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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예술의 풍경

20세기와 함께 시작된 근대의 수학여행

문인들의 ‘목뽑기’ 풍경 셋문인들의 ‘목뽑기’ 풍경 셋

근대 학교교육의 개막과 함께 시작된 수학여행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수학여행이란 학생들에게 실제로 보고 느끼는 현장학습 및 단체생활의 학습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교사의 인솔 아래 학교에서 행하는 숙박여행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시작되어 현재 대부분의 학교에서 숙박형 주제별 체험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수학여행이라는 용어가 최초로 발견되는 것은 1901년 7월 6일 황성신문에 보도된 러시아 해삼위동양어학교(海蔘威東洋語學校)의 만주 수학여행에 관한 기사이다. 그리고 1906년 9월 1일 공포된 학부령 제20호 사범학교시행령규칙에는 수학여행하는 일수는 교수 일수에 포함시키지 않는다고 규정하여 이미 이 시기에 수학여행이 실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수학여행은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어 1박 이상의 원거리 ‘소풍’이 가능해지면서 당일치기 여행이었던 ‘소풍’과 구별하여 수학여행이라 불렀다.

철로를 따라 시작된 수학여행단의 발길들

수학여행지는 1905년과 1906년에 경부선과 경의선이 개통되면서 경인선의 연선 지역에서 경부선과 경의선의 연선 지역으로까지 확대되고, 1914년 경원선이 개통되며 경원선의 연선 지역도 새롭게 각광을 받게 되었다. 더 나아가 1920년대 이후 이들 간선철도와 여행지를 연결하는 사설철도가 생기고 도로가 건설되면서 수학여행은 더욱 활성화되었다. 이는 근대관광의 발전 과정과 그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경주, 제주도 등 유명한 관광지가 대표적인 수학여행지인 것처럼 우리나라 근대 수학여행지 역시 유명한 관광지였다. 1920년대 대표적인 수학여행지는 경성, 평양, 개성, 경주, 부여, 강화 등과 같은 고적지, 경성, 인천, 진남포, 수원, 신의주, 원산과 같이 일제가 새로이 이식한 근대 시설이 갖추어진 도시, 금강산과 같이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 등이었다. 이외에 일본과 만주도 인기 있는 여행지였다.

수학여행, 일제관점의 주입식 역사체험으로 변질되다

수학여행지가 이와 같다면 수학여행의 목적은 무엇일까? 대한제국기의 소풍과 수학여행은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나 1906년 통감부가 설치된 이후 통감부는 1908년 사립학교령을 공포하여 교육과 학교에 대한 간섭과 탄압을 강화하였다. 더욱이 1910년 조선 강점 이후 일제는 내선일체의 교육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리하여 경성, 평양, 개성과 같은 전통도시에 대한 수학여행도 사적지와 함께 근대시설을 살펴보는 코스로 이루어졌다. 이 경우도 같은 사적지라 하더라도 한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일본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평양성에 가서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청일전쟁 당시의 평양성 전투를 설명하는 식으로 일본과의 관련성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일본여행협회(Japan Tourist Bureau) 조선지부에서 발간한 관광안내책자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수학여행을 주관하였던 학교의 담당자들이 수학여행 일정을 짜면서 참고하였던 자료는 아마도 이러한 성격의 자료였을 것이라 추측된다. 이는 수학여행을 비롯한 근대 관광을 일제가 식민지 지배의 주요한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체제순응과 교화의 수단으로 활용된 수학여행

이와 함께 수학여행은 규율의 강제를 통해 일제의 식민지 지배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을 창출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1920년대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경성사범 학교 부속 보통학교의 수학여행 유의사항에는 ‘집합시간을 잘 지키자, 자기 1인이 하는 행동은 학교 전체에 관계있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 1인을 위해 모두를 성가시게 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하자, 친구와 고통과 즐거움을 함께 한다는 마음을 갖도록 하자, 선생이나 계원의 지시를 잘 따르자’ 등과 같이 개인보다는 집단의 규율을 준수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는 수학여행이 단체행동을 통해 일제가 규정한 규칙을 준수할 것을 교육하는 목적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학생이 이른바 ‘모범학생’이라 칭찬되는 것이었다.

