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지혜

파리의 밤, 물랭루즈

마르트의 블랑슈 광장에 도착하면 빨간 풍차 모양의 건물이 눈에 띕니다. 바로, 캉캉공연으로 유명한 카바레 <물랭루즈>인데요. 1899년 물랭루즈가 오픈한 이래로 늘 같은 자리에서 이곳의 풍경을 작품에 담은 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몽마르트의 화가 , 앙리 드 툴르즈 로트렉. 오늘은 로트렉에 대해 알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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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보석에서 장애인으로 1864년, 남프랑스 명문 귀족 가문의 맏아들로 태어난 로트렉. 그는 어릴 적 ‘작은 보석’이라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2살 때 의자에서 넘어지면서 왼쪽 다리가 부러졌고, 다음 해에는 산책 중 웅덩이에 빠져 오른쪽 다리가 부러지며 하체의 발육이 그만 멈추게 됩니다. 로트렉의 아버지는 장애인이 된 아들에게 크게 실망하고, 아들이 없는 것처럼 그를 무시합니다.

의사에서 화가로 때는 의사를 꿈꾼 로트렉. 장애로 인해 의사의 꿈을 접고 그는 화가의 길을 선택합니다. 화실의 학생들은 로트렉의 짧고 빈약한 다리와 큰 머리 그리고 부푼 입술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인간 답게 살 수 있는 길은 예술 뿐이라고 생각하며 그림에만 집중합니다.

몽마르트의 화가 1882년, 로트렉은 페르낭 코르몽이라는 화가의 화실에 들어갑니다. 화실로 가는 길이 몽마르트 언덕 근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몽마르트의 환락가를 배회하기 시작하는데요. 로트렉은 술집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환락가의 풍경을 작품에 담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로트렉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물랭루즈의 스타 1899년, 몽마르트의 새로운 댄스홀 ‘물랭루즈’가 문을 열었습니다. 이때 로트렉이 제작한 물랭루즈의 포스터가 아주 큰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파리 전체에 로트렉의 이름을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그는 이 후 계속해서 물랭루즈 작품을 발표하며 물랭루즈의 스타로 자리매김합니다. 하지만 지나친 음주로 인해 알코올 중독에 빠져 37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맙니다.

물랭루즈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
1889년 파리 몽마르트에서 오픈한 카바레로, 건물 옥상에 있는 빨간 풍차 장식 때문에 “물랭루즈”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파리 환락가의 왕자로 불리던 조제프 올레와 사업가 샤를 지들러가 함께 설립했으며, 당대 유명한 춤꾼인 라 굴뤼, 발랑탱의 공연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데요. 프렌치캉캉이라는 춤이 최초로 공연된 장소이며 커다란 치마를 입고 팔랑거리는 무용수들의 모습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로트렉의 작품과 동명의 영화, 뮤지컬 등으로 인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20세기 프랑스 최고의 가수 에디트 피아프, 이탈리아 출신의 가수이자 배우 이브 몽탕, 1940년대 미국 프랭크 시나트라 등 대형 음악가들이 공연한 역사적인 공연장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샴페인 또는 식사와 함께 캉캉 공연을 즐기는 관광명소로 수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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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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