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대 영화

인간의 눈, 개의 마음

 원작 대 영화 : 인간의 눈, 개의 마음 원작 대 영화 : 인간의 눈, 개의 마음

인간이 개의 마음을 다 알 수 있을까. 오랜 시간 인간에 의해 길들여졌고, 인간과 살면서 교류하고, 인간의 질서 속에 깊이 들어와 버렸고, 때론 애처로울 정도로 인간에게 의지하는 존재. 지킴이나 애완이 아닌 ‘반려’가 될 만큼 인간과 동등한 위치에 오른, 그런 만큼 그 마음까지도 모두 인간에게 들켜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 아닐까. 인간이 아닌 개의 마음으로 본다고 해도 그것이 정말 개의 마음일까.

3년 전부터 함께 사는 백구(진돗개) 동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득하다.
동이는 뒷산 언덕에 앉아 이따금 코를 들고는
먼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
이 개가 맡는 냄새는 무엇이며,
그 냄새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보스턴 테란의 장편소설『어떤 강아지의 시간』에서
‘기브’란 개는 그 바람에서 태고의 숨결을 느꼈다.
나른한 봄날 오후, 턱을 땅에 댄 채 엎드려 물끄러미 먼 산을 바라보는 백구의 깊은 눈동자, 사진에서 본 죽음을 기다리며 도살장의 철장에 갇힌 개의 멍한 눈동자, 누군가에게서 버림받아 들판을 떠도는 유기견의 붉게 충혈된 눈빛을 누가 다 안다고 할 텐가. 수만 년 전부터 인간의 발자국 옆에 늘 그들의 발자국도 있었기에 다만 짐작만 할 뿐이다. 그것도 인간의 언어와 법칙으로.
원작 대 영화 : 인간의 눈, 개의 마음

개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인간의 이야기이다. 사람은 개가 될 수 없고, 개의 마음에 도달할 수도 없다. 철학자 셸리 케이건이 『어떻게 동물을 헤아릴 것인가』에서 말하는 개를 인간과 동등한 지위에 올려놓는 ‘단일주의’를 가지고 있다고 그 거리가 더 가까운 것도, 반대로 차별을 인정하는 ‘계층주의’를 고집한다고 더 멀어지는 것도 아니다.

인간만큼이나 개들에게도 그들의 역사가 있고, 유산이 있고, 선조들이 남긴 숨결과 피가 있다. 그 핏속에 흐르는 아직도 남아있는 그 유산을 잭 런던의 소설 『야성의 부름』은 만나고 싶어 했다. 아니 지어낸 이야기로라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그것이 부질없고, 어쩌면 너무나 멀리 떠나와 이제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숙명이 되었다 해도.

『야성의 부름』은 세상에 나온 무수히 많은 개 이야기와는 다르다. 이 소설에서 개는 개의 모습을 한 사람이 아니다. 인간의 의식과 감정, 경험으로 빚어놓은 ‘개다운 개’도 아니다.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말한 것처럼 길들여져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 인간의 감정 속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끝나는 개도 아니다. 한 마리 개로 태고의 ‘나’를 찾아 떠나는 개다.

그 아득한 시공간에 도달하기까지, 자신의 핏속에 흐르는 본성으로 돌아가기까지 벅(개 이름)은 혹독한 시련과 위기를 겪는다. 그 시련은 조상 대대로 그리고 자신이 길들여져 인간세계에 머문 업보, 인간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요된 또 다른 운명의 산물이다. 세인트버나드와 스코틀랜드산 셰퍼드 사이에서 태어난 덩치 크고 강인한 벅은 인간과 살지만 인간의 언어를 모른다. 신문을 읽지 않았고, 미국 남부 산타클라라에 있는 판사의 대저택에서 대장 개 노릇이나 하며 편하게 지냈으니 그것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원작 대 영화 : 인간의 눈, 개의 마음 원작 대 영화 : 인간의 눈, 개의 마음

개는 개다. 개에게는 개의 마음이 있고, 언어가 있을 것이다. 아주 일부분을 제외하면 인간은 개의 언어를 모른다. 결국 인간의 언어로 인간의 언어 밖에 있는 개의 언어까지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마치 개가 인간의 언어를 개의 언어로 해석하고 이해하듯. 『야성의 부름』도 마찬가지다. 다만 다른 소설과 다르다면 인간의 눈과 마음으로 벅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에게 인간의 감정을 덧씌우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야성의 부름』은 덜 ‘반려적’이고, 개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산타클라라의 저택에서 살다 하루아침에 알래스카로 끌려와 우편배달 썰매를 끌게 된 벅의 여정을 그의 관점으로 서술한다. 끌려가지 않기 위해 반항하다 몽둥이로 호되게 얻어맞고, 영화 50도의 혹한의 설원을 숨이 넘어가도록 달리고, 대장 썰매개인 스피츠를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벅은 원시 세계의 생존법칙을 배운다. 적자생존을 위해 몽둥이를 든 인간에 복종하고, 혹독한 자연에 재빨리 적응하고, ‘공명정대한 싸움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일단 쓰러지면 삶은 끝’이란 생각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는다.

