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 최초로 서양에 영향을 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는 <황야의 7인>등으로 리메이크 될 정도로 유명세를 탄 영화입니다. 우리는 사무라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어떤 이들이었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사무라이는 누구였으며, 어떤 존재들이었을까요?
동영상 Play 안 될 경우 FAQ > 멀티미디어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중세 시대 일본에서 귀족은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는 수조권이 있었습니다. 귀족은 접근성이 좋은 지역에는 세금을 쉽게 거둬들일 수 있었지만, 지형이 험한 곳 같은 경우에는 세금을 거두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귀족들은 사무라이들에게 지시를 내려 대신 세금을 거둘 수 있도록 했고, 그 대가로 거둬 온 세금의 일부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칭키츠칸의 정벌에 맞선 방어 전쟁에서 사무라이가 활약 하면서, 귀족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게 됩니다.
다이묘의 증가, 그리고 낭인이전의 중앙집권 방식에서 권력을 가졌던 귀족들은 힘을 잃고, 대신 각 지방의 다이묘들이 권력을 갖게 되었고 사무라이들도 이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됩니다. 다이묘들은 서로와 싸웠고, 패배한 다이묘 아래에 있던 사무라이들은 낭인이 되어 떠도는 처지가 되곤 했습니다. <7인의 사무라이>에 나오는 사무라이들도 돈이 필요했던, 이러한 낭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사무라이의 역사중앙집권 방식을 다시 도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다이묘 중 하나였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시스템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 사회 계급을 나누게 됩니다. 평민은 사무라이가 되지 못하도록 하여, 사무라이의 숫자를 조절했습니다. 또한 사무라이는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고, 대신 칼 두개를 소지할 수 있었습니다. 양반 계급으로 살게 된 사무라이들은 그 후 근대기에 개항 이후 메이지 유신으로 징병제가 도입되는 등 사회의 변화로 인해 몰락하게 됩니다.
소셜 댓글
SNS 로그인후 댓글을 작성하시면 해당 SNS와 동시에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완료
신청 완료 되었습니다.
서비스 이용안내
eBook & 영상콘텐츠 서비스는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 사이트 회원중 ‘교보생명 계약고객’ 전용 서비스입니다.
계약고객이신 경우 로그인하시면 본 콘텐츠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아직 계약고객으로 인증하지 않은 고객님은 로그인 후 개인정보관리 페이지에서 계약고객으로 인증하시면 바로 콘텐츠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비스 이용안내
eBook & 영상콘텐츠 서비스는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 사이트 회원중‘교보생명 계약고객’ 전용 서비스입니다.
‘교보생명 계약고객 인증고객이 로그인’을 하시면 eBook & 영상콘텐츠 를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교보생명 계약고객 인증은 개인정보 관리 메뉴에서 받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