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해변에 앉아있는 한 여인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있다.
앞으로는 꽃줄기가, 뒤로는 화환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고
맨 위에는 ‘모나코 몬테 카를로’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이 묘한 그림을 그린 작가는 체코 출신의 장식 예술가이자
아르누보 양식을 대표하는 화가, 알폰스 무하.
일반 회화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이 그림은 과연 어떤 목적으로 제작된 작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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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파리, 당시 프랑스 최고의 배우 사라 베르나르는 자신이 출연하는 연극 <지스몽다>의 포스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에 인쇄소에 직접 전화해 포스터를 새로 제작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때가 하필 연말 휴가 기간이었기 때문에 인쇄소 소속의 화가들은 모두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업실을 찾아간 인쇄소 매니저는 혼자서 인쇄물을 살펴보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는데, 그가 바로 체코 출신의 삽화가 알폰스 무하였다. 오스트리아 빈의 극장에서 무대 미술을 배우고, 독일 뮌헨의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그는 27세에 예술의 도시 파리에 입성했고, 그로부터 7년간 책이나 잡지에 삽화를 그리면서 점차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 휴가를 떠난 친구의 부탁으로 작업실에서 인쇄물을 점검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대안이 없었던 인쇄소 매니저는 어쩔 수 없이 알폰스 무하에게 포스터 작업을 의뢰했고, 이를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알폰스 무하는 바로 승낙한다. 그는 곧바로 인쇄소 매니저와 함께 사라 베르나르를 찾아가 스케치를 했고, 작업실로 돌아와 4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혼신을 다해 포스터 작업에 전념한다. 12월 30일, 알폰스 무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자신이 작업한 포스터를 인쇄소에 가져가는데, 세로로 길쭉한 모양에 배우를 둘러싼 화려한 문양 등 기존의 포스터와는 전혀 다른 형태였다. 프랑스 국민 배우 사라 베르나르는 이 새로운 스타일의 포스터를 매우 마음에 들어 했고, 이후 연극 포스터는 물론 무대 의상 디자인까지 알폰스 무하에게 맡긴다. 새해 첫날이 되자 무하의 포스터는 파리 시내 거리 곳곳에 걸리게 되었고, 파리 시민들 역시 이 혁신적인 포스터에 열광한다.
이처럼 세로로 긴 모양에 곡선으로 얽힌 패턴은 ‘무하 스타일’로 불리게 되었고, 알폰스 무하는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장식 예술가로 떠오른다. 그러자 비스킷, 주류, 여행 등 다양한 분야의 회사들이 그에게 포스터 제작을 의뢰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에 탄생한 작품이 <모나코 몬테 카를로> 광고 포스터다. 모나코는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국가로,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휴양지인데, 몬테 카를로는 모나코 북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특히 카지노가 유명한 곳이었다. 당시 한 철도회사에서 파리에서 모나코까지 가는 16시간짜리 고급 열차 여행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이 상품을 홍보하기 위한 포스터를 알폰스 무하에게 의뢰했던 것이다.
광고 포스터를 의뢰 받은 알폰스 무하는 모나코의 풍경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대신 행복한 표정으로 해변에 앉아있는 한 여인과 기차의 선로를 연상시키는 꽃줄기와 화환을 통해 관광의 즐거움을 표현했다. 여인의 얼굴 오른쪽에는 몬테 카를로의 카지노를 아주 작게 그려 넣기도 했다. 알폰스 무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눈길은 끈 뒤에 자연스럽게 모나코의 풍경을 감상하도록 포스터를 제작한 것이다. 이처럼 그는 ‘무하 스타일’로 큰 성공을 거두지만 50세가 되던 해 파리를 떠나 조국을 위한 예술을 하고자 체코로 돌아가 슬라브족의 역사를 담은 <슬라브 서사시> 제작에 전념한다. 1918년, 그의 바람대로 체코는 독립을 하지만 20년 후 독일 나치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고, 민족주의자였던 알폰스 무하는 체포되어 심문을 받는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알폰스 무하는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