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 후 이야기

기찻간 변사사건 - 정한아

사랑손님과 어머니, 이어쓰기 : 4화 기찻간 변사사건 - 정한아 사랑손님과 어머니, 이어쓰기 : 4화 기찻간 변사사건 - 정한아

박옥희의 외삼촌 천덕구의 진술서

나는 금년 열다섯 살 된 중학생 천덕구입니다. 나는 박옥희의 작은외삼촌이고 천명희의 남동생입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 집에서 멀쩡한 것은 나뿐이지 싶습니다. 다른 순사분이 옥희의 진술서를 읽어주셨습니다. 아주 순진하게 썼더군요, 마는 고 앙큼한 것은 눈치가 백단이란 말입니다. 옥희는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알아요. 물론 어린 계집애 말을 다 믿으시는 건 아니시겠지요? 저를 왜 부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뭘 속이거나 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는 바에 관해서는 모두 숨김없이 이야기하겠습니다. 

사랑채서 지내던 그치가 왜 기찻간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랑 한 방을 썼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치가 누이랑 사랑놀음하느라 편지를 쓰네, 시를 쓰네, 등잔불 밑에서 노상 끙끙거리고 급기야 제 조카에게까지 추근덕거리는 꼴을 보기 싫었고, 게다가 그치의 코골이가 몹시 심해서 대개 한동네 사는 급우의 방에서 함께 자곤 했습니다. 하여간 대처 나가서 먹물 깨나 먹었다는 놈들은 왜들 그렇게 하나같이 위선적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형님이나 경선이 형님(죽은 매형 말입니다)만 해도 그래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님이 남은 재산 까먹어가며 기둥뿌리 뽑아서 큰 도시에 대학 보내줬더니 방학 때마다 형님은 제 앞가림할 궁리는 안 하고 경선이 형님이며 그치를 끌고 와 엄마가 차려오는 밥을 축내면서 날 저물면 밤늦도록 내지 사정이 어떻고 만주국 사정이 어떻고 세계적인 정의감을 자랑하다가 종내는 누이 얼굴이 뽀얗네, 아니다, 경선이 동생이 더 예쁘더라, 즈이들끼리 상중하를 매기고 해서 정말 역겨웠습니다. 

정말이지 이 집에서 멀쩡한 것은 나뿐인 것 같습니다. 암만 제 누이가 청상과부가 됐다기로서니 죽은 남편 친구를, 누이 첫사랑인 걸 뻔히 알면서 재가 상대로 점찍은 형님을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경선이 형님이 형님 시켜서 누이 심중을 떠볼 때만 해도, 저는 누이가 경선이 형님하고 혼인할 줄은 몰랐습니다. 누이는 사랑채 그치를 더 좋아했었거든요, 흐흥. 경선이 형님은 몇 번인가 방학이 지나더니 누이랑 혼인하고서 우리 옆집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유치원도 가기 전에 돌아가셔서 형님을 아버지처럼 따랐던 터라 경선이 형님이 누이랑 결혼해 우리 옆집에 들어온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만 해도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형님은 학교 졸업하고 대처로 나간다고 오가느라 정신이 없고, 집에 이제 사내라고는 나밖에 남지 않은 차에 오래 본 형님 친구가 매형이 되어 옆집에 들어온다니 마음이 한편 든든했던 것입니다. 

매형은 누이를 오래 짝사랑하다 형님을 통해 누이도 싫어하지 않는단 얘길 듣고 몹시 기뻐하며 혼사를 빨리도 진행시켰더랬습니다. 그때 함잡이 따라왔던 그치를 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흐흥, 물론 축하해주었지요. 우리 형님과 경선이 형님과 그치는 가장 친한 동무들이었으니까요. 집안 전체가 어찌나 들떴었는지, 어머니는 돌아가신 아버지 네 혼사 봤으면 얼마나 좋았겠니, 연지곤지 찍은 누이 보고 손수건을 적시고, 동리 사람들은 어머니 복도 많아 저리 훤칠한 사위 맞았다고 닭 잡는 것도 도와주고 했습니다. 그랬던 어머니가, 암만 매형 돌아간 지 여러 해 지났기로서니,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사랑채 그치에게 방을 내주라고 했을 때는 모르는 사람보다야 아는 사람에게 누이가 재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 같은 것도 은근 있었겠지요. 덕구야, 네가 그 방서 함께 지냄서 오며가며 심부름이나 좀 하구,라고 얘기하실 때 전 정말 실소가 터져 나오더군요. 온 가족이 누이의 재가를 바라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결국 방을 뺏기고 우리 집 식구들은 누이 재가시키기 계획에 돌입했습니다. 

