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재생이 안 될 경우FAQ > 멀티미디어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인상주의라는 말은 원래 욕이었을까요? 칭찬이었을까요? 정답은 욕이 맞습니다. 인상주의의 대표 화가 클로드 모네는 젊어서부터 욕을 엄청 먹은 화가라고 할 수 있죠. 19세기 프랑스 미술은 살롱(Salon)이라는 전시를 통해 화가가 데뷔하고, 인정을 받는 구조였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살롱 전시는 가장 대표적인 미술 오디션 프로그램이었고, 미술계의 등용문이었던 셈이죠.
20대 청년 화가 모네도 살롱 전시에 착품 <정원의 여인들>을 출품합니다. 그런데 출품 자체를 거부당하죠. 모네의 그림은 당시 비평가와 대중이 선호하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서양 미술사가 500년 넘게 고수해 온 아름다운 여신의 황금 비율, 완벽한 명암법과 원근법 등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동네 여자들이 등장하고 투박한 붓질로 그려진 모네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전혀 아름답지 않은, 대충 그린 미완성 착픔으로 여겨졌습니다.
살롱전에서 떨어진 모네는 절망은 커녕 더 파격적인 작품으로 응수합니다. 속도감 있는 붓질과 강렬한 색감의 <인상, 해돋이>는 신화, 성서, 역사 속 장면을 아는대로 그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내가 눈으로 본 것을 보이는대로 그리는 모네의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모네는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는 르누아르 등 다른 신세대 작가들과 함께, 살롱전이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시켜 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직접 전시회를 개최하자는데 뜻을 같이 합니다. 그 결과로 ‘제1회 무명예술가협회전’이 열리게 됩니다.
이 전시는 오픈하자마자 엄청나게 유명해집니다. 칭찬이 아니라 평론가들의 악평 때문이었죠. 사람들은 전시회의 작품을 보고 “너무 인상적이야”, “기본도 갖추지 못한 아마추어들의 미완성품”이라며 비꼬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비아냥거리던 ‘인상적이야…’ 라는 평가로 인해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Impressionism(인상주의 회화)’의 이름이 탄생합니다. 비평가들의 비난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승화시킨 모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