛의 표현이 참 매력적이죠. 반 고흐는 유독 별을 좋아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반 고흐는 아를의 노란집에서 멀지 않은 강둑 위에 앉아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스케치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당시 반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쓰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거리는 별빛의 흐름을 느낀다, “별은 심장처럼 파닥거리며 계속 빛나고, 캔버스에서 별빛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지금은 유명해진 말이 나옵니다.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라고 적혀 있었죠. 사실 우리도 생각해보면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며 긍정을 느낀 적이 있지 않나요. 그림을 선택하고 찾아온 고난과 역경, 그럼에도 밤하늘의 별은 그를 꿈꾸게 했던 겁니다.

폴 고갱 <타히티의 여인들>

폴 고갱, 타히티의 여인들, Oil on canvas, 69 x 91.5 cm, 1891

고갱은 반 고흐, 세잔과 함께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불립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을 완성하기 위해 원시의 섬 타히티로 간 그는 원주민의 생활상, 종교 같은 초현실적인 세계를 주로 그렸습니다.타히티의 여인들', 혹은 '해변에서'로 알려진 이 작품은 해변에 앉아 있는 두 여인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죠. 왼쪽 여인은 꽃 무늬가 장식된 전통 의상을 입고 있습니다. 귀에는 옷의 무늬와 똑같은 생화가 꽂혀 있어 여인의 구릿빛 피부를 돋보이게 하죠. 그 옆에 앉아 있는 여인은 고갱의 동반자로서 선교사들이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데요. 목까지 올라온 의상을 보면 날씨와 어울리지 않고 조금은 우울한 느낌이 감돌고 있습니다. 고갱은 이곳에서 완성한 평면적인 색 면, 강렬한 원색을 추구하는 작품은 이후 등장하는 야수파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정우철
정우철

EBS 클래스 e 도슨트 정우철의 미술극장
<알폰스 무하>, <툴루즈 로트렉>, <앙리 마티스> 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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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02-24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