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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을 찍는 일 - 남극의 과학자들

호기심, 알고 싶은 마음 는 남극에 세 번 갔다. 처음엔 소설가로, 다음엔 다큐멘터리 연출가로, 그리고 마침내 동물행동 연구자로. 각기 다른 몸이었다. 예술가 체험단의 일원으로 처음 남극 세종기지를 방문했을 때 기지월동대장에게 물었다. 굳이 남극까지 가서 과학연구를 해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어떤 상징적인 의미 같은 거냐고. 인간에게 도움이 될 만한 발견에는 뭐가 있냐고. 과학, 기술, 진보, 발전, 국가 위상, 그런 단어들을 떠올리고 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할 이야기가 많은 표정이었지만 한동안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내게 되물었다. 인간은 왜 달에 가려고 할까요?

알고 싶은 마음, 호기심이죠. 우리가 남극에 와서 연구를 하는 건, 마치 달나라에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것과 같은 겁니다.

잠수 준비 중인 해양생물학자
두 번째 남극, 연구자들을 따라다니며 영상에 담았다.
40분짜리 다큐멘터리는 울주산악영화제에서 <남극의 여름>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다.

긴 겨울을 이겨내는 기다림 고 싶은 마음. 뭔지 알 것 같긴 했지만 의구심은 가시지 않았다. 그는 유빙을 깨어 온 얼음으로 언더 락을 만들어주면서 소리를 들어보라 했다. 한 잔 마시라가 아니라 들으라. 잔을 대고 귀를 기울였다. 토독토독 경쾌한 소리가 났다. 잔속의 얼음이 녹으면서 그 안에 갇혀 있던 공기방울이 터지며 내는 소리였다. 수십수백만 년 전의 공기. 빙하의 세월에 비한다면 인간의 시간은 딱 그 공기방울만 할 것이라 했다. 빙하의 시간이 1km라면 인간의 시간은 0.1mm 정도 될 거라고.

기심으로 과학자들을 따라다녔다. 물론 체험의 일환이었다. 하염없이 기다리고 진격하고 뛰어들고 삽질하고 똥밭에 구르고. 탐구의 과정은 너무나 비효율적인데 그 성과는 너무나 미미해보였다. 생태학자는 가로세로 50cm 방형구 안에 든 식물의 숫자를 일일이 세고 그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는데, 그렇게 그린 생태지도는 바톤 반도의 일부이고, 전체 생태지도를 그리려면 삼 년에 삼 년을 더해야할지 몰랐다. 기껏 한 점을 찍는 일에 그리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나 묻고 싶었지만, 대신 그가 세고 있는 식물의 나이를 물어보았다.

빙하 속에 갇혀 있는 공기방울.
육지에 상륙한 유빙을 깨 언더락 얼음으로 사용하곤 했다.

년에 0.1mm씩 자란다고 알려져 있으니 계산해보세요. 이게 1cm 정도 되니, 이만큼 자라는 데 몇 년이 걸린 걸까요? 백 년. 첨단장비도 없이 백 년. 영하 50도의 밤만 지속되는 겨울을 이겨내고 백 년. 빙하의 시간이 1km라면 인간의 시간은 0.1mm. 공기방울만 한 존재.

하나를 연 것 같았지만 그 문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보지 못했다. 그렇게 짧은 체험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그 문 안의 것을 꼭 보아야겠다 마음먹었다. 세종기지를 떠나기 전부터 돌아갈 궁리를 하고, 다음 해 장비를 챙겨 다시 남극으로 갔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문장이 아니라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몸이었다.

인간에게 길을 열어주는 유일한 시간, 남극의 여름 극의 여름. 두터운 눈밭 사이로 식물의 숨구멍이 뚫리는 시기. 눈 녹은 자리마다 펭귄과 스쿠아가 저마다 둥지를 틀고 번식을 하는 시기. 수년간 얼음 속에 갇혀 있던 깔따구가 반짝 날아올라 알을 까고 죽는 시기. 눈 녹은 물이 펭귄 똥을 싣고 바다로 흘러 크릴을 키워내는 시기. 크릴을 먹고 새끼펭귄이 자라고, 새끼펭귄을 먹고 스쿠아가 몸집을 키우는 시기. 남극이 인간에게 길을 열어주는 때도 여름 한철. 연구자들은 여름이 가기 전에 계획한 일을 모두 마쳐야 했다.

