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말하다

[위트만발 영화 속 인문학] 7인의 사무라이

최진기의 추억 속 영화와 위트만발 인문학의 만남 4강 : 7인의 사무라이 최진기의 추억 속 영화와 위트만발 인문학의 만남 4강 : 7인의 사무라이
사무라이는 어떤 존재들이었을까? <7인의 사무라이>

아시아인 최초로 서양에 영향을 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는 <황야의 7인>등으로 리메이크 될 정도로 유명세를 탄 영화입니다. 우리는 사무라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어떤 이들이었는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사무라이는 누구였으며, 어떤 존재들이었을까요?

 
  • 이동통신망을 이용하여 영상을 보시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네트워크 상황에 따라 재생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저작권으로 인해 자막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 오프라인 강연을 편집하여 제공해 드리며, 사정에 따라 매끄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동영상 Play 안 될 경우 FAQ > 멀티미디어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의현장 Talk Talk 강의현장 Talk Talk사무라이는 누구인가?

중세 시대 일본에서 귀족은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는 수조권이 있었습니다. 귀족은 접근성이 좋은 지역에는 세금을 쉽게 거둬들일 수 있었지만, 지형이 험한 곳 같은 경우에는 세금을 거두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귀족들은 사무라이들에게 지시를 내려 대신 세금을 거둘 수 있도록 했고, 그 대가로 거둬 온 세금의 일부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칭키츠칸의 정벌에 맞선 방어 전쟁에서 사무라이가 활약 하면서, 귀족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게 됩니다.

다이묘의 증가, 그리고 낭인

이전의 중앙집권 방식에서 권력을 가졌던 귀족들은 힘을 잃고, 대신 각 지방의 다이묘들이 권력을 갖게 되었고 사무라이들도 이들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됩니다. 다이묘들은 서로와 싸웠고, 패배한 다이묘 아래에 있던 사무라이들은 낭인이 되어 떠도는 처지가 되곤 했습니다. <7인의 사무라이>에 나오는 사무라이들도 돈이 필요했던, 이러한 낭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사무라이의 역사

중앙집권 방식을 다시 도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다이묘 중 하나였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시스템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 사회 계급을 나누게 됩니다. 평민은 사무라이가 되지 못하도록 하여, 사무라이의 숫자를 조절했습니다. 또한 사무라이는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고, 대신 칼 두개를 소지할 수 있었습니다. 양반 계급으로 살게 된 사무라이들은 그 후 근대기에 개항 이후 메이지 유신으로 징병제가 도입되는 등 사회의 변화로 인해 몰락하게 됩니다.

이 강의를 추천하고 싶은 분들 이 강의를 추천하고 싶은 분들
  • 영화 <7인의 사무라이>의 배경이 되는 역사/사회를 공부하고 싶은 분들
  • 일본 중세 시대 역사를 알고 싶은 분들
최진기 강사 최진기 강사
최진기 강사
사회 이슈와 경제를 접목한 인문학 강의로 대중과 소통하는 강사
  • <어쩌다 어른>, <썰전>, <톡투유> 등 다수 방송 출연
  • 「최진기 거의 모든 인문학 특강」 , 「 최진기의 교실 밖 인문학」 ,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 「철학의 바다에 빠져라 」 , 「최진기의 지금 당장 경제학 」 등
  • 본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 본 콘텐츠는 사전 동의 없이 상업적 무단복제와 수정, 캡처 후 배포 도용을 절대 금합니다.
작성일
2017-06-14

소셜 댓글

SNS 로그인후 댓글을 작성하시면 해당 SNS와 동시에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