뭐, 괜찮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요. 들어온단 사람도 좋다 하고 들어오라는 사람도 좋아하면 된 거지요. 하지만 우리 집에서 가장 이상한 것은 바로 제 누이입니다, 흐흥. 이 집에 제정신인 사람은 저 말고는 없어요. 다들 점잖은 채 하고 예배당도 다니고 하지만, 조선 사람을 서양 신이 구원해준다는 얘기도 웃기거니와 천국 따위가 있을까요? 매형은 천국에 갔을까요? 옥희가 얘기한 동구 밖 초가집 말입니다, 그게 매형이 누이 모녀 먹고 살라고 남겨놓고 간 거라고, 흐흥, 말도 안 되는 소리! 매형은 거기 몰래 땅 사놓고 닭국 파는 여자랑 살림을 차렸단 말입니다. 혼인하기 전부터요! 믿어지세요? 매형이 왜 하필 이 동리로 우연히 부임을 왔을까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저의 배신감이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아버지나 마찬가지인 매형이,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니! 더군다나,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매형이 순수한 마음으로 누이와 혼인을 한 것인지 의심이 가더군요. 그래, 매형 죽고 나니깐 그 닭국 파는 여자가 찾아와서 그 땅은 자기 거라고 주장하는 통에 누이는 그럼 안 쫓아낼 테니 거기서 나오는 곡식일랑 좀 나누어달라고, 흐흥, 천사 같지요. 참 천사 같아요. 매형이 갑자기 죽은 것만 빼면 말입니다. 

누이는 말입니다,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몰라서 주변 모든 사람들을 괴롭히는 참 희한한 재주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경선이 형님과 혼인할 테냐 했더니, 발간 얼굴로 형님 얼굴과 어머니 얼굴을 한 차례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단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게 누이가 조신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에요, 누이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바라는 것을 하면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저를 사랑해줄 거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게 무슨 문제냐구요? 흐흥, 그렇게 되면 무슨 짓을 해도 자기 잘못이 아니게 되거든요. 사랑채에 제 소싯적 첫사랑이 들어온다는 것을 번히 알고도 그러시라고 해놓고 내외 해가며 나나 옥희한테나 시켜 호의를 주고받는 건 그렇다 치고, 그러면서 또 한편으론 죽은 매형 사진을 꺼냈다 넣었다 하지를 않나, 안 치던 풍금을 6년 만에 밤늦게까지 괴괴하게 치고 있으면 그게 무슨 뜻인지 동리가 모를 리가 있겠는가 말입니다. 

풍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저번 보름인가에는 제가 우리 집에서 백 보 넘게 떨어진 급우의 방에 있는데도 누이가 치는 풍금 소리가 들리더란 말입니다. 듣자마자 알았습니다. 그치 들으라고 치는 거구나. 누이는 고독에 몸부림치고 있구나, 하고 말이지요. 그저 장짓문 열고 들어가 한 마디만 하면 되는데 왜 저리 온갖 간지러운 짓들을 하는 것인가? 그리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혼인해서 살았던 세월이라 해봤자 겨우 일 년 남짓인데 얼굴 가득 쓸쓸한 빛을 띠고 툭하면 옥희 붙들고 앉아 끅끅대며 울어대는 것 보고 있으면 이제 그만 그 청승이며 위선일랑 집어치우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누이와 그치가 좋아한다는 걸 동리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어요. 달걀 장수가 집집마다 달걀을 팔러 가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물어보세요. 그 달걀 장수는 동구 밖 닭국 집서 알을 떼어다 판단 말입니다. 

아니요, 저는 죄를 지어서 도망치려던 게 아니고 제가 진실을 말할까 두려워 순간적으로 당황했을 뿐입니다. 전 거짓말이라면 딱 질색이거든요. 그저께 순사가 들이닥쳐 사랑서 하숙하던 그치에 대해 이말 저말을 물어보기에 나는 그치가 또 기찻간서 점잔 빼고 앉았다가 방귀라도 뀐 것을 들켰는가 했습니다, 흐흥. 그러다 기차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기에 대충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를 알았지요. 

누이는 무서운 여자예요. 예쁘고 무서운 여자지요. 난 조그만 어린 딸을 데리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아름다운 용모로 사람들 앞에서 부끄럼 많은 얼굴로 평생 수절할 것 같이 사뿐사뿐 걸어다니는 누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요. 매형도 삶은 달걀을 먹다 죽었다고 내가 말했었나요?

박옥희의 모 천명희의 진술서

저는 금년 스물네 살 된 천명희입니다. 천덕구의 손위누이이고 박옥희의 어미 됩니다. 옥희는 사랑채 선생님이 돌아가신 것을 아직 모르고 있으니 부디 너무 많이 사정을 말씀하시지는 말아주십시오…… 

네, 사랑채 선생님을 전부터 알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랑채 선생님은 제 오라비와 고인이 된 제 지아비와 대학 친구였습니다. 오라비는 방학이면 집에 내려와 둘이나 셋이서 며칠씩 함께 머물곤 했어요. 그렇다고 제가 오라버니와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정도로 쾌활한 성격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밥상을 가져가거나 내오거나 할 때 말고는 자주 마주친 적은 없습니다. 덕구가 한 얘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오라버니가 저를 재가시키려고 사랑채 선생님을 일부러 저희 집에 들이다니요…… 오히려 어릴 때부터 봐온 사이라 사랑채 선생님 하숙하기에도 덜 불편하고 저도 살림에 보탬이 되리라 생각해서 신경써주신 겁니다. 좀 오랜만에 봬서…… 그리고 옥희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는 처음이라…… 저는 낯을 좀 많이 가려서…… 

