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책을 읽다

굴과 목욕탕 사이의 상관관계

다큐 책을 읽다 : 굴과 목욕탕 사이의 상관관계 다큐 책을 읽다 : 굴과 목욕탕 사이의 상관관계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존속하며 가장 위대했던 제국으로 불리는
고대 로마제국의 황제 위테리아스는 굴을 너무나도 좋아해
자신은 한 번에 1천 개의 굴을 먹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을 정도였다.

이렇게 고대 로마인의 식탁에 올랐던 여러 음식 가운데서도
특히나 상류층의 사랑을 받았던 굴.
이 굴 덕분에 로마 제국의 새로운 역사가 쓰였다는데, 대체 무슨 사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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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발전의 원동력은 굴이었다?

로마 제국 발전의 원동력은 굴이었다? 로마 제국 발전의 원동력은 굴이었다?

특명! 신선한 굴을 로마로 옮겨라

로마인들은 특히 오늘날의 영국, 즉 브리타니아의 굴을 최고로 꼽았다. 기원전 50년경, 로마의 통치자 시저가 템즈강에서 나오는 양질의 굴을 확보하기 위해 영국 정벌에 나섰을 정도다. 하지만 영국 땅에서 로마까지는 무려 1,500km가 넘는 먼 거리였다. 마차로 언덕을 넘고 강을 건너도 꼬박 50일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생굴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운송업과 냉장기술의 발전이 시작됐고 이 덕분에 로마 귀족들은 연회 때마다 영국의 굴을 무사히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수요를 맞추기엔 굴의 조달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를 해결한 방법은 바로 인류 최초 굴 양식장의 등장이었다. 기술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굴 양식업을 시작한 사업가 오라타는 수온이 낮아지는 겨울에도 양식장에 따뜻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난방 시스템을 개발했고,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공중목욕탕까지 건설한다.

굴에서 시작된 대중 목욕탕의 역사

인류 역사상 최초로 목욕탕이 등장한 것은 로마시대였다. 특히 목욕탕 근처에서 굴 껍데기가 대량 발견되곤 했는데, 이는 목욕을 한 뒤 생굴을 먹는 것이 당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로마 제국의 목욕탕은 공연시설에 도서관까지 겸비한 초대형 여가시설이자, 신분과 관계 없이 누구나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편의시설이었다. 때문에 목욕탕은 로마 제국의 현제로 유명한 하드리아누스를 비롯한 로마의 황제들이 대중과 함께 목욕을 즐기며 그들의 마음을 얻고자 했던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공중목욕탕이 황제들의 지혜와 미담의 장이기도 했던 것이다. 로마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이처럼 백성들의 생활 곳곳을 살피며 그들의 마음을 얻고자 했던 황제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의 끝없는 영토 확장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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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에게 전쟁은 곧 생존의 문제

우리나라의 경우 예나 지금이나 신토불이를 강조하는 것과 달리 로마의 식탁은 이미 2천 년 전부터 거의 모든 식재료를 외국에서 들여왔다. 식탁에 오르는 거의 모든 식재료를 외국에 의존하며 일찌감치 식탁의 세계화를 실현한 것이다. 주식인 빵부터 향신료를 비롯한 식재료를 얻기 위해 로마인들이 택한 방법은 바로 전쟁이었다. 로마 제국은 4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전쟁과 탐험을 계속했고, 국가의 운명과 목숨을 걸고 자원 확보를 위해 온 힘을 다해 싸웠다. 그리고 그 승리의 결과로 다양한 식재료를 얻을 수 있었다. 식량 확보를 위한 영토의 확장과 함께 로마 제국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가는 곳마다 직선으로 된 길을 만들었다. 3세기 말, 로마가 닦은 길의 전체 길이는 무려 8만 5천 킬로미터에 달했다. 잘 닦인 로마가도는 지중해를 비롯한 여러 유럽 도시를 연결했고, 그 길을 따라 밀, 와인, 올리브, 생선, 젓갈, 향신료 등 다양한 식품이 운송될 수 있었다.

1229년의 시간을 버텨낸 로마 제국

하지만 전적으로 먹거리를 수입에 의존했던 로마인들에겐 외부로부터의 식량공급이 끊기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운송이나 작황의 문제가 생기면 먹을 것이 없거나 주식인 빵 값이 한없이 치솟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긴 것이 공공복지 배급제도인 ‘큐라 아노나(Cura Annona)’였다. 로마 제국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식량을 나눠주는 대대적인 복지정책으로 대중의 마음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큐라 아노나는 훗날 포퓰리즘의 전모로 변질되며 급격한 재정 악화를 불러오기도 했지만 로마 제국의 쇠퇴 전까지 빈민들의 식탁을 책임지고 제국의 존속을 도왔다. 로마제국이 문명의 발달을 거듭하며 버텨낸 시간은 무려 1229년. 그 오랜 역사를 돌아보면 중심엔 늘 ‘음식’이 있었다. 로마인이 먹던 음식은 기술의 혁신으로 이어지는가 하면, 새로운 발전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식탁에 오르는 음식들이 한 나라의 번영을 책임질 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 식탁에서도 역사의 한 부분이 쓰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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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음식으로 읽는 로마사> 윤덕노 저 / 더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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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01-13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