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부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국 현대문학 사상 최고의 스캔들, 작가 이상
까치머리와 구레나룻의 외모에 겨울에도 하얀 구두를 신고 다니던 작가 이상. 그의 등장 자체는 한국 현대문학사상 최고의 스캔들이었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시<오감도>중에서
현대인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작품을 낸 천재 작가 이상의 인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난해한 작품만큼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을 것 같지만 의외로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천재였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이상의 전신은 김해경
1910년 9월23일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이었다. 이상은 만 두살이 되던 해,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일본 총독부 사무과 기술관으로 있던 큰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큰아버지에게 장남으로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큰어머니는 해경을 냉정하게 대했고 양부모 사이에서 갈등하던 이상의 불안감은 그의 작품 속의 불안의식으로 자리잡는 이유가 되었다.
“해경아 앞으론 너는 건축과를 가야 한다. 세대가 바뀌어도 기술자는 배를 곯지 않는다.” ? 이상의 큰아버지-
어린 시절 혼자 이불 속에서 공상하고 거울 보고 그림을 그리던 해경은 특별히 그림에 재주가 있었지만 결국 기울어가는 집안 형편 때문에 큰아버지의 뜻에 따라 식민지 건축 기술자 양성을 위한 경성고등공업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건축기사 김해경, 작가 이상이 되다
건축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인 해경은 건축과를 수석 졸업하고 잡지 조선의 건축표지 공모에서도 수상하며 두각을 드러낸다. 이후 조선 총독부 기수로 취직한 해경은 예술과 창작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창작활동을 이어간다. 건축관련 잡지에 <이상한 가역반응>이라는 시를 투고하고 이듬해에는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건축무한육면각체> 시를 발표하는 등 창작활동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김해경, 아니 작가 이상의 행보였다.
“오빠의 이름이 이상으로 바뀐 것은 건축 공사장 인부들이 ‘이상’이라고 잘못 호칭한데서 비롯된 것이지요.”
이상이라는 이름은 공사장 인부들이 일본식 발음으로 ‘긴상’을 ‘이상’이라고 잘못 부른데서 탄생한 이름이었다. 이상에게 건축은 삶과 문학을 떠받치는 기반 중 하나였지만 폐병과 큰아버지의 죽음으로 미련 없이 그 생활을 접게 된다. 그리고 큰아버지가 남긴 유산으로 제비다방을 개업, 술집 여급 출신의 금홍을 마담으로 앉히게 된다.
시인, 제비다방을 열다
제비다방은 당대 일급 문인들이었던 이태준, 박태원, 김기림 등 구인회 멤버들이 단골로 찾는 아지트였다. 이상은 특히 같은 폐병을 앓던 소설가 김유정과 친하게 지내며 문학적 교류와 활동의 폭을 넓혀 나가게 된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는 하유미라는 이름으로 삽화를 넣기도 하고 조선중앙일보에 시 <오감도>를 발표하며 문제작가로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제비다방에서 마담 금홍과 동거하면서 한 편의 소설을 집필하게 된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는 연애까지 유쾌하오.”
하지만 소설의 연애는 유쾌하지는 못했고, 소설 <날개> 속에 1935년 제비다방은 경영난에 시달리다 문을 닫고 이듬해 이상은 화가 구본웅의 누이동생 변동림과 3개월의 짧은 신혼생활을 즐기게 된다. 그러나 이상은 새 출발을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무작정 일본 도쿄로 떠나게 된다. 제비다방 이후 몇 번의 카페를 열어 모두 망하고, 가족들은 빈민촌으로 이사를 가야 할 만큼 궁핍해졌다.
천재 이상, 도쿄에서 날개를 접다
이상은 결국 문학적 열망을 가진 채 일본 도쿄로 가지만 그의 간절한 문학적 열망과는 달리 폐결핵 악화, 서울 가족에 대한 죄책감으로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갔다. 그리고 1937년 2월, 불령선인, 즉 ‘수상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어 유치장에 구금되게 된다. 유치장에서 병이 깊어진 이상은 결국 4월 17일 새벽 도쿄의 병원에서 스물 일곱의 나이로 짧은 인생을 마감한다. 아내 변동림은 후에 김향안으로 개명해 화가 김환기와 결혼한다. 그리고 수필가로 활동하며 본래 이상의 유언으로 알려진 “레몬 향기가 맡고 싶소”를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나는 철없이 천필옥에 멜론을 사러 나갔다. 멜론을 들고 와 깎아서 대접했지만 상은 받아넘기지 못했다.”
? 김향안 에세이 중에서-
이상의 유해는 화장되어 미아리 공동묘지에 묻혔으나 한국전쟁 후 공동묘지가 사라지면서 이상의 무덤은 유실되게 된다. 천재 작가 이상의 삶과 작품은 불운한 시대에 태어나 큰 꿈을 펼쳐보지 못한 하나의 이상이 아니었을까?
“날개야 다시 돋아라.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소설 <날개> 중에서-
백석이 말하길 시인은 온갖 슬프지 않은 것에도 슬퍼할 줄 아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으로 슬픔으로 마음이 가득 찰 때 백석의 시 한 줄을 꺼내 읽으면서 위로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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