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말을 탄 사내가 거대한 스핑크스를 당당히 마주보고 있는 그림이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스핑크스 앞의 보나파르트>.
그림 속 사내의 정체는 다름 아닌 프랑스의 전쟁 영웅, 나폴레옹이다.
이 그림을 그린 작가는 프랑스 출신의 신고전주의 화가 장 레옹 제롬.
그런데, 나폴레옹은 왜 이집트의 스핑크스 앞에 서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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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5월, 프랑스 툴룽 항구에 수백 대의 배들이 모여들었다. 프랑스군이 이집트로 원정을 떠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랑스는 왜 느닷없이 이집트를 정복하려고 했던 것일까? 겉으로는 고통 받는 이집트 민중을 해방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속내는 이와 달랐다. 실상은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통로에 위치한 이집트를 정복해 라이벌 영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게다가 당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젊은 장군 나폴레옹을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정부의 흑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5만의 군대와 함께 이집트로 출발했다.
나폴레옹과 그의 군은 2개월이 지난 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항구에 상륙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는 예상과 달리 이미 몰락한 도시였고, 이에 실망한 프랑스군은 곧바로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를 향해 진군한다. 나폴레옹은 카이로 근교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맘루크군과 전투를 벌인 끝에 큰 승리를 거두게 되는데,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가 멀리 보이는 곳에서 치뤄진 이 전투를 사람들은 ‘피라미드 전투’라고 부른다. 이렇게 전투에서 승리한 나폴레옹은 프랑스 군대와 함께 카이로에 당당히 입성한다. 그리고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둘러보며 승리를 만끽한다. 하지만 이후 폭동과 전염병으로 인해 프랑스는 수많은 병사를 잃게 되고, 결국 위기에 빠진 나폴레옹이 몰래 이집트를 탈출하면서 성대했던 이집트 원정은 초라하게 막을 내린다.
그로부터 25년 후, 프랑스의 화가 장 레옹 제롬이 프랑스 동부에 위치한 브줄에서 태어난다. 금세공사였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일을 물려받길 원했지만 제롬은 역사화가인 폴 들라로슈의 제자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운다. 그리고 스승과 함께 이탈리아, 그리스 등의 유적지를 여행하며 고대 문화에 깊은 감명을 받은 제롬은 1847년 살롱전에 <닭싸움에 참가하는 젊은 그리스인들>이라는 작품을 출품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후 동방의 이국적인 풍경에 매료된 제롬은 터키와 그리스, 이집트 등을 여행하며 더 많은 작품을 그린다. 이국적인 배경에 고전적인 스타일이 특징인 그의 작품은 큰 사랑을 받으며 최고의 화가로 거듭난다. 전성기를 맞이한 제롬은 이집트를 여행하던 중 90년 전 이집트 원정을 떠난 나폴레옹의 모습을 떠올렸고, 당시 그렸던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스핑크스 앞의 보나파르트>였다. 제롬은 이 작품에서 나폴레옹을 ‘거대한 스핑크스를 당당하게 맞선 영웅’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제롬의 이름을 오늘날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이는 그가 활동했던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인상파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고전에 충실했던 제롬은 새롭고 파격적인 인상주의 작품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로 인해 그의 말년은 인상파와의 싸움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인상파는 새로운 회화의 시대를 열였고,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제롬은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말았다.
이미지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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