남극의 여름

치연구를 하다 펭귄연구자로 남극에 첫발을 디딘 동물행동학자를 따라갔다. 며칠간 그는 연구실 책상에 앉아 깨진 남방큰재갈매기 알 조각들을 이어붙이는 작업을 했다. 방풍석이 둥지 보온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 실험하는 데 사용될 실험용 알이었다. 이윽고 실험용 알 만들기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남방큰재갈매기의 서식처 포터소만은 기지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다.

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안개가 덮치더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시야가 가로막히고 세상은 온통 흰 빛이 되었다. 능선이 사라지고 하늘이 사라지고 경계가 지워졌다. 모든 방향감이 무력해졌다. 자칫 길을 잘못 잡으면 크레바스에 빠질 수도 있는데. 두려움이 몰려왔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지금도 잊히지 않는 공포다.

인간의 길, 펭귄의 길

추위 속 기다림의 연속 착하자마자 장비들을 꺼냈다. 방풍석에 숨은 실제 둥지를 하나 선택하고, 대조군으로 방풍석이 없는 버려진 빈 둥지를 하나 선택. 둥지에 일정 온도의 알을 놓은 다음 온도의 변화를 측정했다. 갈매기들의 둥지가 방풍석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 하지만 다시 시작된 눈바람은 거침이 없고 실험 결과는 예상을 벗어났다. 추웠다. 추워도 너무 추웠다. 장갑도 못 끼고 눈바람을 맞으며 장비를 다루고 실험을 이어나가는 고난보다도, 실험이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리라는 예감이 더 힘들었다. 논문으로만 보던 것과 실제로 본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일 년의 준비가 허사였다.

귄 연구자의 또 다른 과제는 펭귄 먹이행동을 분석하는 일이었다. 건강한 펭귄을 잡아 머리에 비디오 로거를 달고, 먹이사냥을 나갔다 돌아오면 로거를 수거해 데이터 분석한다. 데이터도 데이터지만 장비 하나 값이 천만 원. 반드시 수거를 해야만 하는데 먹이사냥을 나간 펭귄은 돌아올 기미가 안 보이고, 오가는 길목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여름이라지만 남극은 남극. 바람이 모질기가 그지없고 눈이라도 섞이면 그야말로 송곳바람. 평생 누군가를 그렇게 애타고 처절하게 기다려본 적이 있었는지. 기다림은 남극 연구의 필수요소인 듯했다.

펭귄에 로거를 붙이기 위해 다가가는 연구자

을 놓고 스쿠아를 기다리는 조류 연구자도 있었다. 영리한 스쿠아는 밑밥만 챙겨 먹고 도망가기 바쁘고. 한 마리 걸려들면 두건을 씌우고 날개 길이를 재고 무게를 달고 털과 피를 뽑는데, 야생의 녀석인지라 물고 할퀴고 반항질이 여간 아니었다. 장갑을 끼면 손이 무뎌져서 맨손으로 일을 하다 보니 온통 생채기에 피투성이. 그래도 가만 앉아 스쿠아를 기다리는 시간보다 스쿠아의 입질에 시달리는 시간이 낫다. 그 정도 입질이야. 알의 부화율과 생존도를 파악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스쿠아 둥지를 찾아가는데, 그때마다 어미 스쿠아의 맹렬한 공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들도 사람을 분간할 줄 알아서 한번 침입자로 파악되면 멀리서부터 알아채고 맹공격이다. 부리로 쪼고 날개로 후려 차고 똥을 싸지르고. 헬멧을 써보기도 하고 막대기를 휘휘 저어보기도 하고 여러 궁리를 해보지만, 결국은 최대한 빨리 작업을 마쳐주고 둥지를 떠나는 것이 스쿠아에게도 인간에게도 최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스쿠아의 과격한 공격

사랑에 빠진 자들의 사랑스러움 양생물들을 채집하기 위해 다이버가 된 연구자는 직접 바다에 뛰어들었다. 손끝만 담가도 뼛속까지 냉기가 전해지는 남극해에. 바다에서 올라온 그녀의 얼굴은 푸르뎅뎅 퉁퉁 부어 곧 죽을 사람처럼 보였는데, 자신의 연구 대상인 회초리산호를 보여주며 산란기가 어쩌고 나이테가 어쩌고 자랑을 하는 모습은 위험에서 돌아온 사람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사람의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연구자들의 얼굴에서 한결같이 드러나던 달뜸, 혹은 화사함.

