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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19세기 사진기의 발명은 화가들의 밥줄을 위협했습니다. 사실적인 초상화와 역사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사진만큼 빠르고 간편하게 대상을 재현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위기는 새로운 창작의 기회를 낳았으니, 바로 인상주의 화풍입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사진이 결코 포착할 수 없는 자연의 순간적인 움직임을 그려내기 시작했습니다. 바람, 물, 증기, 구름 등 당시 흑백 사진이 재현할 수 없었던 자연의 생생한 색감을 즉흥적인 붓터치로 담았던 것이죠.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자연을 관찰하고 그리기 위해 화가들은 실내 아뜰리에를 벗어나 야외로 나갔습니다.
미술 도구의 발전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전에는 광물, 동식물에서 추출한 재료로 직접 제조한 물감을 돼지 방광으로 만든 작은 주머니에 하나씩 넣어 사용했었죠. 필요할 때 바늘로 구멍을 내어 사용했는데, 한 번 구멍을 낸 돼지 방광 주머니는 물감이 흘러내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뚜껑이 있는 튜브물감이 휴대성, 편리성을 높여주었죠. 게다가 접이식 이젤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야외 작업을 자유롭게 해주었고, 평붓은 빠른 붓질을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모네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과 그 색을 만드는 빛에 몰입합니다. “색은 하루 종일 나를 집착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그리고 고통스럽게 한다.”라고 애기했죠. 지베르니로 이사한 후에 그는 무려 3년 동안 건초더미를 그립니다. 들판에 쌓아놓은 흔한 건초더미, 그 위에 내려앉은 빛의 흐름은 모네에게 경이의 대상이었습니다. 새벽의 서늘하고 푸르스름함, 늦은 오후의 따스함, 저녁 노을의 화려함은 모네의 눈과 손을 통해 화폭에 빛으로 구현됩니다.
모네의 건초더미 그림을 보면 그저 황갈색뿐이었던 들판이 수십, 수백가지 색깔로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색에 대한 고정관념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죠. 실제로 건초더미 연작은 전시되기 전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판매에도 큰 성공을 거두면서 모네는 긴 시간 궁핍했던 생활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경제적 안정을 찾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