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베들레헴의 인구조사>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와 남편 요셉이 로마 황제의 인구조사에 응하기 위해
베들레헴을 방문한 모습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그런데 그림 속 베들레헴의 풍경이 뭔가 이상하다.
유럽풍 건물에 눈이 소복히 쌓인 풍경이 중동 지역에 위치한
베들레헴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왜 베들레헴의 겨울 풍경을 실제와는 다른 모습으로 표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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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1년, 플랑드르 지방에 위치한 안트베르펜에서 한 젊은 화가가 성 루가 화가 길드에 등록한다. 그가 바로 16세기 플랑드르의 대표적인 화가, 피테르 브뢰헬이다. 그는 궁정화가인 피테르 쿠케 반 알스트의 제자였는데, 훗날 스승인 쿠케의 딸과 결혼하며 제자에서 사위로 인연을 이어갔다. 그리고 친가와 외가로부터 예술가의 재능을 물려받은 브뢰헬의 두 아들도 모두 화가로 활동한다. 브뢰헬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활동했던 안트베르펜이란 지역을 살펴봐야 한다. 16세기, 무역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북해로 옮겨가자 북해와 가까운 안트베르펜이 주목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해 상업이 번성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문인과 예술가, 학자들이 모여들었다.
이 무렵 출판업자이자 판화가였던 히에로니무스 코크의 공방이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사교장 역할을 하게 된다. 화가로 데뷔한 브뢰헬 역시 코크의 공방을 자주 방문했고, 각 분야 명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견문을 넓혔다. 그때 브뢰헬의 그림 솜씨를 눈여겨 본 사람이 바로 공방의 주인인 히에로니무스 코크였다. 코크는 브뢰헬에게 판화의 밑그림 작업을 맡겼고, 이를 바탕으로 제작한 판화 작품들이 좋은 반응을 얻는다. 하지만 브뢰헬은 판화의 밑그림 작업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풍경을 세밀하게 담고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당시 세태를 풍자했으니,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베들레헴의 인구조사>였다.
브뢰헬은 <베들레헴의 인구조사>라는 작품의 제목과는 달리 베들레헴이 아닌 벨기에 안트베르펜 지역의 겨울 풍경을 그림에 담았다. 안트베르펜은 벨기에 제2의 도시로, 수도인 브뤼셀에서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져있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이 쌓인 광장과 얼어붙은 강 위에서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안트베르펜은 ‘소빙하기’로 인해 1250년 이래 가장 추운 겨울을 겪었다. 극심한 추위로 대부분의 운하와 호수는 얼어붙었고, 수확량이 줄어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난방을 하기 어려웠던 가난한 사람들이 좁고 추운 집에서 나와 야외에서 시간을 보냈던 서글픈 진실을 그림에 담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의 원래 주인공인 마리아와 요셉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작품의 중앙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당나귀를 타고 있는 마리아와 그 앞에서 걸어가는 요셉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데, 이는 성경의 내용을 충실히 표현하기보다는 현실을 풍자하려는 의도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즉, 빙하기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주민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여하는 합스부르크 가문을 비판한 것이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1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중부 유럽의 패권을 장악했는데, 이 무렵 카를로스 5세가 플랑드르 지역에 막대한 세금을 요구해 안트베르펜 시민들이 큰 고통을 겪었다. 브뢰헬은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풍경화를 통해 16세기 최고의 플랑드르 화가로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3년 후에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만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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