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지혜

파리의 영혼, 노트르담 대성당

파리 시민들에게 특별한 존재인 노트르담 대성당은
유명한 화가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클로드 모네, 에드워드 호퍼, 파블로 피카소 등
내로라하는 화가들이 각자 개성 넘치는 화풍으로 노트르담 성당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이처럼 노트르담 대성당이 등장하는 수많은 그림 중 유독 눈길을 끄는 2개의 작품이 있습니다.
색채나 형태가 서로 완전히 달라 보이지만, 놀랍게도 이 두 작품을 그린 화가는 동일 인물입니다.

과연 그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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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가 화가가 된 이유 률사무소의 보조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던 마티스는 충수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병실에서 어머니가 가져다 준 미술 도구로 그림을 그리다가 그림에 푹 빠진 마티스는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죠.

생 미셸 19번지 술의 도시 파리로 간 마티스는 창 밖으로 센 강과 노트르담 대성당이 내려다 보이는 생 미셸 19번지 아파트에 작업실을 얻습니다. 처음에는 사립 미술학교에 입학하지만 전통적인 교육 방식에 답답함을 느껴 금방 나오게 돼요. 이후 스승 구스타프 모로를 만나 다양한 화풍의 작품을 접하게 됩니다.

두 개의 노트르담 대성당

티스는 선배들의 그림을 연구하며 자신의 화풍을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1900년에 그린 작품을 살펴보면 다채로운 색상이 인상주의를 연상시키지만, 1914년에 그린 작품에선 형태와 색상을 단순화해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는 야수파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요.

색종이를 자르는 화가 러한 마티스의 작품에 대한 열정은 말년에도 식지 않았습니다. 1940년 대장암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붓과 물감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목탄이나 연필을 이용해 삽화를 그렸으며, 색종이를 가위로 잘라 캔버스에 붙이는 작품을 선보였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 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 최고의 고딕 건축물로 잔다르크의 명예 회복 재판, 나폴레옹의 황제 대관식, 미테랑 대통령의 장례식 등 파리의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입니다.

1163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80여 년에 걸쳐 완공되었는데, 프랑스 혁명 으로 건물이 심하게 훼손되면서 한때는 철거 위기에 처하기도 했죠.

하지만 빅토르 위고의 작품 <노트르담 드 파리>로 관심을 받게 되었고, 1845년 복원 작업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시테섬은 센 강의 중심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기원 전 3세기 경 켈트 족 중 하나인 파리시 족이 이곳에 터전을 잡으면서 도시가 형성되었어요. ‘파리’라는 명칭이 여기서 유래된 것으로 시테섬은 파리의 발원지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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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04-29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