관광형 수학여행 많았어도 ‘다함께 못 가는’ 수학여행

다음으로 수학여행비는 일반적으로 학생 등록금에 포함되어 매달 일정 금액을 적립하는 방식으로 매년 10원 정도씩 적립하였으며, 특별한 경우에는 학교 당국을 통해 관비를 보조금으로 일부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사례는 이미 대한제국 시기부터 보이고 있어 당시 정부 당국의 수학여행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모든 학생들이 수학여행에 참여하였던 것은 아니었고, 형편에 따라 수학여행에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리고 재학 중 수학여행은 한 번 가는 학교가 많았으나 두 번 이상 가는 학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다수의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여관이나 식당과 같은 시설이 필요하였고, 이러한 시설들이 증가하였다. 그리하여 명승지나 사적지 주변에서는 관광지 개발을 요구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수학여행을 못가는 학생들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수학여행 실시의 필요성에 대해 사회적 논란이 야기되었다. 동아일보(1926년 10월 11일)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중등학교 남녀생도들은 대부분 농가자녀들일 것이다. 현재 우리 농가에서 매년 300여원의 학비를 내이는 것도 실로 피가 나도록 과중한 부단이다. 그러므로 1, 20원의 수학여행비도 농가부로에게는 여간 큰 부담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비용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학생의 수학여행기는 곧 농가의 추수기다. (중략) 이렇게 부형이 코피가 나도록 汨沒할 때에 그 자녀가 수학여행이라 하여 유람의 길을 다니는 것은 자녀의 의리가 아니다.

수학여행을 둘러싼 논란은 그때도 여전해

또한 수학여행 중 학생 사망사건, 패싸움, 열차 추락 사망사건 등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기장공립보통학교에서는 수학여행비를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학생들을 도로개수공사에 동원하는 일까지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수학여행을 획일적으로 실시하지 말고 수학여행과 추수방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그런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학생의 단체적 훈련에 의미 있는 활동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수학여행을 통해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점을 학생들이 직접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논쟁속 에서 배화여고보의 경우 학교 측에서 수학여행을 금지하자 학생들은 학교 측에 수학여행 실시를 요구하면서 수학여행 대신 실시하려 하였던 원족에 전원이 불참하기도 하였다. 또 원산의 보광중학교에서는 수학여행지를 변경할 것을 주장하면서 동맹휴교를 단행하였다.

그런데 경제공황과 일제의 침략전쟁이 본격화되는 1930년대 말 이후의 수학여행은 일제의 전황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즉 1930년대 전반기에는 전황이 일제에 유리하게 전개되었고 경제공황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소비를 진작시켜야 하였으므로 수학여행이 장려되었으나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1930년대 후반 이후에는 이른바 ‘성지참배’를 제외하고는 수학여행을 금지하였다. 그리하여 각 학교에서는 ‘성지 참배’의 명목으로 수학여행을 단기간 실시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경주 수학여행 중 고등보통학교 여학생에 대한 전문학교 학생들의 ‘히야 카시(희롱)’와 요정 출입 등의 풍기문란한 행위를 통해 수학여행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었다.

자유로운 일탈을 꿈꾸는, 낭만의 수학여행 추억으로 남아 작은 역사가 되다

수학여행은 학창시절 추억을 생산하는 소중한 기회이기는 하였으나 말 그대로 ‘수학(修學)’하는 여행이 되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근대의 수학여행은 학생들의 견문을 넓히는 데 기여한 바 적지 않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수학여행도 체험학습의 형태로 변화하고 있으나 학생들에게는 수학여행이든 체험학습이든 좁은 학교를 벗어나 야외로의 ‘일탈’이라는 점에서 즐거운 기억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글 / 조성운_역사학자. 1964년생

저서 『식민지 근대관광과 일본시찰』 『일제하 농촌사회와 농민운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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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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