안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만, 사내들 앞에서 숫기가 없는 것은 오래된 저의 성벽입니다. 어머님이 늘 오랍 친구들 올 때에는 이쁘게 하고 있으라고 해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구요…… 어머니는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는 믿을 건 네 오라비뿐이라고, 네 오랍 때문에 산다, 내가, 그런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너도 네 오랍처럼 똑똑하고 번듯한 사람한테 시집가야 고생 덜 하고 산다고, 어차피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쩐지 너무나 화가 나고 부끄러워서 어딘가 도망치고 싶었지만, 저는 제가 너무 숫기가 없어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점점 더 숫기가 없어졌어요……

오라버니와 친구들이 와 있을 때는 오라비가 학교 가 있는 동안 방을 쓰던 덕구가 방을 빼앗기고는 어머님과 저와 함께 쓰는 방에 와 지내고는 했습니다. 덕구는 늦둥이라 어머니보다 누이인 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저를 많이 따랐어요. 어릴 때 덕구는 내성적이기는 했어도 참 귀엽고 순한 아이였거든요…… 아버지 돌아가신 후로 어머니는 대학 다니는 오라버니 뒷바라지하느라 동네 바느질을 맡아하셨고, 저도 소학교나마 다니느라 학비가 들었기 때문에 방과 후에는 일을 도와드리곤 했는데…… 덕구는 늘 그 곁에서 숙제도 하고 딱지도 만들어 놀고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제가 혼인하게 되었을 때 너무나 섭섭해 해서 옥희 아부지가 오빠 없는 동안 우리 집 가장 노릇하는 셈 치고 덕구와 어머니 곁에서 계속 제가 돌보는 게 어떻겠냐며 친정 바로 옆에 집을 얻었어요. 덕분에 그토록 따르던 어린 동생을 떼어놓고 시집을 가야 해서 불안했던 제 마음이 몹시 안심이 되었습니다. 덕구도 옥희 아부지 무척 따랐었구요…… 늘 좋은 교육자가 되고 싶은 학교 선생님이었으니 꼬마 처남에게 아버지 같은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근데…… 그게 너무 짧았네요……

아, 달걀 장수에게 이제 안 오셔도 된다고 한 건 사실이에요…… 그야 밥값을 내는 사람이 이제는 없으니까…… 아니, 돌아가실 걸 알아서가 아니라 그날 방학이 시작되어 선생님댁으로 돌아갈 테니까요…… 물론 방학 끝날 때 저희 집으로 다시 하숙하러 오지는 마시라고... 전하기는 했어요…… 제가 너무 난처해서요…… 덕구는 맨날 바깥으로만 돌고 집에는 저랑 옥희뿐인데…… 일전에 옥희가 선생님과 뒷동산에 갔다가 울고 돌아온 적이 있어서요…… 아무튼 밥값 낼 사람이 없으니 전처럼 달걀을 많이 살 수도 없지요, 뭘…… 옥희가 정 먹고 싶다고 할 때 몇 개씩만 사면 되니까요…… 옥희는…… 옥희는…… 삶은 달걀을 참 좋아하지요…… 어쩜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부잣집 딸내미마냥 비싼 것만 사달라고 하고…… 저는…… 그…… 장미, 정말 사랑채 선생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옥희가 유치원에서 몰래 가져온 거라고 하던가요……? 

……그랬군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삶은 달걀이라고요? 옥희 아부지가 삶은 달걀을 먹고 돌아가셨다고 했다고요? 덕구가요?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옥희 아부지는 삶은 달걀을 좋아하시지 않았어요. 목이 메여 싫다고요. 덕구가…… 그런 말을 했군요…… 덕구 하는 말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덕구는 어릴 적에는 총명하고 소학교에서 곧잘 글짓기 상도 받고 했는데…… 어느 날부터 노서아 소설을 너무 많이 읽더니…… 

……그런데 그 장미, 정말 사랑채 선생님이 주신 게 아니라고 하던가요? 옥희가요……? 유치원 선생님께 확인했나요……? 확실한가요……? 

정한아 시인 사진

〃 작가소개 〃

정한아

시인, 1975년생
시집  『어른스런 입맞춤 』 등

  • 『사랑손님과 어머니』

    1935년 《조광(朝光)》지에 발표된 주요섭(1902~1972년)의 단편소설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과부인 어머니와 사랑방에 하숙을 든 아저씨의 미묘한 연정을 여섯 살 난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서술한 서정성 짙은 작품입니다. 시대적 분위기로 인해 아저씨와 어머니는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채 아저씨가 사랑방을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됩니다.

작성일
2017-12-26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