영하의 남극해에 뛰어들어 채집해 온 해양생물들

랑에 빠진 얼굴로 치자면 기생충을 연구하는 의학자가 단연 최고였다. 그는 새로운 기생충을 만나기 위해 똥을 찾아 어디든 가는데, 지난해에는 아프리카에서 얼룩말 똥과 한 계절을 보냈다고 했다. 대부분 싸 놓은 똥을 파헤치지만 죽은 펭귄을 해부해 위장에 든 내용물을 파헤치기도 한다. 병들어 죽은 펭귄의 내장 냄새는 견딜 수 없이 역하다. 그런데 내장에 머리를 처박고 핀셋으로 기생충을 찾아 집어드는 그는 꼭 그득한 밥상을 받아들고 신나게 젓가락질을 하는 사람 같았다.

아 이것 좀 봐요. 아무래도 얘는 기생충 때문에 죽은 거 같아요. 기생충이 위장 벽을 뚫고 들어간 걸 보면. 기생충을 잡아들고 저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는 기생충으로 죽은 펭귄 사례를 보고하게 될지도 몰랐다.

물마다 가지고 있는 광합성 능력의 차이가 개체량을 결정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무거운 광합성측정기를 들고 기지를 나선 식물학자에게서도, 그의 연구대상 남극잔디를 보여주며 예쁘지요? 하고 배시시 웃던 식물학자의 얼굴에서도 그 부듯한 미소가 있었다. 고무장옷을 입고 차가운 호수에 들어가 돌을 들추고 던지고 허리를 굽혔다 펴고 반복하다가 겨우 미세갑각류 한 마리를 발견한 미세조류학자의 얼굴에서도. 로거를 장착한 펭귄이 사흘 만에 먹이사냥을 마치고 뒤뚱뒤뚱 걸어오는 걸 본 연구자의 얼굴에서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집중하며 스스로 사랑스러워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비디오 로거에 찍힌 젠투펭귄의 수중 먹이사냥 모습
(극지연구소 제공)

는 최대한 그 얼굴을 영상에 담으려 애쓰며 두 번째 남극의 여름을 보냈다. 다시 남극을 떠나기 전날, 그동안 내내 고장난 장비와 씨름을 하고 있던 대기연구자의 연구동을 방문했다. 에어로졸을 측정하는 그의 장비는 다행히 늦지 않게 다시 작동이 되었고, 그는 그제야 기지에 도착한 이래 처음이자 마지막 평온한 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며 웃었다. 내가 어떤 연구를 하느냐 묻자 그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쎄요, 제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이게 일이년, 십 년 이십 년에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죽을 때쯤이면 알 수 있을까? 저는 그냥 한 줌 씨를 뿌리고 있는 거 같아요. 그 씨가 잘 자라서 뭐가 될지 나는 알 수가 없지만, 잘 자라겠죠, 후에 누군가는 알게 된다면 그걸로 된 거죠.

리고는 겸손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 숙연한 미소가 많은 걸 말해주고 있었다. 남극은 그런 곳이었다.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극명하게 알려주는 곳. 그래서 이들은 가만히 무릎을 꿇고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묵묵히 한 점을 찍고 있는 것인지도. 1m의 길이에 단 0.1mm의 점을 채워나가는 일에 하루하루 기쁨을 얻고 있는지도. 1km의 길이에 0.1mm는 얼마나 작은지. 0.1mm의 작은 점을 찍기 위해 묵묵히 탐구하고 기쁨을 느끼는. 그들이 채운 그 점은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지.

쌍둥이를 낳은 웨델 물범
웨델 물범의 소심한 경고

딱 그만큼 크고 그만큼 아름다워지는 남극의 여름이었다. 명의 위대함과 죽음의 긴장이 공존하는 남극에서 과학자들과 함께 나란히 걸으며, 인간의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빙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에 대해. 우주의 크기와 인간의 크기에 대해. 두 번째 남극의 여름을 통과한 후 내 몸은 조금 더 작아지고 낮아졌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워지고 싶어졌다. 내가 세 번째 몸으로 남극을 다시 가게 된 이유였다.

천운영
글 / 천운영

소설가, 1971년생

저서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 『생강』,
소설집 『바늘』 『명랑』 『그녀의 눈물사용법』 『엄마도 아시다시피』,
산문집 『돈키호테의 식탁』 『쓰고 달콤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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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02-24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