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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하는 주인공, R. 레베카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 『레베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레베카>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 『레베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레베카>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 『레베카』 VS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레베카>

SUMMARY

알프레도 히치콕의 <레베카>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
맨덜리 저택에서의 이야기
영화 <레베카> 속 맥거핀
『제인에어』 와의 비교
‘레베카’가 끊임없이 사랑받는 이유

알프레도 히치콕의 <레베카>

<레베카>는 우리에게 뮤지컬로 잘 알려져 있다. 뮤지컬의 인기와 함께 2020년 넷플릭스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사실 <레베카>는 이미 1950년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에 의해 영화화된 바 있다. 영국에서 데뷔한 알프레드 히치콕은 <레베카>로 할리우드에 진출한다. 셀즈닉 시대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셀즈닉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작한 데이비드 O. 셀즈닉을 지칭한다. 여러모로 보아, 알프레드 히치콕의 작가적 인장의 요소를 다수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막상 히치콕은 <레베카>를 그닥 흡족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할리우드 스탠다드에 맞추느라 원치 않았던 이야기 전개나 장면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 입장에서 보자면 <레베카>는 어쩔 수 없이 히치콕다운 히치콕의 작품임에 분명하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

<레베카>는 영국의 추리 작가인 대프니 듀 모리에의 1939년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소설 『레베카』는 1939년에 발표되어,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1939년 발간된 이후 판매 부수만 따져도 300만 부 이상이다. 대중의 인기를 토대로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라디오극, 뮤지컬 등 다양한 매체로 변주되기도 했다.

인기를 끌 수 있던 가장 큰 요인은 영국적 고딕 문학 전통의 현대화라고 할 수 있다. 성이나 저택을 배경으로 한 고딕 문학은 비밀에 싸인 음험함과 귀족적 미스테리의 아우라와 분위기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레베카』에는 맨덜리라는 저택이 등장하는데, 맨덜리 저택은 소설의 제목이자 부재하는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레베카와 기묘한 교호작용을 일으키며 에로틱하면서도 매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큰 몫을 한다.

부재하는 주인공, R. 레베카 부재하는 주인공, R. 레베카
주인공 <레베카>의 부재

『레베카』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부재하는 주인공, 레베카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두려움, 애정과 증오가 뒤섞인 에로틱하면서도 아이러니한 감정의 흐름들이다. 주인공인 ‘나’는 부유한 중년 여성의 말동무로 스페인의 유명 휴양지인 몬테 카를로 코트다쥐르 호텔에 머물고 있다. 그곳에 머물던 중 사교계의 유명인사로 알려진 맥시밀리언 드 윈터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워낙에도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드 윈터의 아내 레베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상류층 스캔들의 중심이 되어 버렸다. 중년 여성은 드 윈터에 대한 궁금증을 채우기 위해 접근하지만 막상 드 윈터는 중년의 귀부인이 아닌 그녀의 말동무 비서인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 어리고 순진한 데다 가난한 고아인 ‘나’는 그런 귀족적인 신분의 드 윈터의 호의가 어렵고 낯설다. 그는 신데렐라 같은 동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멀고 먼 신분의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며칠 간의 백일몽처럼 달콤했던 데이트 이후 드 윈터는 급작스러운 청혼을 한다. 말동무 소녀가 드 윈터 부인이 되게 된 것이다.

부재하는 주인공, R. 레베카
맨덜리 저택에서의 이야기

이후의 이야기는 ‘나’가 맥심 드 윈터와 함께 맨덜리 저택에 간 이후이다. 전처 레베카가 이미 사망하고 없는 집이었지만 맨덜리는 곳곳에 레베카의 흔적을 갖고 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화려하다 못해 탐욕스럽게 피어있는 정원의 꽃들은 수수한 ‘나’가 따라잡을 수 없는 레베카의 매혹을 상징한다. 오히려 레베카의 매혹은 사후에 신화와 전설이 되어 버린 듯하다. 그리고 그 신화의 뒤편에는 그녀의 곁에서 그 신화의 제물이 되기를 기꺼이 자청했던 댄버스의 그림자가 있다. 레베카의 전담 집사였던 댄버스는 새로운 드 윈터 부인인 ‘나’에게 결코 곁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점차 ‘나’의 불안과 조바심을 파고들어, 그녀로 하여금 이 집에 영원히 자리잡지 못하게 하려는 듯 히스테리를 조장한다.

