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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여인 마리 침머만은 18살에 클림트의 모델이 되었고 두 아이를 낳았는데, 둘째 아들은 한 살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를 그린 그림을 보면 해골과 함께 죽음의 그림자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실 수 있는데, 원래 처음에는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였지만 아이의 죽음 이후 클림트는 불안과 절망에 빠진 그녀를 표현하며 그림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황금빛 그림의 주인공 아델레입니다. 1881년 부유한 금융업자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18살이나 많은 유대계 부호인 페르디난트 블로흐와 결혼합니다. 당시 빈의 스타 화가로 떠오른 클림트와 컬렉터와 화가로 인연을 맺죠. 둘 사이에 특별한 관계의 징후가 나타난 것은 클림트가 그녀의 초상을 주문 받으면서인데, 클림트가 수많은 초상화를 그렸지만 같은 모델로 두 번 연속 그린 것은 아델레가 유일하다는 사실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클림트에게 최고의 사랑의 대상은 누구일까요? 1918년 뇌출혈로 쓰러진 클림트가 애타게 찾았던 사람은 에밀리 플뢰게입니다. “모든 예술은 에로틱하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에밀리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녀에게는 정말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뿐이었다.”라고 그는 얘기합니다. 공식적인 결혼을 하지 않고 무려 14명의 사생아를 낳은 클림트이지만, 그의 영원한 뮤즈는 플라토닉 사랑의 대상이었나 봅니다.
나이가 들면서 클림트는 화가로서 더 올라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직감합니다. 아버지처럼 50대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고 있던 클림트는 점점 삶과 죽음에 대한 주제에 집착하죠. 1912년 이후 작품들은 <처녀>, <죽음과 삶>과 같이 삶의 각 단계를 철학적인 시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마직막 그림 <신부>를 위해 무려 140장 이상의 스케치를 그리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성과 사랑, 죽음에 대한 알레고리로 많은 사람을 매혹시킨 상징주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많은 연인들이 그의 <키스>를 보러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천재 화가에게 보여주는 사랑의 표현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