그런 시간을 통해 벅은 안락하고 평화로운, 불과 지붕이 있는 인간의 문명세계가 아닌 ‘먼 조상들에 대한 기억과 삶’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어떤 음식이든 먹어치우고, 바람 냄새로 날씨를 예측하고, 늑대의 울부짖음이 몸속에 파도처럼 흘러드는 것은 인간 세상에서의 경험이 아닌 원시시대의 본능이었다. 황금을 찾아 북극지방으로 몰려온 인간들의 이글거리는 욕망과 반대로 벅에게는 야생으로의 회귀에 대한 욕망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가장 무자비한 인간, 가장 혹독한 환경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벅은 그날이 올 때까지 살아남기 위해 따뜻한 남쪽의 기억을 지워버렸고, 복종과 헌신할 때를 알았고, 야성과 교활함을 잃지 않았다. 우편배달부인 페로와 프랑수와를 거쳐 무식하고 잔인한 찰스와 핼, 마침내 죽음 직전에 자신을 구해준 오두막의 주인 존 손톤이 주인이 될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았다. 언제 인간과의 끈을 잘라야 하는지도 알았다. 존이 이하트족 인디언들에 의해 죽자 복수를 하고는 자신을 부르는 야성의 소리를 따라 미지의 땅으로 들어가 그들(늑대)의 우두머리가 된다.

『야성의 부름』은 잭 런던이 알래스카에 금을 찾으러 갔던 경험을 바탕으로 했지만 실화는 아니다. 지어낸 전설일 뿐이다. 누구도 벅의 존재를 모른다. 그러나 그 전설은 인간과 개의 관계, 개와 개의 관계, 개와 야생의 관계를 냉혹하면서도 뜨겁게 드러내 주고 있다. 뒤집어 보면 개의 눈으로 인간 사회와 문명이 잃어버린 것들, 인간에 의해 도구화되어버린 것을 마주하게 한다. 거기에서 가장 원초적인 생명의 소리가 들린다. 저 멀리 허공을 응시하는 백구 동이의 깊은 눈빛도 그것을 갈구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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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벅을 무심히 야생으로 보냈다. 영화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렇게 하기 전에 인간과의 가슴 뭉클한 교감이 있어야 하고, 애틋한 사연을 남겨야 한다. <콜 오브 와일드>(감독 크리스 샌더스)도 과감하게 원작을 변형하면서 그런 선택을 했다. 벅을 비롯해 영화에 나오는 개들을 모션 캡처와 컴퓨터그래픽 합성으로 만들어냈듯이, 동물이 주인공인 영화는 찍기도 힘들지만 어렵게 찍더라도 쉽게 대중적 사랑을 받기 어렵다. 특히 어른들에게는.

그래서 벅을 말썽꾸러기 캐릭터로 바꾸었고, 혹독한 상황에서의 고통과 깨달음, 적응 과정은 압축하고 대신 썰매개가 되어 눈사태를 피하는 뛰어난 능력, 목마르고 배고픈 동료 개들에 대한 배려, 노인인 존 손톤(해리슨 포드 분)과의 신뢰와 교감으로 감동을 유도했다. 그것을 위해 일찌감치 알래스카에 도착하자마자 존 손톤이 떨어뜨린 하모니카를 물어서 찾아주는 것으로 둘의 만남과 운명을 맺어주었다. 존에게 가슴 아픈 사연(아들의 죽음)은 벅과의 교감을 깊게 하고, 그 시간을 길게 했다. 존 손톤을 끝까지 살려 벅과의 마지막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도록 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위한,
‘가장 인간다운 개’인 이런 설정을 탓할 수 없다.
비록 야생으로 떠나더라도
그 개는 사람의 이야기 속에 있어야 하고,
사람과 함께 한 감동의 시간을 가져야 하고,
사람의 기억에 남을 휴머니즘을 남겨야 한다.

벅은 해마다 여름이면 계곡을 내려와
불탄 오두막을 보고 친절했던 손길과 옛 주인을 추억해야 한다.
영화의 운명이자, 소설과 영화로 만나는 개의 운명이기도 하다.

이대현_영화평론가. 1959년생저서 『15세 소년, 영화를 만나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내가 문화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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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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