영화 <레베카> 속 맥거핀

영화 <레베카>는 흐름상 1부와 2부로 나뉜다. 히치콕의 유명한 용어인 맥거핀처럼 1부에서는 온통 부재하는 그녀, 레베카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베갯잇, 종이, 애완견, 드레스 등 집안 곳곳에 남겨진 레베카의 흔적, 레베카의 대문자 R 이니셜은 레베카가 살아 있던 시절과 다르지 않다. 레베카의 애완견과 집사들이 그대로 있을 뿐만 아니라 맨들리 자체가 레베카의 흔적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서, 내선으로 걸려온 전화가 ‘드 윈터 부인’을 찾자, ‘나’가 “드 윈터 부인은 돌아가셨는데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매우 충격적이면서도 인상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새로운 드 윈터 부인이 자기 자신인데, 스스로를 부인으로 인지하고 호명하지 못하고, 죽은 레베카의 부재를 고백했으니 말이다.

‘나’가 그림 속, 죽은 레베카와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날 이후,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국면에 돌입한다. 완벽했던 레베카의 신화에 흠결이 보이기 시작하고, 댄버스의 존경이 사실상 집착에 불과하며 맥심이 보여주었던 신경증적 반응도 알고 보면 배신감과 증오의 표현이었음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1부가 레베카의 신화를 쌓는 과정이라면 2부는 사실과 검증, 수사와 의학의 차원에서 레베카의 숨은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 속에서 댄버스의 광적인 집착의 실체가 드러나고 맥심이 보여준 상실감의 근원도 이해된다.

『레베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주인공인 어린 신부, ‘나’의 이름이 처음부터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소설의 화자이기도 하지만 레베카의 이름이 수십 번도 더 호명되는 것과 달리 ‘나’는 누군가의 말동무, 드 윈터의 새 아내, 맨덜리의 새 안주인처럼 여러 대명사로 불릴 뿐 고유명사로 호명되지 않는다. 심지어 집도 이름을 가지고, 키우던 강아지 이름도 재스퍼라고 명기되어 있는데 말이다.

부재하는 주인공, R. 레베카
『제인에어』 와의 비교

한 번 결혼을 하고 상처를 입은 남자와 순수한 고아 여성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성, 저택과 같은 공간적 공통점에서 『레베카』는 『제인 에어』와 많이 비교되곤 하는 작품이다. 샬롯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는 빅토리아 시대엔 불가능했던 사회 경제적 계층의 장애물을 넘어선 사랑 이야기이다. 현실이라기보다 당시 실현되기 어려웠던 판타지에 더 가깝다. 무엇보다 『제인 에어』는 예상치 못했던 유산까지 물려받아 경제적 지위까지 확보한 제인 에어가 집과 아내, 건강도 잃어버린 로체스터를 구원해 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유령이 된 아내 레베카와 싸워 덧씌워진 이미지를 벗겨내 실체를 밝혀내는 게 ‘나’의 일이었다면 제인 에어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운명이나 시대적 굴레와 싸운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레베카』는 정신분석학적인 면이나 드러내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해냈다는 점 그리고 일종의 분리 불안을 히스테리컬하게 연출하는 댄버스라는 캐릭터를 통해 『제인 에어』 에서 보여주지 못한 현대적 의미의 서스펜스를 구현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레베카’가 끊임없이 사랑받는 이유

넘쳐나는 여성성을 제왕적 카리스마로 활용했던 레베카는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여성적인 질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남편의 질투로 인한 욕망의 사고로 연출함으로써, 욕망의 대상이자 정복할 수 없는 대상으로서 스스로의 신화를 완성하고 전설의 레베카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소설과 영화 ‘레베카’의 주인공은 우리에게 이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친절한 화자인 ‘나’가 아니라, 한 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그림자 속의 인물 레베카임에 분명하다. 우리가 ‘나’의 시선, 기록을 통해 그 세계에 들어가 엿볼 수 있지만 ‘나’가 안내하는 세계가 매혹적인 이유는 레베카라는 미지의 인물이 지닌 매혹과 수수께끼 덕분이다. 아름답고도 기이한 매력의 주인공, 레베카는 그런 점에서, 영화와 드라마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인물임 이 분명하다.

강유정
글 / 강유정

강남대 글로벌문화학부 교수, 1975년생

저서
『타인을 앓다』 『시네마토피아』 『영화글쓰기강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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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레베카> 스틸컷(출처 : United Artists Corportaion)
작성일
20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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